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맥잡기

양무리교회(20230423)

  

 

    

사도행전 맥잡기

Acts. 1.8

  

 

    구조 관찰

 

    베드로: 예루살렘

       예루살렘 교회(1.1-8.3)

          교회의 설립(1.1-26)

          오순절 성령강림(2.1-47)

          교회성장(3.1-26)

          제1차 박해(4.1-22) 은혜와 위기(4.23-5.16)

          제2차 박해(5.17-42) 은혜와 위기(6.1-7.60)_ 6.7

          제3차 박해(8.1-3)

       유대와 사마리아 교회(8.4-12.25)

          사마리아선교(8.4-40)

          사울의 회심(9.1-31)_ 9.31

          베드로의 이방 방문(룻다, 욥바, 가이사랴, 9.32-11.18)

          안디옥교회 설립(11.19-26)

          제4차 박해(12.1-25)_ 12.24

    바 울: 안디옥

       땅 끝과 이방 교회(13.1-28.31)

          제1차 전도여행(13.1-14.28)

          예루살렘 총회(15.1-35)

          제2차 전도여행(15.36-18.22)_ 16.5

          제3차 전도여행(18.23-21.16)_ 19.20

          예루살렘() 로마(西, 21.17-28.31)_ 28.31

  

 

누가행전, 성령행전

 

헬라어 사본의 명칭대로 읽는다면 "거룩한 사람들인 사도들의 행전"이다.

여기서 '행전'(Acts)은 사도들의 사색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 그들의 '성취'를 기록한 것을 뜻한다. 저자인 의사 누가(Luke, 딤후4.11 참조)에 의해 처음 이 책이 기록되었을 때는 원래는 누가복음과 하나의 책이었다. 그래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하나로 연결할 때 [누가행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바울이 아직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던 AD 61년경에 행 28장의 기록이 끝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사도행전은 아마도 AD 61-3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누가는 하나님의 교회의 탄생과 성장의 31(6.7, 9.31, 12.24, 16.5, 19.20, 28.30-31)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사실 원저자는 성령님이시고 누가는 성령님께서 어떻게 교회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또한 세우시는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증인이요 그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불리어지고 있다.

 

 

성 령(Holy Spirit)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1.8)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2.4, 4.31)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8.15-17)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10.44)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16.6)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19.2)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19.6)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20.28)

 

성령님이 임하시는 몇 가지의 통로가 소개된다.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1.4b, 24.49)을 기다리며 다같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님이 각 사람 위에 임하셨다(2.1-4, 8.14-17, 9.17, 19.1-7). 둘째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10.24) 앞에서 설교(10.34-48)를 할 때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셨다(10.44). 셋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다(19:1-7). 에베소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었으나 성령님이 계심을 듣지도 못하고 있었고, 요한의 세례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세례를 받고 바울이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 한편 세례와 관련하여 성령님의 임재가 여러 차례 소개되는데 물세례 성령세례(2.1-4,38, 8.14-17, 19.1-7)와 성령세례 물세례(10.44-48)로 이어지는 흐름이 함께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간의 행위가 성령님의 오심이라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다는 점이다. 오히려 성령님이 찾아오시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가 무엇을 하고 있을 때인가를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령님은 말씀과 기도와 세례라는 은혜의 방편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당신의 능력으로 붙드신다. 만약 인간이 무슨 언행을 통해 성령님을 불러온다면,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성령님은 인간에 의해 움직이는 인조신(人造神)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의 열심과 간절함을 동반한 종교적인 행위가 성령을 받는 일에 필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 살아가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성령님의 임재는 땅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하신다. 바로 이분이 사도행전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이다.

  

 

설 교(Preaching)

 

    베드로의 설교

       ① 120명의 형제들(1.15-22)

       ② 유월절의 각 지방 유대인들(2.14-36)

       ③ 솔로몬 행각에 모인 무리들(3.11-26)

       ④ 산헤드린 회원들(4.8-12)

       ⑤ 산헤드린 회원들(5.29-32)

       ⑥ 고넬료 가족들(10.34-48)

    스데반의 설교

       ⑦ 산헤드린 사람들(7.1-60)

    바울의 설교

       ⑧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의 유대인들(13.13-52)

       ⑨ 아덴의 아레오바고에 있는 이교도들(17.16-31)

       ⑩ 헬라인, 에베소교회의 지도자들(20.17-38)

       ⑪ 예루살렘 성전의 군중들(22.1-21)

       ⑫ 로마총독 벨릭스(24.10-21)

       ⑬ 유대인의 왕 아그립바2(26.1-23)

 

설교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소개된다. 먼저 베드로의 설교(2.14-36)를 들은 청중의 반응이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2.37) 했다. 스데반의 설교(7.1-53)를 들은 청중들 역시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7.54)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마음에 찔려는 같았는데 그에 따른 행동은 전혀 달랐다. 전자(前者)우리가 어찌할꼬?”, 후자(後者)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이었다. 이렇듯 12편의 설교에는 긍정적인 반응(①②⑥⑧⑨⑩)과 부정적인 반응(③④⑤⑦⑧⑪⑫⑬)이 각각 섞여있다. 말씀을 들을 때 회개()와 성령님이 임재()하는 은혜를 받았으며, 여러 방해 가운데서도 복음을 좇고() 믿었으며() 함께 눈물로 기도하며 축복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에 반해 전도를 금하며 위협하더니() 거기에 채찍질까지 하였고(), 급기야 스데반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시기와 비방과 비웃음이 계속되었고(⑧⑨), 바울까지 죽이려고 했으며(), 복음보다 상황과 현실을 택하거나(), 아예 바울더러 미쳤다고 몰아붙이는 자도 있었다(). 이렇듯 복음은 언제나 받아들여지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누가 전하느냐와도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베드로, 스데반, 바울과 같은 능력의 설교자들이 말씀을 증거하였음에도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였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증인들로 세우사 타락하고 죄 많은 세상을 복음으로 새롭게 하시는 일을 결코 중단하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신다.

 

  

성 장(Growth): 복음의 지리적 확산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1.1)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1.2)

    “모인 무리의 수가 한 120 명이나 되더라.”(1.15)

    “이날에 제자의 수가 3,000이나 더하더라.”(2.41)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7)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000이나 되었더라.”(4.4)

       ➜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6.7)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9.31)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11.20-21)

       ➜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12.2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13.44)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14.1)

       ➜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더라.”(16.5)

       ➜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19.20)

    “유대인 중에 믿는 자가 수만 명이 있으니”(21.20)

       ➜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28.31)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시작된 복음의 역사는 12 사도를 축으로 120 명이 모여 교회가 설립되었고, 성령님이 임하심으로써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복음의 불길은 유다와 사마리아를 지나 땅 끝 로마(西)에까지 확장되었다. 교회는 비록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흩어졌지만(8.1- ) 오히려 환난과 핍박은 복음이 증거되고 교회가 더 든든히 성장해 가는 씨앗이 되었다(9:31). 이를 통해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됨으로써 18절의 사명은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베드로(1-12)와 바울(13-28)은 이 위대한 사명을 성령님의 도우심과 함께하심 안에서 멋지게 성취한다. 성장은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진 값진 열매였다. 이는 어떤 어려움과 위기 앞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생명을 건 전도자의 사명 속에서 맺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도행전의 사람들을 통해서 신약교회의 기초와 다리를 놓이셨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는 시작하자마자 어려운 문제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5.1-8.3). 내적으로는 부정행위(5.1-11)와 목회 행정적 문제(6.1-7), 외적으로는 핍박으로 인한 환난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이다. 이 풍랑 인연하여서 성장하고 있음이 놀랍다.

 

  

베드로 & 바울

 

    베드로(Peter)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1-32)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2.8a)

 

    바 울(Paul)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11.13)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2.8b)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2.7b)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증인’(1.8)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았다(1-13). 또한 바울은 안디옥을 중심으로 땅 끝 로마까지 역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충성을 다 하였다(14-28). 사도행전은 이 두 사람을 양 날개로 삼아 성령의 능력을 따라 구원의 바다를 항해한다. 하나님은 이들을 사람 낚는 어부들로 사용하사 18절의 위대한 사명을 성취하신다. 이들은 복음이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어떻게 능력이 되는가를 몸소 보여주었다. 특별히 베드로는 이방 방문(9.32-11.18)을 통하여 자신들과 저희들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동일한 역사를 예루살렘교회 앞에 보고함과 아울러 안디옥교회(11.19-30)가 설립됨으로써 [베드로행전]에서 [바울행전]으로 넘어가는 일을 준비한다. 이것은 성령께서 사도행전의 역사를 주장하시기에 가능했다.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1.3b)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8.12)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19.8)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20.25)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28.23)

    “바울이 온 이태를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28.30-31)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부활 후 40, 그리고 사도행전은 물론 이후에도 변함없는 흐르고 있는 성경의 중심 주제다(1.3, 1.3, 8.12, 19.8, 20.25, 28.23,31). 사도행전은 바울의 에베소와 로마에서의 사역을 하나님의 나라와의 연관성(연속성) 안에서 이해한다.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3년을(19.8,10, 20.25,31, 5.5), 그리고 로마에서의 2년을(28.30-31, 14.17) 줄곧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다.

그렇다면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러니까 예수님과 사도들의 주된 관심은 동일했고,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결국 사도행전에서 추구한 복음의 전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1.8) 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었으며, 이 복음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하는 자다. 이처럼 사도행전의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자들의 삶을 소개해 준다.

이렇듯 복음이 땅 끝까지 거침없이 전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가지만 이를 방해(박해)하는 세력은 어디에나 어느 때나 끊임없이 나타났다: 외적 핍박(4), 내적 부정과 갈등(5-6), 박수 엘루마(13), 유대인들, 특히 40인 결사대(23-26), 가이사라에서의 2년 투옥, 유라굴로 광풍(27), 멜리데 섬의 독사(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찬송가 장)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거침없이전파된다.

 

  

부스러기 묵상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가르치더라.

      모든 담대함으로 거침없이.”(28.31, 私譯)

 

사도행전은 미완성교향곡이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1.4, 24.49)이 오셔서 예루살렘에서부터 땅 끝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1.8 9.31 23.11 28.16).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죄수의 몸으로 묶여있다. 위대한 시작에 비해 마지막은 초라하기 그지없을 뿐 아니라 결론도 모호하다. 누가는 여기서 [성령행전]의 마침표(period)를 찍지 않는다. 그리고 2831절 이후를 [교회행전]의 여백으로 남겨 놓는다. 그때로부터 사도행전 29장이 쓰여지기 시작하여 신약교회 2,000 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교회는 여전히 성령님의 불꽃 안에서 꺼지지 않은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 있으며, 이 일은 주님의 약속하심대로 그가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렇듯 사도행전의 결론은 주의 재림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사도행전]의 역사는 이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온 인류 안에 타오를 것이다.

사도행전은 증인들의 삶과 언행을 통해서 성도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세미한 음성으로 말하고 싶어한다. 거듭되는 핍박과 환난의 연속 속에서도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처절한 삶을 천국상급으로 쌓아간다. 아무도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을 슬퍼하거나 후회하거나 절망하거나 배도(背道)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몰락(5.1-11)은 매우 충격적이다. 성령 안에 살면서도 -이들은 소유를 팔아 교회 앞에 드릴 정도로 초대교회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옛사람의 삶의 방식을 넘나들며 언행할 수 있다는 것은 성령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져진 하나의 숙제와 같다. 또한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15.39a)는 바울과 바나바에게서 사도행전에 불어닥친 높은 파도를 목도하게 된다.

나 역시 나에게 주어진 목양행전을 완수하기 위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는 길을 따라 여기까지 걸어왔다. 사도들과 비교할 순 없지만 나의 받은 소명과 달란트를 주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그날까지 최선의 경주를 할 생각이다.

결코 뒤돌아갈 수 없는 인생, 후진기어가 없는 인생, AS가 되지 않는 인생, 연습이 없는 인생,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인생이 아닌가. 어쩌면 남은 생을 향해 반환점을 돌고 있는지도 모르는 때를 살아가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려는 습관을 접어 버리고서 이제는 앞만을 향해 달려가야 할 것 같다. 사도들에게 물려받은 바톤(baton)을 다음 증인들에게 물려주는 그날까지 성실과 인내로 최선의 경주를 해 볼 참이다. 이를 위해 먼저 담대하게 거침없이뛴 증인들의 삶을 드려다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값진 준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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