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日 부활행전.復活行傳(눅 24.36-53)

20210406(묵상)

 

 

 

40부활행전(復活行傳)

Luke. 24.36-53

 

    본문 관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36)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느니라(37)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38)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41)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5)

    그리스도가 고난을 살아날 것과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56-47)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48)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49)

 

    예수께서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부활 Festival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5-8)

 

부활하신 예수님과 사도들과의 첫 만남이다(36).

여인들이 전해준 소식을 듣고도, 또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이 만난 부활의 주님에 대한 간증을 듣고도 제자들은 이를 믿지 않고 있었다(11,41). 물론 이 사실을 예고한 수난예고와 부활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6-11,35, 9.22). 더 놀라운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친히 제자들 앞에 현존(현현)하셨음에도, -가현(假現)이 아니다(39-43).- 그러니까 주님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점이다.

놀람의 연속인데, 무엇보다 이들을 향하신 주님의 모습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36) 그리고 주께서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44)를 다시 상기시키시고, 또한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5), 마침내 사명(지상명령)을 주신다. 이것이 곧 복음서 이후, 그러니까 부활 이후에 펼쳐질 [누가행전]이다.

   

 

부활의 복음(36-49)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1.3b)

 

배은망덕(背恩忘德)하고 못난 제자들이지만 주님은 끝까지 저들을 사랑하신다(36, 13.1). 손에 회초리를 들고 저들의 배신을 책망하셔도 할 말이 없는데 주님은 오직 못박힌 자국난 손 그대로, 그리고 샬롬!’(평강!)으로 오셨다. 하지만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쪽과 이미 부활의 주님을 만난 쪽이 함께 섞여 있다(11,31,33-36a).

도대체 이들은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시기 전까지 뭘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믿는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라며 갑론을박(甲論乙駁)하면서 논쟁 중이었으리라. 하지만 분위기는 부활하심을 믿는 것이 아닌, 좀 어둡고 부정적이며 어색한 자리였을 것 같다. 사실 이미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은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44a, 9.22) 된 것이다. 설령 이것을 잊고 있었다 하더라도 주님의 부활하심 이후에 다시 생각나게 되었고, 여러 통로들을 통해 다시 듣게 되었다(6-11,25-27,33-35).

, 이미 주께서 말씀해 주신 복음과(부활 이전, 9.22, 18.31-34) -여기에는 주의 부활하심까지 포함된다.- 또 다른 여러 통로들을 통해 부활의 복음을 들었다. 문제는 그랬음에도 불구하고(부활 이후, 8-12,33-35),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대면하고 있음에도 이를 믿지 못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 이들은 다름 아닌 주님의 제자들이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늘에 오르사(50-53)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1.4a)

 

40일 동안의 부활절 페스티발(Festival)이 마무리되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 주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1.3b). 그리고 주의 승천 후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순절에 강림하시는데(49, 1.5, 2.1- ), 이때까지 제자들은 늘 성전에 있어”(53) 이제는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1.14b)는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10일 정도를 이처럼 기도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변화된 삶의 자리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비록 주께로부터 지상명령(44-49)은 받았으나 아직은 연약함 투성이에 불과한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축복하시는 것으로 가져가신다(50). 비록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기는 수준이었지만 주님은 저들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신 것이다. 이러한 신뢰와 격려는 제자들의 마음(심령)을 깨어나게 했고, 기쁨이 지배하는 사람들로 변화되게 했다(52).

마침내 [누가행전]의 새 지평이 준비되고, 또 열린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49, 1.4) 주님의 승천 후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이 모든 일의 증인”(47-48)으로 헌신하게 될 성령시대를 준비한다.

   

 

부스러기 묵상

 

주님의 제자훈련은 파송으로 열매를 맺는다.

주님은 제자들을 이처럼 준비하셨고, 이제 오실 성령님은 준비된 저희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돌이켜 보면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이어지는 기간은 주님의 공생애가 제자들에게 안착하는데 있어 최대의 위기였다. 3년 이상이나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영적(靈的) 철부지인 제자들을 지켜보실 수 밖에 없으셨던 주님의 고독, 그럼에도 그분은 실망(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저들을 믿어주시고 사랑해 주셨다.

이미 부활하신 주님이심에도, 지금 자신들 곁에 서서 말씀하시며, 함께 식사하시는 주님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41a)만큼의 수준 밖에 되지 못한 제자들이었다. 정말이지 필름이 끊어질 위기가 어디 한 두 번이었을까.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바라보는 눈이 달랐다. 마치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완전한 자녀보다 뭔가 연약한 자녀를 더 깊은 애정으로 품듯이 주님이 그러셨다.

못난 자식들이 천대 받을까봐 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실패 이후까지를 넉넉한 손길로 품어주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1-32)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하심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오늘 이 순간까지 주님은 우리에게도 그러셨다. 쉼 없는 애정으로 품어 주시고, 실패하고 넘어져 흐느적거리다가 일어나 보면 언제나 그곳은 주님의 무릎 앞이었다. 부끄럽고 죄스러워 눈 들어 당신을 바라보면 언제나 빙그레 웃으시며 내일 쪽으로 시선을 돌려주셨다. 우리의 패배보다 주님의 위로와 격려는 언제나 넘치도록 컸고, 우리의 못남과 옹졸함과 좁쌀스러움은 포말처럼 부서져나가게 해 주셨다.

나의 연약함과 주님의 사랑 사이에서 조금씩 철이 들어갈 때 넌 아직 멀었어?”가 아닌 그래, 난 너를 믿는다!”시며 감당키 어려운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나를 언제나 아들로 상대해 주셨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 되심의 부요함을 넉넉하게 체험하게 하시고,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아버지로서의 삶을 연습하도록 충분히 배려해 주시곤 하셨다.

나는 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부족해서 더 믿어주고 기다려 주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예전에는 그러면 내가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조금씩 내 짜잔함과 못남 때문에 미열을 앓고부터는 주님은 다 아시면서도 모르시는 척하시며, 그런 중에서도 조그마한 것에 감동하시고 잘한다며 격려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60년 가까이 묵은 죄인으로 밖에 살아온 게 없지만 그래도 오늘은 다르게!” 살아봐야겠다고 다시금 무릎을 꿇는다. 내가 이럴 수 있는 것은 쉼 없이 반복된 공약(空約)임을 아시면서도 언제나 새롭게 대우해 주시는 주님 때문이다.

 

누가복음 24장을 산책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이젠 예루살렘에서 무엇이 기다려도 상관없으리라!

때문에 시작될 예루살렘이 내게도 주님처럼 이기를...

사랑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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