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세례 요한: 광야에 서다(마 3.1-17).

20211003(양무리교회)

  

 

 

세례 요한: 광야에 서다.

Matt. 3.1-17

 

    본문 관찰

 

    세례 요한의 활동(1-12)

    예수님의 세례(13-17)

  

 

세례 요한과 예수님

 

    ② [신약] - 신약이 성취한 사람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1.80)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3.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1-3a)

 

무대가 나사렛’(2.23)에서 빈 들이자 광야’(1)로 옮겨간다.

여기 그 때에는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계신 때이자, 요한 자신은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1.80)인 지금,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1)여 외치기 시작하는 때다. 마침내 요한이 언행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복음서는 왜 주연(主演)이신 예수님의 이야기 앞에 조연(助演)인 요한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누가 요한에게 이처럼 하라 했을까. 그는 무엇에 근거해서 이처럼 말하기 시작하는가. 그는 이렇게 해야 할 사명과 소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언제, 누구로부터, 어떻게 알았을까.

요한은 죄사함의 세례(4-6)를 통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5)을 영적으로 깨어나게 함으로써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소명을 다한다. 그리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풂으로써 모든 의를 이루는”(15) 일에 기꺼이 자신을 헌신한다.

또한 설교(1-3,7-12)를 통해 주의 길을 예비하라!”(3)는 메시지와 함께 임박한 진노’(7)를 피할 것을, 그러면서 종말론적 심판주(審判主)이신 예수님을 무대에 소개하고서 자신은 객석으로 내려 앉는다(12). 그는 자신이 일 할 때를 알았고(1),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았으며, 또한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일을 마무리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요한이 이처럼 등장하고 일하게 되는가?

   

 

세례 요한, 그는 누구인가.

 

    ① [구약] - 구약이 약속한 사람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40.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3.1a)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않으면 두렵건데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4.5-6)

 

요한에 대한 말씀은 구약, 출생 전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 출생 후 아버지 사가랴의 예언, 세례 요한 자신,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가 누구인가가 드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출현이 이사야 40장에 이미 예언되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침내 이 계시가 말라기 선지자를 거쳐서 신약 안에서 그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한다. 무려 30년이라는 시간이다.

 

먼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40.3)

요한에 대한 메시지는 이사야서까지 올라간다: “일렀으되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3) 이를 다시 이사야서로 가서 그대로 읽어보자: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40.3)

요한은 물론 신약이 이사야서에서 예언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출현을 과연 어떻게 알았을까. 이것은 요한의 정체와 그의 등장과 관련된 중심 주제다.

 

둘째로, 요한이 출생하기 전에 천사 가브리엘의 예고(1.19)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1.16-17)

 

셋째는, 요한이 출생한 후에 아버지 사가랴 제사장의 예언(1.67-80)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1.76-78a)

 

넷째는, 요한 자신의 구약을 통한 자기 이해다. 그러니까 구약의 선지자들(이사야, 말라기), 출생 전 가브리엘의 예고와, 출생 후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의 예언에 기초한 요한 자신의 자기 이해다. 이것은 요한이 이것들을 믿고 따르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헌신까지를 포함한다.

 

다섯째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선언이다(11.2-15):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11.9b)

마침내 요한이 누구인가가 밝히 드러나고 확증되는 순간이다. 예수님의 말씀에서다.

 

    ③ [예수님] - 예수님이 증거한 사람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리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11.10)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11.14)

 

[1] 말라기 선지자가 예고한 자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리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11.10)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 403절과, 말라기 31절 말씀이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누구인가. 말라기를 끝으로 구약은 문을 닫고 300년에서 400년 가까운 중간기, 즉 암흑기로서 계시가 중단된 시기이다. 그런데 지금 요한이 구약의 끝의 가지에서 신약의 새 순을 돋게 하는 씨앗, 곧 구약과 신약을 잇는 자로 마침내 그 문을 열고 있다. 이렇듯 그는 메시야 그리스도의 길을 주 예수 앞에서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말라기 선지자는 예고(예언)하고, 세례 요한은 이를 성취하고, 예수님은 이 말씀을 확증하신다.

 

[2] 말라기 선지자가 오리라 한 엘리야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11.14) , 그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또 무슨 말씀인가. 다시 말라기 4장이다. 구약은 그 끝에서 여호와의 날’(4.1)이 반드시 올 것을 예고한다. 그리고 그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리라 하신다(4.1-2a,5-6)

 

누가복음 180절에 의하면, 이렇게 해서 마침내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기 시작한다(1). 이것이 요한이 등장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구원의 십자가의 길을 예비하는 자인 세례 요한이 외치기 시작한다. 400년이라는 암흑기가 물러가고 복음의 새 날이 밝아왔다.

   

 

세례 요한의 활동(1-1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2)

 

그의 설교는 광야에서 선포된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예루살렘 한 복판이 아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유대 광야로 나아온 자들 중에는 예루살렘의 유력한 자들(5), 특별히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7a)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재미난 무용담이 아니었다. 그는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는 자로서(3, 40.3)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강력한 말씀을 선포한다.

회개가 무엇인가. 핵심은 8절이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죄사함을 받은 세례를 받았으면, 그러니까 이제 죄로부터 돌아섰으면 거기에 따른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쭉정이, 10,12)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우게 된다. 지금 이 일을 시작하시고, 마침내 성취하실 분, 그분이 오셨다는 것을 선포한다(11-12).

요한의 이러한 영감과 통찰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어디로부터 왔을까. 그는 광야에서 홀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깨닫고, 그걸 위해 자신의 전부를 불태운다. 자신이 일해야 할 때를 알았고, 사명을 알았고, 또한 주님 뒤로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았다.

   

 

예수님의 세례(13-17)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테인데 당신에 내게로 오시나이까.”(14)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17)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 스스로가 먼저 결정하신 일이다(13).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b)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죄사함을 위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왜 세례를 받으셔야 했을까. 때문에 요한의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럽다(1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야’)이심을 알린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를 확증하신다(16-17). 그 사이에 세례가 자리한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요한과 예수님과 세례가 있다. 동시에 하나님이 그 곳에 찾아오신다. 이것이 주님께서 지금은 이렇게 하도록 하여라.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15, 표준새번역)라고 하신 말씀 안에 들어있는 섭리가 아닌가 싶다.

이 섭리는 세례 이후에 더욱 풍성하게 드러난다.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러 화답하는 것을 보신 성자 예수님,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17; 2.7, 42.1 참조) 말씀하시는 성부 하나님, 비둘기 같이 내려와 예수님 위에 오신 성령님, 이렇듯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메시야이심을 온 천하에 공포하신다. 요한이 어찌 이 영광의 섭리를 막을 수 있으랴.

   

 

부스러기 묵상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3a)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의 나이 30세가 되어가는 즈음에서야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 아니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엘리야와 같은 소명의 사람이다. 그리고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를 통해 구약이 예언하고, 천사 가브리엘이 수태고지로 알려준 메시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자로, 빈 들 광야에서 그 때를 준비하며 하나님의 시작을 기다렸다.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충성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전부를 오직 하나님의 복음이 시작되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시작하는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불꽃처럼 준비된다.

*세례 요한은 예고편이다. 그렇다면 본방송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본방송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다. 그는 이제 곧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다. 이를 통해 곧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실 것을 알고 믿게 된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소명이다.

우리 역시 복음을 드러내고 알리는 1030분에 치는 예비종이다. 그러면 , 이제 곧 11시에 주일예배가 시작되겠구나!”라고 알게 된다. 한 여름 밤을 노래하는 매미는 그날을 위해 땅 속 저 깊은 곳에서 7년을 지낸다.

*세례 요한의 소명과 사명은 자기 결심과 결정과 같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것을 알았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시는 날까지 빈 들에 머문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았다.

*그는 광장으로, 예루살렘으로, 사람들의 환호와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 외치는 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주어진 복과 자리와 영광을 탐하지 않았다. 오히려 빈 들이자 광야로 내려앉아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을 준비하며 기다렸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 신뢰와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요한은 자신의 땀과 노력과 힘으로 자신을 만들어내고 성공시키는 자수성가(自手成家)를 이룬 자가 아니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기까지 빈 들에서 하나님을 기다린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침내 요한은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말씀과 같이 메시야의 길을 준비는 다리를 놓는다. 그리고 예수님에게로 복음서가 넘어간다. 이것이 마태복음 3장의 위치다.

 

예수님을 높이는 삶, 이것이 소명이고 사명이다.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는 삶,

복음에 초점을 맞추는 삶, 이것이 소명이고 사명이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런 요한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광야에서...

나의 빈 들에서...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소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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