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보라!(히 11.1-4)

20220719a(Heb. 11.1-4)

  

 

 

믿음으로 보라!

  

 

    본문 관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믿음으로 우리가 아나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믿음의 법칙

 

믿음은 종종 만능(萬能) 열쇄쯤으로 오해된다.

또한 자기 확신과 같은 것으로, 무슨 내가 만들어가는 자가발전(自家發電)과 같은 것으로 오해를 받는다. 혹은 간절함, 처절함,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식의 지극 정성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면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게 잘 되면 될 수록 내가 너 보다는 더 좋다.”는 식의 비교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무기쯤으로 착각한다. 이 경우 하나님은 없고, 믿는다고 하는 자신의 확신만이 믿음의 기준이 되어 버린다.

믿음마저도 자기 잘 먹고 잘 사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이런 인본주의적인 믿음이 성경적으로 바른 믿음인양 판을 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믿음의 사람들로 소개되는 사람들의 삶을 드려다 보면 자신의 무엇을 무기로 하나님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하나님에게 설득 당하는 자들로 살았던, 그럴수록 그 중심에 믿음의 법칙을 세웠던 사람들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때에 믿음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믿음이란?(1-3)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물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1-2, 현대인의성경).

 

성경은 인격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되지 않는 믿음은 단지 인간의 신념에 불과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란 대상의 문제이지,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따라서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의 확신이나, 인간 편에서 만들어진 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 벨(4) - 예배하기

 

인류 최초의 예배가 창세기 4장에 소개된다(4.1-8). 궁금한 것은 과연 저들은 어떻게 제사(예배)를 알았을까 하는 점이다. 무작정 드린 것이 아니라, 분명한 제사법에 따랐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 궁금하다. 인간이 제사를 스스로 고안해 내어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추측(주장)할 수 있는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 편에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듯이, 제사 역시 하나님 쪽에서 당신에게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예비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친히 아담에게 제사를 가르치셨고, 또 명하셨을 것이다. 지금 이 예배가 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가인과 아벨은 아마도 부모로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10.14-15) :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4a)라는 말에는 아벨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제사를드리는 시작에서, 그래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의 완성까지 제사의 전 과정(process)이 들어있다. 하나님은 이 전체를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란 준비, 마음, 태도, 자세에서 더 나은 제사가 결정된다.

가인은 불행하게도 바로 이 예배자다움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는 예배 전()에와 예배 중()더 나은 제사그 예물이 일치하지 않았으며, 그랬기 때문에 결국 예배 후()에도 예배와 삶을 일치시키는 일에 실패한다(4.1-15):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5b-7)

이렇듯 믿음은 건강한 예배, 동시에 바른 예배를 낳는다. 아벨은 그가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예배를 통해 드러낸다. 믿음은 예배로 드러나고, 예배는 믿음으로 드려진다. 비록 바른 예배가 결과적으로 죽음을 가져오게 되었을지라도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예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 아벨의 실상이다.

신약에서도 아벨다움을 유지하며 살았던 사람이 있다. 그는 스데반 집사다.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믿음으로 사는 길을 걸어간다. 아벨이 그랬듯이 스데반 또한 죽음(순교)마저도 그것을 가로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믿음은 참된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비록 죽음일지라도 그것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것임을 아벨은, 역시 스데반은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4b)고 있다.

 

 

부스러기 묵상

 

믿는 것은 보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자, 또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실상은 보지 못했지만 증거는 있다. 그 증거가 히브리서 11장이다. 특별히 구약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 둘 나오는 것이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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