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4(묵상)
광인에서 증인으로
Luke. 8.26-39
본문 관찰
▪호수 저편으로 건너거자(22)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26)
∙군대 귀신 들린 광인(26-29)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30-33)
∙광인에서 증인으로(34-39)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36b)
▪예수께서 돌아오시매(40)
거라사 보고서
거라사의 한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는 더러운 많은 귀신인 ‘군대’(region, 로마의 보병 6천명 사단)라 이름하는 귀신이다. 그의 실상은 너무 참담하고 비참하다(27,29b). 예수께서 그를 만나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29a) 이미 명하셨고, 결국 돼지에게로 들어가기를 허락하심으로 마침내 ‘귀신 나간 사람’(35a)으로 주님 앞에 앉아 있다. 예수님은 그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것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세우신다.
거라사의 광인
[더러운 ‘군대’(많은 귀신)에 들린 자](26-32): 광인
예수 –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29)
광인 –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28)
예수 – 네 이름이 무엇이냐(30a)
광인 – 군대라 …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소서(30b)
돼지에게도 들어가게 허락하소서(22)
→ “예수께서 … 이에 허락하시니”(32b)
→ 돼지에게 들어간 귀신들이 호수에 들어가 몰사(33)
→ [귀신 나간 사람](35-39): 증인
풍랑(광풍)이 일어난 갈릴리 호수를 뚫고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가다라, 마8.28)로 건너가신 이유가 드러난다(22,26,40). 한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시고, 그에게도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치유를 통해 경험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귀신에 눌려 살아가는 한 사람을 살리고 회복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소명에 충성하신다.
이 귀신 들린 자의 처음 형편은 참담하다. 오래 옷을 입지 않았고, 집이 아닌 무덤 사이에 거주하였고(27), 가끔 귀신이 역사하면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켜야 했는데 그것을 끊고 귀신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는 등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이었다(29). 그런 그가 예수님을 보고 부르짖는다: “나님의 아들 예수여 …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28)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점점 그 나라가 확장되어가자 귀신은 이처럼 자신의 마지막이 임박한 줄을 알고 사람들 안에 역사하며 지옥과 같은 삶을 살게 만든다. 이 ‘귀신 들린 자’에게 들어간 귀신의 정체는 ‘군대’(region, 로마의 보병 6천명 사단)다. 이 마귀는 최후에 무거갱에 들어가야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31) 이것만은 면하게 해 달라고 강청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을 파괴하고 짓밟았으면서 자신은 살 궁리를 하고 있음이다. 이것이 악과 죄와 악한 영인 사탄의 정체다.
거라사의 근방 모든 백성들
이 일로 거라사 사람들은 무려 2천 마리나 되는 돼지를 잃게 되었다(막5.13 참조). 사실 한 사람의 회복의 값 치고는 어마어마한 대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껏 악한 귀신의 지배를 받아 비참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회복된 것을 기뻐하고 축복해야 하는 게 옳은 것 아닌가. 하지만 아직 하나님의 나라를 알거나 경험하지 못한 이방의 땅 거라사 사람들은 재산(돈)의 축남이라는 현실적인 손해가 무엇보다 큰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어떻게 ‘귀신 나간 사람’이 되었는가를 알고 본 자들이 마을로 돌아와서 어찌된 일인지 다 알렸음에도 불구하고(36), 거라사의 땅 근방 모든 백성들이 보인 반응은 예수님께 거라사를 떠나 달라는 요구였다(37). 왜 그랬을까. 아마도 더 큰 재산의 손해가 일어날까 염려했을 것이다. 이 세상 나라의 풍요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거부하고 거절한 셈이다.
부스러기 묵상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38b-39a
제자들과 예수님 일행은 다시 갈릴리로 되돌아온다(36b).
때문에 거라사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와 영광을 따라 사는 것을 거부한 채 어둠과 죄와 세상 나라의 식대로 살아가는 곳인 처음 그대로다. 하지만 예수님의 일행과 동행하기를 원하던 ‘귀신 나간 자’는 거라사 그것에 남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주님께서 그를 그곳에 남겨놓으셨다(38). 왜 그러셨을까. 그 답이 39절이다.
그는 어둠과 죄와 사탄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거라사에 심겨진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과도 같은 자다. 주님은 주와 복음을 거절한 인생들에게도 ‘증인’(전도자)을 한 알의 밀알처럼 남기시고, 보내시고, 심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맛본 자의 소명이다. 광인에서 증인으로 회복되고, 다시 거듭난 ‘귀신 나간 자’는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39b) 한다. 주는 우리에게, 우리 교회로 하여금 이처럼 살라 명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