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9b(Heb. 11.5-7)
믿음으로 살라!
본문 관찰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에녹과 노아
구약을 신약과 동일하게 구원사적 [믿음사관](信仰史觀)으로 보는 것은 절묘하다.
믿음은 신약의 전유물이 아니다. 율법과 할례와 제사를 말하는 구약이 그 무엇보다 믿음을 언행하고 있어서다. 이 점이 히브리서 11장이 가지는 신학적 위치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인 히브리(유대)인들은 고통과 핍박 때문에 다시 옛 언약인 동물의 피를 통한 제사법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다(6.4-6, 10.26-29).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은혜 안에(아래) 있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10.19).
바로 이처럼 교차로에 서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바로 그 믿음으로 사는 길(1.1-10.18 → 10.19- )을 믿음의 선진(先進)들을 통해, 오늘은 그 가운데서 에녹과 노아의 생애를 통해 가르치면서, 다시금 믿음으로 사는 길을 함께 걸어가도록 격려한다.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고(에녹), 믿음은 예비하는 것이다(노아).
에 녹(5-6) - 동행하기
에녹에 대한 기록은 극히 제한적이다(5-6, 창5.21-24, 유.14-15). 하지만 그는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자식이나 가정 없이 홀로 수도원에서 되어지는 삶은 아니다. 에녹은 자녀를 양육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① 高3이 된 후 1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입시공부를 하였다.
② 高3 엄마가 된 후 1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양육했다.
③ 입사한 후 3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직장생활을 하였다.
④ 28세에 큰 아이를 낳은 후 3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
⑤ 암(癌) 선고를 받은 후 1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음을 섬겼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그의 생애가 달라졌다. 므두셀라를 낳은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어떤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축복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 믿었다. 황소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은 이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한다. 이것이 11장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5b)로 살았다는 의미인데, 이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믿음’ 때문이었다. 예배 때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같더니, 예배가 마치면 “하나님 그럼 일 주일동안 교회 안에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 주에 뵙죠?” 하고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버리는 자들로서는 도저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신앙이 아닌가.
한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인데, 이처럼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서는 첫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 믿어야”(6a)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6b) 한다. 이것이 하나님만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이 전부인 사람의 삶이다.
나는 高1 여름방학 때 은혜를 받은 후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목회(牧會)를 해 오고 있다. 그때의 축복(성경공부와 QT)이 이렇듯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 되도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는 기회가 되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처럼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것이 시련과 고통이었는지, 아니면 형통과 감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후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이와 같은 에녹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 아(7) - 예비하기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노아의 가족 → 믿음의 가족(창5.21- )
믿음의 사람, 노아(창7.4,10)
(1) 방주를 만들 때(벧전3.16-17,20)
(2) 방주에 들어갈 때(마24.37-38)
(3) 방주에 들어간 후에
‘방주에 들어간 이후’가 주는 메시지
(1) 우리의 위기는 바로 이때이다.
a. 만족, 자만, 교만할 때
b. 뭔가 성취했을 때
c. 초조한 기다림
(a) 의심
(b) 사람들의 계속되는 비웃음과 조롱
(c) 어쩌면 헛수고(?)일지도 모른다.
(2) 최후의 기회이기도 하다.
a. 아브라함의 심정도 그러했을 것이다(창22.4,7)
b.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c. 인생의 위기는 가장 큰 축복의 기회이다.
1. 당신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2. 그렇다면 방주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당신의 몫이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방주는 건설하는데 100년이 소요되다(창5.2, 7.6).
노아의 믿음 → 100년을 인내하며 승리한 믿음
(1) 창6장 – 창9.17
(2) 하나님과 동행(창6.9, 7.6) → 600년 동안
실패하는 노아 → 성공 뒤에 찾아온 실패
(1) 창9.18-29(20-21).
(2) 350년이라는 홍수 이후의 삶이 겨우 두 절에 기록된다(창9.28-29).
(3) 술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나태와 침체의 자리가 문제이다.
왜 노아는 이렇게 무너지는가?
(1) 자만 때문이다.
(2) 성공 뒤에 찾아온 위기를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스러기 묵상
에녹과 노아를 믿음의 눈으로 보라.
다시 중요한 초점은 구약이 열리고, 아벨과 셋과 에노스로 이어지는 ‘여자의 후손’의 족보(가계)가 놀랍게도 믿음의 족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이 신약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되면서 그때서야 요구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에녹의 믿음은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 이 말은 에녹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심을 믿었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믿었다.
또한 노아의 믿음은 어떤 것인가. 그 기나긴 세월을 묵묵히 준비하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