20231105(양무리교회)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말씀 듣는 모든 예배자에게 성령이!
Acts. 10.24-48
본문 관찰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24-33)
베드로의 설교(34-43)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심(44-48)
고넬료행전(2): 하나님의 열심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마27.50-51a)
하나님께서 앞서 일하시는 것이 베드로와 고넬료의 모습에 밝히 드러나는 중이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거하는 고넬료에게 가고, 고넬료는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간다. 이 모든 일들을 계획하시고, 진행하시고, 이루시고, 이를 통해 무엇인가 뜻한바 그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베드로와 고넬료는 이 하나님의 섭리적 일하심에 일심으로 따르고 순종하고 응답한다.
자,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과 그것에 대한 대답은 사실상 사도행전 10장이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전부다. 무슨 말인가. 복음이 예루살렘(유대)에만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어서다. 하지만 이방 나라와 모든 족속에 대한 복음 전도는 사도행전 10장에서야 비로소 계획되어 시작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언제일까.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하겠지만 이것의 계획은 구약에서, 그것도 아브라함에게까지 올라간다: “내가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이를 신약의 방식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상명령과 그대로 연결된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마28.19a) 이게 무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자, 이 구약 창세기 언약의 말씀처럼, 마침내 사도행전 10장에서 ‘모든 족속’ 가운데 하나인 이방의 백성들(가이사랴에 거하는 고넬료의 일가)에게서 아브라함(창12.3)에게 하신 이 말씀이 성취되기 시작한다. 마침내 ‘때가 차매’ 십자가 구원의 복음(마28.19)과 성령의 임하심(행1.8 → 10.44- ) 앞에 이방의 백성이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10장을 시작으로 이 천국 복음을 어느 때까지, 그리고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가. 바로 때와 그 대상을 알 수 있는 말씀이 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놀랍지 않은가. 이 복음의 완성은 모든 민족에게,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전파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이방인 회중들 앞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설교자로 서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베드로에게 고넬료를 준비하셨다(23-24). 다 복음 안에서다. 어떤 복음인가? 율법의 전통을 뛰어넘는 자유의 복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또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성취하는 복음이다. 마침내 마태복음 27장 51a절 말씀의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응답이자, 사도행전 1장 8절의 성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베드로와 고넬료)을 통해 위대한 사명을 성취하기 시작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마28.19a) 그러니까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하는 것을 하나님은 사도행전 10장에서 마침내 이를 응답하심으로써 확증하시고, 이루신다. 이것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도 분명하게 선언된 복음이다:
“우리 조상들(사마리아인, 9b 참조)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유대인)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성령)과 진리(말씀, 예수)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0-21,23-24)
이처럼 사도행전 10장은 복음이 왜 예루살렘(유대)을 넘어 이방인에게도인가에 대한 답이 밝히 드러나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b) 약속하셨고, 이를 주께서 십자가로 성취하셨다. 이것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마28.19a)라 하신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것이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유대인)와 고넬료(이방인)를 통해 환상(9-16) → (성취, 17-33) → 설교(34-43) → 성령강림(44-48)이라는 하나의 패턴을 이루면서 마침내 유대를 넘어 헬라에까지 밝히 드러나고 있는 복음의 실상인 것이다.
환 상 → 설 교
먼저 베드로는 결국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29)라고 말한다. 복음은 유대 전통의 편견(아집)을 부수고 마침내 이방인과 교제하는 자리에 나아가도록 만든다. 또한 고넬료는 ‘이방인들’(45)이라 불리우는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24),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33)라고 고백한다.
설교자로서의 베드로를 만난다. 베드로는 그가 보고, 듣고, 깨닫고, 확신한 일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드로는 과연 ‘무엇’(what)을 설교할까. 베드로는 먼저 유대를 뚫고 이방의 땅으로 친히 가신 성령의 능력과 일하심을 깨닫고 이를 인정한다(34-35). 그리고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복음(36-43)을 전한다. 》 *실제 설교에서는 생략
설 교 → 성 령
마침내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신다(44). 이것으로 사도행전 10장은 절정에 이른다. 성령 하나님은 이방의 백성들에게도 성령이시며, 저들에게도 역사하시는 분이시다는 것이 이방인들에게 임하신 사도행전 10장의 성령의 역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그렇다면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느 때나 주저할 필요가 없다.
놀랍게도 성령은 이방의 백성들에게 설교(구원의 복음, 말씀)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이때, 그러니까 말씀이 증거될 때 성령님이 임하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45).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Luke)의 증언을 44절에서 한 번 더 들어보자: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44) 성령은 언제, 그리고 누구에게 임하시는가?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는 기도(1.14, 2.1-4, 4.31, 8.15,17, 9.17)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10.44, 11.15, 13.44,52)이다. 이렇듯 성령님은 기도할 때, 그리고 말씀이 선포되면서 그 말씀을 들을 때 임하신다.
그런데 말씀과 기도는 예배다. 그렇다면 주의 성령은 이방의 백성들이 모여 예배할 때에도 그 가운데 임하신 것이 아닌가. 이렇듯 하나님은 예배하는 사람, 예배를 사모하는 예배자, 바로 그 예배자에게 성령으로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에서도 바로 이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로 나아간다면, 오늘도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은 찾아오시는 성령의 부어 주심을 얻게 된다. 이방의 백성들에게도 말이다.
“갈급한 내 심령 위에 성령을 부으소서.”(찬송가 183장 3절)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로 시작되는 말씀을 아는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그(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이것이 예루살렘과 유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땅 끝까지 전해져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음의 영광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2-13절 말씀에서도 이 진리를 분명히 선언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오늘 사도행전 10장은 두 사람을 통로 삼아 이 구원의 복음이 이방에게로 흘러가는 일을 공식적이자 공개적으로 밝히 드러내신다. 다시 얘기하지만 복음이 이방의 백성들에게 전하여진 것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러니까 베드로나 고넬료가 계획하여 시도한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사도행전 10장 전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다. 이 일을 위해 주님이 합당하다 부르신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세상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 일하신다. 또한 이 일을 당신의 종들을 부르셔서 이를 행하도록 인도하신다. 이를 위해 베드로와 고넬료를 찾으신 것처럼 말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동일하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기도하고 있을 때(9- ), 우리가 고넬료처럼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2)고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종으로 쓰신다. 오늘도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다가 주님 손에 붙들리는 우리와 가정과 자녀들과 교회가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