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선교, 예수님의 증인입니다(행 1.6-11).

20230108(양무리교회)

  

 

 

선교,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Acts. 1.6-11

  

 

    본문 관찰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오신 예수, 오실 성령, 가신 예수, 다시 오실 예수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선교란 무엇인가.

사도행전에서 선교는 구약이 바라보고 기다렸던 오신’(초림) 예수로 시작해서 세상 끝에 다시 오실’(재림) 예수로 완성된다(1.1 11). 그래서 다른 말로,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이자 그를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하고 증거하는 것이 선교다. 그렇다면 예수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선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교이고, 선교가 예수 그리스도다. 이것이 선교다.

간혹 예수 없이 빵이나 구호품이나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하고, 건물을 세워주는 것을 선교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것이 예수의 이름으로가 아니라면 정작 핵심인 예수는 없는 것이고, 그러면 그것은 가짜 선교다. 눈에 보이는 인간의 필요 물품과 물건들만 가는 게 선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이고 위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사도행전이 말하는 선교에 주목한다. 사도행전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하는 증인을 선교라고 말한다. 동시에 바로 그 증인에게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는 것으로 복음과 교회와 선교의 시작을 알린다.

 

 

선교는 오실 성령을 기다린다(6-8):

선교는 오신 성령 안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사도행전이 시작하려는 선교는 아직 오지 않았다. 1-2장은 선교를 준비하는 분위기다. 그래서일까. 예수님의 말씀(3-5,7-8)과 제자들의 질문(6)은 아직도 이질적이다. 예수님은 복음의 증인, 곧 선교를 말씀하고 있으나 제자들은 로마로부터 유대의 독립을 언행하고 있어서다. 이렇듯 예수님의 이르시되’(4,7) 사이에 서 있으나 이들의 이르되’(6)는 여전히 선교와 거리가 멀다. 제자들의 최고(最高)의 관심과 예수님의 최후 부탁(4-5)은 이처럼 분리되어 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그들이 모였을 때에”(4,6), 즉 몸은 함께 있지만 그러나 마음과 생각과 시각과 관심은 달랐다. 부활하심 이후에 40일 동안이나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의 일을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1.1-4). 최고의 지상명령을 받았음에도 말이다(28.18-20).

주님은 하늘의 일을 말씀하시나 제자들은 아직도 세속적, 이 땅, 정치적 독립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무렵부터 지금 시도행전이 시작되고 있는 1-2장까지 계속되고 있는 제자들의 잘못된 관심이다(20.20-24, 19.11b). 예수님은 곧 가실 것이고, 또 성령님은 곧 오실 것인데 제자들은 아직 복음과 선교와 교회 시대를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주님은 제자들의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신다: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회복의 때와 기한은 제자들이 알 바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기 권한에 감추어 두신 비밀이다(24.36,42-44,50, 살전5.1-2). 아직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제자들은 여전히 현세적이며,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독립을 원하고 있고, 이 땅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육신적이며, 세속나라에 초점이 가 있다.

이에 비해서 예수님은 종말론적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꿈꾸고 계시고, 저 땅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영적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가 계신다. 이것이 선교다.

그래서 그러나’(8a, 개역성경에는 빠져있다). , 그러니까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이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셔야만 주님이 원하시는 증인으로 서게 된다. 그러니까 선교하게 된다. 그러면 누구와 무엇을 위해 성령님은 오시는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아드리기 위해서라 하신다. 바로 선교를 위해서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예루살렘 보기를 원하신다. 동시에 유대와 사마리아도 보기를 원하신다. 역시 동시에 땅 끝까지 보기를 원하신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증인으로 감당하기를 기대하신다. 이것이 선교이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의 건강한 증인으로, 가족과 가정에서도 증인으로, 직장과 세상과 사회생활을 통해서도 증인으로, 문화와 지역이 다른 땅 끝까지의 선교를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니까 선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이 바라보는 선교의 무대는 온 세상이다. 주님은 교회 안에서만 당신의 증인으로 살아달라고 하지 않으셨다. 선교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다.

나는 신실하신 주님의 증인됨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나는 사도행전적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선교의 증인으로 서 있는가?

 

 

선교는 이미오신 예수님의 명령이다.

선교는 가신 예수, 다시 오실 예수로 완성된다(9-11).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24.50-51)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9)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신다(10).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자들에게 천사의 메시지가 들린다: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 살전4.16). 정말 아멘이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복음은 진리다. 이를 재림신앙이라 부른다: “내가 신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예수님의 재림은 성경의 마지막 예언의 성취이자 그 완성이다(11, 14.3, 살전4.16, 9.28, 10.37, 5.8, 벧후3.10, 요일3.3, 1.14-15), 14.1,3-4, 4.1-2). 이처럼 선교는 역사의 끝인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라는 재림까지이다.

재림하시는 주님은 육체로(11), 그리고 인격적으로 친히(살전4.16), 보이는 모습 곧 가현적으로(요일3.2, 1.7), 갑자기(24.27), 예기치 않을 때에(24.44,37-39, 13.35-36), 영광스럽게(살후1.7-10, 19.11-16) 오실 것이다. 오셔서 자기 백성을 영접하시고(살전4.16-17, 고전15.51-53, 19.8), 그의 종들을 상주시고(16.27, 19.11-27, 고전9.25, 살전2.19, 딤후4.8, 벧전5.4, 3.21), 그리고 심판과 통치(14.12, 고전3.13-15, 15.24-26, 25.32, 살후1.7-10, 1.14-15, 14)를 통해 만왕의 왕으로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이 영광의 그날이 오기까지 사도행전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 영광의 그날이 오기까지 선교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늘 우리는 보내는 선교사로 헌신하고자 한다.

 

 

부스러기 묵상

 

선교는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주님의 명령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혈통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구약은 이미 이 진리를 알고 있었는데 이를 베드로는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그 증거로 선포한다(2.16-21; 2.28-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가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제 우리도 사도행전처럼, 베드로처럼, 사도 바울처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선교에 더 헌신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오신 성령 안에서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으로 선교에 참여하고자 한다. 보내는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위해 선교에로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건강한 교회, 행복한 공동체로 더 충성하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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