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버리고 데려온 것들의 실상(삼상 8.1-22)

20250907(양무리교회)

 

 

 

하나님을 버리고 데려온 것들의 실상

1 Sam. 8.1-22

 

 

    본문 관찰

 

    왕이로소이다(1-9).

    왕으로 안 된다(10-18).

    왕이어야 하리이다(19-20).

    왕을 세우라(21-22).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겠다고?

그것도 하나님을 버리고?

 

이스라엘은 마침내 사사(선지자, 제사장)인 사무엘을 거부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더 깊은 내면의 생생한 실상을 보셨다. 이것은 왕이신 하나님까지 부정하는 불신앙이다는 선언에서다(7). 마침내 이스라엘은 공공연하게 하나님으로는 안 되겠다는 반역적 언행으로까지 선을 넘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17.14-20)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사실 왕정은 이미 모세의 신명기 율법에, 모세에 의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17.14-20). 따라서 백성의 장로들이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5). 하지만 사무엘상이 하나님께 들은바 메시지는 이것이다: “백성이 (하나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7b)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1-9)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5b)

 

사실 이 일의 발단은 놀랍게도 사무엘의 흔들림에서 시작된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1) 그야말로 가관이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시는 사사를 사무엘이 세운 것이다. 이것이 사무엘 이후가 흔들리는 이유다. 더 놀라운 것은 (사무엘)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3)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사장에게서 시작된 종교적인 타락이다. 다시 엘리의 돌림노래가 하나도 다르지 않게 유행하는 분위기다.

이런 배경을 따라 이스라엘은 왕을 요구한다. 하지만 사람에게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대용품에 불과한 사람()을 찾을 게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이 모든 문제를 품고 7장에서처럼 진정한 희망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옳다. 앞서 7장처럼 블레셋 전쟁에서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던 것처럼 말이다

 

 

왕의 제도를 말씀하는 하나님(10-22)

 

    “나를 버려”(7b) 취하다’(11,13,14,16)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11)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13)

    ∙그가 또 너희의 밭에서 좋은 것을 가져다가 ”(14)

    ∙그가 또 너희의 노비들을 끌어다가 ”(16)

 

하지만 하나님을 버려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할 때 저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것이 취하다’(11,13,14,16), 그러니까 빼앗다는 단어가 4번이나 반복되며 강조하는 부분에 들어있는 값비싼 댓가다: ‘이렇게 세운 왕 그가 백성들의 소중한 것들을 취하여 갈(데려갈, 빼앗아갈) 것이다.’ 오늘 설교 제목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 자리에 데려온 것들에게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님을 버리고 그 자리에 세워놓은 것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그러나 말씀은 이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것을 빼앗아 그 자리에 오른 그 왕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그 왕이 데려감(취하여감, 빼앗아감)을 당하는 값을 지불해야 한.

마땅히 왕의 자리에 앉으셔야 할 하나님을 버리고, 그리하여 하나님이 왕이 되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고서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은 (     )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은 무엇인가?(11,13,14,16) 하나님을 버리면 이스라엘의 손에서 가장 귀한 그것들을 빼앗기게(데려가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보면 설명이 되기도 하고 적용이 되기도 할 것이다.

 

[1] 지금 우리시대의 목사들이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명목상으로만(말로만) 하나님을 말하고 실제로는 목사가 거기에 앉아있다면 그것이 곧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의 증상일 수 있다. 왜 그런가? 성도들과 교회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가는 거짓 목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거짓 목사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는 성도들도 불행하게 될 것이다. 이 거짓 목사를 통해 교회와 성도와 공동체 전체가 피차 멸망하게 될 수도 있다.

[2] 지금 우리시대의 가정들이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셔야 할 자리에 자식을 하나님처럼 여기며, 오직 그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가며 기르고 있다면 오래지 않아 그 자식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래서 신앙으로 자라는 일이 멈춘 그 자녀가 여러분의 소중한 것들을 데려가는(취하여 가는, 빼앗아 가는) 광경을 두 눈 뜨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일이 백주에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3] 지금 우리시대의 교회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다스리셔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러나 목사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목사를 물러나게 하고서, 만만하게 바지사장처럼 부려먹기 딱 좋은 머슴 같은 목사를 세워놓고 교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직분자들이 있다면,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으로부터 정죄를 받아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런 목사와 직분자들을 통해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성장할 수 있겠는가. 그런 목사와 그런 직분자들의 값을 치르는 청소하는 일만 하다가 교회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이름만 그리스도인들인 자들로 가득찬 교회로 전락할 것이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

   

그렇다면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있는 길이 있을까답은 ‘있다.’ 하나님이 아닌 종에 불과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면 된다. 그리고 회개하고서 다시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의 종인 기본기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럴 마음이 없고, 믿음도 없고, 하나님을 따라갈 순종도 없다면 8장과 같은 상황을 돌이킬 수 있을까. 여기에는 답이 없다이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이 왕이시며 주인 되시는 것을 버리면(빼앗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때 하나님이 아닌 모조품(대용품) 때문에, 비로소 이제 하나님을 버리고 데려온 것들 때문에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시는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18b

 

 

부스러기 묵상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4-6)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19a)

 

사무엘의 설교는 청중들(백성들)에게 이제 더 이상 전달되지 않는다(4-6,19a).

사무엘은 자기 아들들을 자기 마음대로 사사로 세워 흔들리는 이스라엘을 어찌해 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고(1-2), 백성들의 지도자들인 이스라엘 모든 장로’(4)들은 사무엘의 지도력이 아닌 이방 나라들처럼 왕을 구하면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그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사사시대의 모습이다. 사무엘은 이 둘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힘없이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천하의 사무엘마저 이처럼 리더십이 무너지는 중이다.

정말 심각한 것은 이것이다: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시리게 하소서.”(5b)  하나님 없는 이방 나라들처럼 살겠다는 것이다. 사무엘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주이시고 진정한 통치자이시다. 그럼에도 지금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을 버리겠다는 것이고, 이방 나라들(세상 사람들)처럼 살겠다는 것이고, 이미 그 수순을 밟는 중이다. 이건 반역이자 범죄다.

어찌 보면 후에 등장하게 될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한 북왕국의 타락한 왕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무엘상 8장은 예고하고, 열왕기는 이를 실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 아찔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사무엘을 밀어내는(버리는) 것까지야 사사시대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밀어내고(버리고), 그 자리에 자신들이 세운 하나님이 아닌 사람 왕을 올려놓겠다고 하는 처사에는 답이 없다. 이스라엘은 이처럼 망가지고 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렇게 망해 가고 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시대는 늘 이렇다. 거룩을 잃어버린 시대는 늘 이렇다. 놀라운 것은 다 있는 시대였다는 점이다. 율법이 있고, 제사가 있고, 성막과 언약궤가 있고, 선지자이자 사사인 사무엘이 있고, 7장이라는 부흥이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평화’(7.14b)가 있다. 지금 사무엘상 7장은 사사시대의 영적 시계가 회개를 통한 맑음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곧 바로 8장에서 또 다시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불신앙(반역)을 도모한다. 이것이 사무엘상 8장이 보여주는 사사시대의 두 얼굴이다. 이것은 사무엘상 8장을 통해서 보여주는 우리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두 얼굴일 수 있다. 그래도 하나님을 버릴 것인가. 

다시금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신앙생활인가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데려다 놓을 생각을 끊어내야 한다. 하나님을 버리면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되고, 결국에는 죽음 뿐이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을 주로 섬기겠다고 고백하는 예배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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