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의 법칙(눅 21.25-38)

20210325(묵상)

 

 

 

재림의 법칙

Luke. 21.25-38

 

    본문 관찰

 

    이미 종말(5-24)

       예루살렘성전 파괴 예언(5-9)

       종말론적 핍박 예고(10-19)

       예루살렘 멸망 예언(20-24)

    아직 재림(25-38)

       재림의 징조들(25-33)

       종말론적인 삶(34-38)

 

 

소계시록(2)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37a)

 

예수님이 예루살렘 사역 안에 종말과 재림 예고가 들어있다.

예루살렘 입성 후 잡히시기 전까지, 예루살렘 행전 중 약 3일간의 사역을 소개하는 말씀인데 그분은 당신에게 임박한 고난(종말)과 죽으심(재림) 앞에서 당신이 하신 말씀처럼 사셨다. 어쩌면 당신의 육체가 십자가 앞에 다 무너지기까지 먼저있어야 할 고난의 잔을 마셨다. 이것은 종말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의 예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끝이 아니라 부활의 아침이 점점 가까이 왔듯이, 이런 종말론적 징조들은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27) 줄을 알리는 사인이라 하신다(31).

 

 

재림의 징조들(25-33)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31)

 

재림은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역시 분명한 예고(sign)가 선행된다(25-26,28a):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28a) 하늘과 땅 온 우주가 재림의 징조들을 맞아 혼란한 중에 곤고하”(25)게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전무후무한 역사의 혼돈과 흔들림 때문에 정신을 잃게 되리라 말씀하신다(26).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28a)는 때와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27)는 때 역시 하나의 파노라마로 예고된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될 일들 가운데 주의 재림 이전에 이루어질 것들을 보면서 재림이 문 밖에 까지 가까이 와 있음을 알라 하신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28b)

하나의 비유가 절묘하게, 즉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종말과 재림 사이의 긴장을 알리는 하나의 사인으로 제시된다(29-33).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안다(30). 이처럼 재림 역시 앞서 예고하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아는 것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으로 각각 대칭되면서, 이것이 단순히 하나의 예고편으로서만이 아닌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32)는 주님 자신의 맹세와 함께 그것이 약속으로 주어지고 있다.

재림은 징조가 시작되고 약속이 하나의 예고로 주어지는 것만으로써가 아닌 이것이 그대로 성취되는 그날이 점점 가까이 와 있다(27,30,31). 무화과나무의 싹을 통해서 여름을 자연히아는 것은 하나의 순리이자 상식이다. 개나리와 목련의 꽃망울을 보면서 이제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아는 것처럼 주의 재림의 각양 징조들을 통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정말 아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묵상이다.

   

 

종말론적 삶(34-39)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36)

 

종말의 때를 스스로 조심하면서 지내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고”(34a), 그래서 결과적으로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34b) 임할 것이라 경고하신다. 종말을 맞이하는 두 그림 가운데 부정적인 것으로 열매 맺게 될 사례(case)가 소개된다. 종말과 재림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둔하여 진 경우가 이쪽 부류 사람들이다.

무엇이 이렇듯 저들의 마음을 둔하게 했을까. 그것은 종말을 사는 윤리(지혜)와 그만큼 초점이 멀어졌기 때문이고, 현상적으로는 방탕과 술과 삶의 염려들이 종말스럽게 사는 것을 가로막았을 것 같다. 결국 세상과 다르게 사는 법을, 주님과 바르게 사는 법을 놓쳐버린 것 때문이다.

이처럼 종말과 재림을 맞는 자들 모두에게 앞서 소개해 주신 그림들이 반드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결국은 생활의 방종은 물론 심령까지 둔하여진 상태로 바로 그 때에’(27) 덫과 같이 홀연히 임할 주의 재림 앞에 서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34). 마지막 때의 보통의 삶의 자리가 이런 쪽으로 급속하게 이동(shift)해 갈 것이라는 얘기다.

, 어찌할까. 그런데 이런 재난의 파도를 스스로 조심하라!”(34a)하시면서 동시에 주님은 매우 중요한 영성을 하나 더 분명하게 요구하신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36)

그렇다면 종말론적 윤리는 단순히 부정적인 요인으로부터 떠나는 것만이 아닌 보다 더 적극적인 영성(靈性)이라는 높은 질의 삶을 요구한다. 겉포장은 윤리적이고 도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34) 그 이면에서 인간의 심성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세력)로부터의 분리된 삶을 살아가려면 속사람의 문제, 즉 영적(靈的)인 부분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주님은 이것이 종말론적 삶을 주 안에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하신다. 이는 다름 아닌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36b)는 일상을 살아가는 재림의 법칙이다. 주님과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세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오는 잡다한 파도들에 휩쓸리지 않는 길이며, 이는 기도라는 채널을 통해 유지되어야 함을 교훈하신다. 주님이 공생애라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언제나 습관을 쫓아 기도하는 삶으로 이기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31b)

    “스스로 조심하라.”(34a)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36b)

 

종말과 재림을 맞이하며 사는 내 삶의 모델은 주님이시다.

그분은 이제 곧 닥칠 종말(고난)을 앞두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행전(19.28- )의 여정을 변함없이 계속해 가신다(37-38). 놀랍다. 이런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도 일상생활의 영성에 탁월하신 주님을 생각한다. 주님은 낮이면 가르치시고 밤이면 쉬시면서 이미 받아 놓은 마지막 시간표를 충실하게 채워 가신다(37, 22.22a). 또한 모든 백성들도 그 말씀을 들으려고 아른 아침에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38). 이것이 종말론적 삶이 아닐까.

어머니는 생전에 이 [주님고대가]를 종종 부르시곤 하셨다. 지금도 귓가에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약속한 주님, 내 주님 언제나 오시렵니까.” 나는 주님의 다시오심’(parousia)을 진정으로 기다리며 고대하고 있는지 . 이것이 나의 삶에서 얼마나 드러나고 있으며, 영향력을 미치는지, 임박한 재림으로 받아들이며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여운으로 남는다.

말씀하시는 주님, 듣는 청중, 말씀이 있으니 교회다(37-38). 그런데 종말(고난과 죽으심)을 앞두고 있음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매우 활기 있고 리듬감 넘치게 맞이하신다. 어쩌면 이 그림이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아야 하고, 그래서 자신의 삶에서 동일하게 그려가야 할 재림 스케치(sketch)가 아닐까.

종말론적 윤리라고 하는 삶의 무대가 풍성하게 채워지려면 항상 기도라는 재림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주님의 가르침이 내 영혼의 창()을 통해 조용히 안착하는 중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7) 하신 말씀이 내게도 그대로 성취되기 위해 오늘도 기도라고 하는 영적 무기를 들고 재림의 법칙 앞에 선다. 종말은 사는 것이고, 그 삶의 끝은 주의 재림이다. 그러하면 종말을 살아간다는 것은 재림 앞으로 날마다 나아가는 것이다. 그 끝에서 우리는 주님을 뵈올 것이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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