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떡 시험지, 말씀 답안지(마 4.1-11)

20211010(양무리교회)

 

 

 

떡 시험지, 말씀 답안지

Matt. 4.1-11

 

    본문 관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네가 만일 8.3

    네가 만일(91.11-12) 6.16

    네가 만일 6.13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네가 만일 (If you): 떡 시험지 앞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다(1, 16.1, 19.3, 22.18,35).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받아들여야 할까(4.15). 주께서도 받으신 시험이라면 우리가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시험은 사람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먼저 알고 인정해야 할 것은 시험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탄이 하는 시험 치고 나를 잘 되게 만들기 위해서, 나를 성숙한 성도로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런 선()하고 복()된 것을 목표하고 시작된 시험은 없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고 난 이후에도 마귀로부터 시험이 찾아온다(1-2). 영적으로 무능하고,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구는 신앙의 단계에만 시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은혜를 받고, 영적으로 민감한 삶을 살고, 성령에게 이끌리어 살아도 시험은 예외가 없다. 예수님에게도 시험은 찾아온다. 40일 금식 후 배가 고프셨을 때에 시험하는 자 마귀가 다가왔다.

 

 

예수님과 시험,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첫째 시험(3-4, 네가 만일 8.3):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귀(시험하는 자, 3)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4)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신명기(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

 

사탄은 만일’(If)로 시험하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물리치신다. 밤낮 40일을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시장하실까(2). 이렇듯 시험은 늘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부분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정도의 상태라면 누가 되었든 유혹을 받을 만하다.

한편 앞에서 하나님께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3.17)라고 하셨음에도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3)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이 말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면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살리는 생명의 떡 같은 것으로는 말고, 돌이 떡 되게 하는 것은 하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4a)처럼 사람이 떡으로살지만 떡으로사는 것은 아님을 주님은 아셨다. 떡이 인간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핵심은 아니다. 주님은 그래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4b) 하신다. 떡은 이렇듯 사람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사는가의 문제를 흐리게 만든다. 사탄은 이 부분을 교묘하게 노린 것이다.

   

 

오병이어(五餠二魚)5천명을 먹이신 표적(6.1-15,22-71)

그렇다면 사람이 사는 것이 떡으로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인가?

 

    ▪돌들 떵덩이가 되게 하라! 신명기 83

    ▪오병이어(五餠二魚) 5천명/떡통령 요한복음 6

 

사람이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를 위해 요한복음 6장으로 가 보자. 놀랍게도, 요한복음 6에 따르면 이번에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맛본 청중들이 움직인다: “그들이 배부른 후에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12,14). 예수께서 배고품, 즉 떡의 문제를 해결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떡통령으로 생각한다. 이들이 생각한 오실 그 선지자는 떡의 문제를 해결할 이스라엘의 왕이다(15). 바로 배고픔과 육신의 일용할 양식을 걱정 없이 공급해 주는 그런 왕이다.

그래서 사탄이 속삭인다: “,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떡이잖아. 지금 빚 갚아야 하잖아. 지금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시켜야 하잖아. 너 그 나이에도 전세살이나 전전하는 게 창피하지도 않냐. 은퇴하고, 자식들 다 성인이 된 다음에, 그때 가서 봉사하고 헌금하고 말씀대로 살아도 늦지 않아. 지금 먼저 떡의 문제부터 해결해!” 이렇듯 떡의 유혹만큼 강력하고 강렬한 메시지는 없다.

 

    ∙사탄 - “예수, 예수라고? ,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안 돼! 그러면 너 죽어!”

                 “돌들 떡덩이가 되게 하라! 떡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부모 자녀들아,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돈, 대학, 아파트로 살아가는 거야!”

                 “봉사, 헌신, 예배, 교회, 믿음, 말씀으로는 떡이 만들어지지 않아!”

 

이때 예수님은 이 시험 앞에 있는 우리에게, 사람이 사는 게 무엇으로 말미암는가를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6]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게 아닌 것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26-27a)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4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 하시니라.”(51)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7b-58)

 

사탄은 예수님이 주리신 때를 기회 삼아 떡의 유혹을 통해 넘어지게 하려고 했다. 이뿐 아니라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맛본 청중들에게도 예수님께와 동일하게 떡의 문제를 해결하는 메시야를 요구하도록 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시험하던 마귀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그냥 놔 둘 리가 없다. 그 옛날 애굽과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유혹하고 넘어지게 한 게 바로 먹을 것, 곧 떡이다. 그럼 지금도 돌이 떡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가 받아든 시험지다.

성경은 물과 먹을 것을 달라고 징징거린 구약의 광야교회 이스라엘이나, 육신을 입고 오셔서 메시야로서 그 길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떡을 주는 떡통령이 되어 달라고 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청중들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먹으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던 오늘 우리에게나 떡 앞에서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 8.3)

떡타령이나 하면서 육신을 위해 살 것이냐?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으로 살 것이냐? 주님은 우리들 보다 앞서 이 떡 시험지를 받아드셨고, 마침내 멋지게 말씀 답안지를 보여주신다.

   

 

부스러기 묵상

 

    [떡 시험지, 말씀 답안지, 나의 보고서]

    “여러분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여러분이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시험을 당할 때도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고전10.13, 우리말성경)

 

예수님이 신명기 83절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것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한 것으로 사는 게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 하신다. 그렇다면 만나로 사는 게 아니라 만나를 먹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그렇다면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사는가: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6.57b-58) 오병이어(五餠二魚)를 베푸시는 주님으로 사는 것이다.

가난하고 배고플 때는 교회가 주는 떡이 복음인 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예수와 복음을 만났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가난하던 세상에서 부하게 되면서부터 떡의 복음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예수와 교회와 복음까지 다 버렸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도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우리 가정들과 자녀들이 점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배부르게 하는 떡을 바라보며 사는 것 같아서 더 그렇다.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산다는, 육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해 복음으로 산다는 것을 버린다면 떡 시험지에 쓴 우리의 답안지는 꽝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오병이어(五餠二魚)떡과 광야의 만나를 통해서도 복음의 본질, 즉 말씀으로 산다는 진리를 배우고 확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으로의 승리를 경험하지 못하고 결국 떡 시험지를 받아놓고서 떡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다가 그만 어느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고 말 것이다.

주님은 사탄이 던지는 시험을 오직 말씀으로 이기셨다. 배고프면 다시 필요한 떡, 또 더 있어야 하는 떡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생명은 살아있는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 세상이라는 일용할 떡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라는 하늘의 말씀마져 나의 목적과 필요를 위해 액세서리(accessory)로 취급했던 죄들이 나를 무너지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지금도 떡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세상과 죄의 유혹을 주님처럼 말씀으로 이겨보자. 그럴 때도 되었다. 만나라는 떡으로만 살 수 없다. 그것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다 죽었다.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가 빠진 오병이어(五餠二魚)만으로는 이 땅의 배고픔과 허기만 모면하게 된다. 이 허기진 인생의 배고픔은 떡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또한 떡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생명은 살아있는 떡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먹는다.

 

떡을 더 주는 것이 망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살라.

돌이 변하여 만들어진 떡을 든 순간, 말씀은 사라진다.

살리는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 그렇게 얻고 싶은 떡이 죽음을 가져온다.

세상의 떡통령으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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