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맥(脈)이다!(눅 22.39-46)

20210329a(묵상)

   

 

 

기도가 맥()이다!

Luke. 22.39-46

 

    본문 관찰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21.36b)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32a)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40)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1b)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마지막까지 기도하셨다.

주님에게도 기도가 필요할까. 전능하신 분이신데, 모든 것의 소유주이신데도 기도가 필요했을까. 주님이 우리처럼 , 입학, 취직, 컴퓨터, 외모, 얼굴의 여드름등등의 응답과 해결이 필요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셨을까. 기도가 단순히 하나님의 손에 있는 무엇인가를 내 손으로 옮겨(얻어)내는 것인가.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것을 구하기 위해 기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기도_()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39)

 

왜 감람산에 가셨을까. 물론 주님은 때때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셨다(21.37). 하지만 오늘은 기도하러 가셨다. 이 기도의 시점은 체포되시기 바로 직전이다. 주님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예루살렘의 공기를 직감하셨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십자가를 보고 계셨다. 이때야말로 기도의 때인 것이다. 문제는 기도를 낳았으나, 기도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것이 기도의 위력이다.

여기 습관을 따라”(39)에서 알 수 있듯이 주님은 언제나 기도하셨다. 몸에 기도가 밴 것이다. 주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는 말씀대로 친히 모범을 보이셨다. 정말이지 우리에게도 단순히 육적이며 죄와 관련된 습관들은 버리고(요일2.15-17), 이제는 좀 주님의 습관처럼 복된 것들이 몸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주님은 현재 있는 곳에서 특별히 감람원으로 가셨다. 감람원 그 자체가, 혹은 감람원에서만 기도해야 된다는 것은 아닐지라도 장소는 구별되어야 한다. 기도라는 내용을 담는 여러 가지의 형식 가운데 장소는 매우 중요하다. 흔히들 기도함만을 중요시하는 나머지 기도의 형식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결코 옳지 않다. 내용을 담는 그릇이 형식이다.

제자들도 함께 좇았다. 아마 제자들은 이번에도 감람원에서 쉬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21.37). 내가 무엇을 하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있()느냐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유독 가룟 유다만은 예수님의 무리 가운데 함께 있지 않았다. 주님과 제자들은 기도하기 위해 감람원에 올라가는 동안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갔다(47). 똑같이 거룩한 장소에 있었으나 그 결과는 너무도 극과 극을 치닫고 있다.

한편 주님은 제자들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셨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40) 주님은 임박한 죽음을 앞에 두고 먼저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도 이를 명하셨다. 이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다니엘이 시험 앞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 시험 앞에서도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데 있다(6.10).

사실, 기도하면 문제 그 자체가 없어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기도는 문제 해결 용도만이 아니다. 기도는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게 하며, 당당하게 그 앞에 서게 한다. 기도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도록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순종이다. 기도만큼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만큼 하나님을 믿는다. 따라서 담대할 수 있다.

   

 

예수님의 기도_()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41)

 

주님은 제자들에게만 기도를 명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기도하심으로서 모범을 보이셨다. 주님은 기도를 시작하시기 전에 필요한 몇 가지를 준비하셨다(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에서 알 수 있듯이 주님은 기도가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여건을 택하셨다. 종종 기도가 전혀 방해받지 않는 곳으로 떠나하나님과 은밀한 기도(교제)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방해받지 않는 곳으로 주님이 먼저 떠나셨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신다(41):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42a) 기도는 하나님께 나를 맞추어 가는 것으로써 주님의 주되심(Lordship)을 고백하는 것이다.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만을 구해야 한다(6.10,33). 때문에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42b)는 자연스럽다. 이렇듯 기도는 내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내 원대로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이것이 기도가 갖는 영적인 법칙이다.

 

    ▪하나님(43):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힘을 더하더라.”

    ▪예수님(44): “더욱 간절히 기도땀이 핏방울 같이

 

마침내 하나님이 기도를 받으신다(43). 그런데 한 가지 더욱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주고받는 더 깊은 은총으로의 나아감이 있다(44). 이것은 기도 중에 벌어진 일들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실 뿐만 아니라 그 기도를 붙잡아 주며, 새 힘을 주셔서 기도의 깊이와 맛을 알게 하신다.

   

 

예수님의 기도_()

 

예수님은 기도하셨으나, 제자들은 잠들었다(45). 이를 보시고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46)고 명하셨다. 역시 모범 권면이다. 기도의 능력은 내가 먼저 무릎을 꿇는 것이다. 한편 제자들도 주님의 고난(수난)과 임박한 죽음을 슬퍼했다. 베드로의 결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33)라는 의지와 호언장담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기도로 이어가는 능력은 없었다.

지금은 잘 때가 아니다: “어찌하여 자느냐?”(46) 천재지변(태풍)이 불어올 때 가장 먼저 개미와 쥐, 새들이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고 한다.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21.30) 알듯이 주님의 제자(영적인 사람) 역시 영적 기류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제자들은 지금 이 슬픔과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해야만 한다. 나는 계속해서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지 .

기도는 시험을 이기게 한다.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와 같다. 기도는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싸워 이기는 승리의 비결이다. 기도는 천국은행에 저금하는 것과 같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그 방법과 시기와 그것을 보는 각자의 믿음의 눈이 각각 다를 뿐이다. 이미 응답되었는데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나의 믿음 없음을 회개해야 한다. 기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명령이다.

   

 

부스러기 묵상

 

기도 보다 더 급한 것은 없다.

만약 기도 보다 더 우선한 그 무엇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만큼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기도를 뒤로하고 먼저 행동하고 있다면 것만큼 기도가 갖는 은총과 멀리 있는 것이다. 그만큼 내가 기도의 영향권 밖에 있는 것 아닌가. 사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 살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큰 교만이자, 죄다. ‘기도하라!’는 주님의 명령 앞에 선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기도하지 못하는 불신앙이 문제다. 이 통찰은 기도하지 못하면 결코 깨닫지 못한다. 기도에 길이 있기 때문이다.

기도란 무엇인가. 먼저, 기도는 어떤 유형(有形), 또는 가시(可視)의 그 무엇(필요)간구하여 얻어내는 것이다.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need)를 구하는 것이다(왕하6.14-17, 5.7, 요일5.14-15). 그러나 기도는 구하는 것, 그 이상이다. 기도는 단순히 주고받기(give & take)만이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요구(필요)를 얻어내는 수단’(도구)만으로서의 기도로 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도는 그것을 포함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구하는 것과 비교되는 면에 있어서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아가는 친밀함의 긴 과정이다. , 기도란 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이요, 대화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뿐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한량없는 은총을 맛보는 축복의 통로이다. 계속되는 봉우리가 연결되어 하나의 산을 이루는 것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도가 이것을 이루고 맛보게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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