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종(從)이면 충분합니다(행 1.12-15a).

20190818(양무리교회)

  

 

 

()이면 충분합니다.

Acts. 1:12-15a

  

 

   본문 관찰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사도들이)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120명이나 되더라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의 아우들

 

    “저희가 그를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24.52-53)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 가운데 일부만 그들이 누군지 공개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들이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14a) 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이들이 지금 120명의 성령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느 것일까.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예수의 가족들은 이럴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야고보와 유다(1): 복음서

 

    예수님의 가족들(6.3, 13.35)

    어머니 - 마리아

    형제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3.21)

    ∙이는 그들이(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 3.22)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3.30-31)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7.6)

 

먼저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가족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무렵, 놀라운 것은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3.21)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뿐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7.5)었다.

이를 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6.4) 그 무수한 기적과 이적,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메사야 곧 구원자이심이 온 천하에 밝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불신앙에 사로잡혀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전환점]

 

    ∙복음서 / 예수님 - “이르시되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5)

 

       ->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 구원의 복음

 

    ∙ACTS / 베드로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2.38-39)

 

 

    야고보와 유다(2): 사도행전과 그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1.14)

 

    [야고보]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고전15.4,7a)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1.1a)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것으로 가니라.”(12.17)

    ∙“(베드로가)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이 내 말을 들으라.”(15.13)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21.17-18)

    ∙그후 3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15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를 보지 못하였노라.”(1.18-1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도,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2.9)

 

    [유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1.1a)

    ∙우리가 주의 형제들과 같이

         믿음의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전9.5)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예수를 믿지 않던 형제들(가족들)이었다. 그런데 마가다락방에 모여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다. 무엇이 예수의 형제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이 있었다. 그럼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고난)과 부활이 전환점이 된 것이다.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자, 사도행전 이후에 가족들의 모습은 변하여 새사람이 된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1.14)

마침내 야고보는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최고 지도자로서, 바울로부터 선교 보고를 받는 등 영적 리더십을 발휘한다(15.13, 21.18-19). 그리고 야고보는 야고보서(1.1)와 유다는 유다서(1.1)를 기록하여 복음의 영광스러움을 드러낸다.

 

이 놀라운 구원, 은혜를 받았는데...

 

무엇보다 참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그럼에도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으로 고백하며 헌신하였다는 점이다. 어느 곳에서도, 누구에게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다라며 위세를 떨거나 그런 것을 기득권 삼아 행세하지 않았다.

더 큰 은혜와 복음의 영광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라고 외치며, 말만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언행으로 복음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며 초대교회 지도자로서 주와 교회와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생명까지를 온전히 드렸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나는 예수의 종입니다!”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어머니이니라.”(3.32-35)

 

육신적인 혈통이 곧 구원 받은 자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가족됨이라는 영광은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도 요한 역시 이를 분명히 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물론 예수님께서도 그리 선언하셨다(3.34-35).

 

그렇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중심이다. 거듭난(중생한) 사람은? 회개한 사람은? 믿음의 사람은? 칭의(稱義), 즉 의롭다 인정된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다. 동시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그렇게 복음에 응답하며 살아도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면 충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나고 연약한 나를 종이라 불러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감격하며 주를 따르며,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제자의 삶을, 종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간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종입니까.

 

[예화]

종 놈들이나 시킬 일이지, 말세다 말세!”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한양에 들어와 살아가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조선 사람들이 볼 때 눈이 파랗고 머리가 금빛인 사람들, 거기에 입고 있는 옷까지 이 모든 것이 세상 천지에 처음 대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부르던 이름이 서양귀신이었다.

그런데 양반들이 일을 하러 오가는 길에 선교사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다. 이를 본 양반들이 한 말이 이렇다: “아이고, 말세야... 저런 힘들 일들은 종 놈들이나 시킬 일이지, 고쟁이 하나 걸치고서 망측하기도 하지.”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체통머리 없어 보였을 것이다. 이런 허드레 일들은 종들에게나 시켜 놓고, 정자에 앉아 이런저런 명령이나 하며 지내는 것이 인간의 품격이라도 되는 것인냥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예수님도 누군가 마루타를 세워놓고 그를 대신 고난 받게 하고, 십자가도 대신 감당하게 하고, 당신이 직접 죽을 것도 없이 대타를 세워놓고 말과 혀로만 메시야 놀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세상이 착각하는 종의 모습이고, 기독교가 가치있게 실행하는 종의 모습이다. 예수의 형제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사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사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신 복음의 성취와 영광을 통해 어떻게, 무엇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고 복음의 사람인가를 알게 되었다. 이 기적을 통과하면 그는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종으로 살아가도록 불러주신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인가를 알고 믿고 행하고 따르게 된다.

 

  

제목 날짜
03 종(從)이면 충분합니다(행 1.12-15a). 2023.04.29
02 선교, 예수님의 증인입니다(행 1.6-11). 2023.04.29
01 오신 예수, 오실 성령: 이제는 교회입니다(행 1.1-5). 2023.04.23
사도행전 맥잡기 202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