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엘리家에는 하나님이 없다(삼상 2.11-36).

 

20250810(양무리교회)

 

 

 

추락하는 엘리에는 하나님이 없다.

1 Sam. 2.11-36

 

 

    본문 관찰

 

    사무엘(11) - “여호와를 섬기니라.”

    엘리의 부패(12-17) - 인간의 죄악

    사무엘vs 엘리(18-26) - 사사시대의 두 얼굴

    엘리에 대한 저주(27-36) - 하나님의 심판

 

 

사무엘vs 엘리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크니(17a)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6)

 

엘리는 제사장이자 사사다(28, 4.18).

그럼 사사는 누구인가. 하나님이 지명하여 세우시는(부르시는) 영적 지도자다. 그런데 아버지 엘리 제사장을 잇는 제사장 가문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 제사장의 모습은 어떠한가. 놀랍게도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멸시하는 저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이(17a) 핵심이다. 무엇보다 아버지 엘리 제사장의 권면이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25). 어찌할까. 결국 엘리의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버지 엘리에게 전달된다(27- ). 급기야 죽음이다(34). 사무엘상은 조금씩 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드는 중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모두가 다 몰락하고, 하나님의 심판 선언 앞에 서는가. 아니다. 사무엘은 다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처럼 사무엘(11,18-21,26)와 엘리(12-17,22-25)를 차이 나게 한 것일까. 이들 모두가 다 엘리가 교장으로 있는 실로의 명문사립인 <실로율법학교> 출신인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 아닌가. 무엇이 이 두 가문(엘리 vs 엘가나)으로 하여금 흥망성쇠의 길을 가게 하는가?

 

 

사무엘(11,18-21,26)

엘리(12-17,22-25)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 한편 부모 밑에서 양육되지 않은 사무엘(11), 반대로 부모의 품에서 자란 엘리의 아들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랐고(21),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 앞에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 아래 자랐다(17). 제사를 멸시하는 구체적인 죄가 적시된 기록은 끔찍하기 그지없다(12-17).

 

    사무엘(11,18-21,26)

    “여호와를 섬기니라.”(11b)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18b)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1b)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6)

 

하나님이 막으셨던 자였으나 어머니 한나의 기도에 의해 태어난 자가 사무엘이다. 그런 사무엘은 젖을 떼고 5세를 전후한 때에 하나님께 바쳐진 자로, 엘리율법학교에서 엘리문하생으로 자라간다. 제사장의 가문임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버지 엘가나에게서 끊어졌던 제사장의 대를 하나님 앞에서 잇는다:

 

    레위의 자손(대상6.1-30)

    27 그의 아들은 엘리압이요 그의 아들은 여로암이요 그의 아들은 엘가나라.

    28 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엘이요 다음은 아비야라.

 

하지만 엘가나와 엘리의 대에서 엘리는 제사장으로, 그러나 엘가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평범한 레위인으로, 그러니까 한 아버지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인 한나는 이처럼 사사시대를 살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아들 사무엘의 대에서 다시 그의 가정은 하나님의 영광의 꽃을 피운다. 이 영광스러운 일에 한나와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18b,21b)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엘리(12-17,22-25)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12b)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17b)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25b)

 

엘리의 두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직무를 시작하게 되기까지의 정보는 없다. 사무엘상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자장으로 여호와의 전에서 직임을 감당하는 것에서부터 저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진단이 심상찮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12b) 놀랍다. 그럼 도대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제사장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 제사장은 제사장인데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목회자에 대해 이런저런 표현을 잘 안 한다. 잘하고 있어서? 아니다. 그러니 엘리는 자신의 두 아들들이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제사장이 되어 종교적 권위의 자리에 앉아 있게 하였다. 자기 자신도 관리가 잘 안 되고, 아들들을 제사장답게 세우는 일에도 실패하고, 사사로 살아가는 때에도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등 총체적인 위기의 주인공이다. 그러니 실로교회 목회도 변변찮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심판(27-36)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30b)

 

엘리의 아들들의 문제는 한 번의 실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한 어제까지 잘하다가 오늘 갑자기 그렇게 된 단기간의 문제도 아니다는 점이다. 이름과 직분만 제사장인 모습으로, 평생을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주의 이름을 멸시한 채 직업이 제사장인 자로 살았다. 대부분의 시간과 모습을 자기 마음에 옳은대로 살다가, 그러다가 제사장의 일을 해야 할 때는 제사장의 옷을 입고 제사장 직분의 매뉴얼대로 직업적인 일은 한 것이다. 하지만 마음과 심령과 중심은 제사장과 상관없는 자로, 말하자면 알바생처럼 주어진 일을 직업적 노동으로만 한 것이다.

한편으로, 아들들이 이러는 모습을 아버지 엘리는 몰랐을까. 아니다. 알았다. ‘하나님의 사람’(27)을 통해 엘리에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누구보다 엘리는 아들들의 죄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 엘리는 공범이다(27). 더 시리고 아픈 것은 아버지 엘리는 그럼에도 자기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29)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한 듯하다. 결국 엘리와 그 아들들은 심은대로 거둘 것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30b)

평범한 평민 가정도 아니고, 불신 가정에서 자라는 불신자들도 아니다. 레위 지파 중에서 제사장의 가문이다. 그렇다면 사사 시대와 다르게 살아야 할 여건(분위기)에 최적화된 형편 안에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던 자들이다. 그런데 파멸이고 파국이다. 그래서 더 두렵다. 지금 이 말씀을 읽으며 듣고 있는 우리와 우리 가정을 향하고 있는 말씀일 수도 있어서다.

 

 

부스러기 묵상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35)

 

엘가나의 아들 사무엘과 엘리의 아들들이 여러 색깔로 교차된다.

사무엘은 어린 아이(11,16,26). 엘리의 아들들은 장성한 제사장들이다(13). 하지만 사무엘은 모든 범사에 하나님 쪽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 아버지가 당대를 대표하는 엘리 제사장(사사)이다는 점에서 엘리의 몰락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몰락해 가던 엘가나의 가문을 부흥으로 다시 되돌리는 사무엘의 부흥은 눈부시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로 살아보니 자녀가 청소년을 지나 성인이 되어갈수록 여러모로 더 조심스럽다. 특히나 신앙적인 면에서 믿음의 직진을 요구하고 말하기에는 제한적이기도 하고, 그 강도나 횟수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자녀가 잘하고 있고, 순종적이고, 신앙적인 분위기 안에서 부모의 영적 권위에 보조를 맞출 때는 신앙적인 대화나 요구를 하기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하지만 엘리의 아들들처럼 정상궤도를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어느 순간 이미 한참 떠났다고 판단되었을 경우에는, 그래서 아차 싶은 그때부터는 어느 순간 부모로서 권면하고, 요구하고, 지적하고, 가르치는 것이 막막하고 어려울 수 있다. 해 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고,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알아서 할게요. 그러니까 너무 간섭하지 마세요.’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관이다. 이렇게 해서 한 가정과 한 인생이 망가지고 무너지게 된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영적 안테나를 세우고서 그의 상태와 상황을 읽어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가르치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부모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특권이고 소명이자 책임이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3.28)

 

어느 누가 자식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것을 좋아하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겠는가. 물론 인생은 다 자기 죄와 허물에 의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선다. 부모 때문에 자식이 심판을 받고, 반대로 자식 때문에 부모가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엘리(부모)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두렵다. 엘리와 엘가나의 가정을 돌아볼 수 밖에 없다. 부모의 책임과 역할에는 정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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