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의 제자들이 6장에서 중간시험을 치른다(요 6.60-71).

20220122(묵상)

 

 

 

1장의 제자들이 6장에서 중간시험을 치른다.

Jn. 6.60-71

 

    본문 관찰

 

    넓은 의미의 제자들(60-66)

    12 제자들(67-71)

 

 

 

너희도 가려느냐?

 

6장에는 여러 부류의 청중들이 등장한다.

예수님이 택하여 부르신 12 제자들(1.35-51, 2:1-2,11,22, 6.67-71), 빈 들에 모인 5천명 가운데 가버나움까지 찾아온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2,5,22-25,60-66),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는 표적을 기회로 삼아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기로 계획하고서 예수님의 오병이어 표적 이후에 하신 말씀을 듣지만 예수님을 믿을 수 없음을 수군거림과 다툼으로 나타내는 유대 종교지도자들(5.16,18, 6.41- ,52- ), 가버나움 회당에 모인 가버나움 사람들(59), 이처럼 크게 몇 부류로 나누인다. 이들 가운데 오늘 본문은 앞의 두 부류의 제자들에 대해서 오병이어의 표적이 이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주목한다.

   

 

넓은 의미의 제자들(60-66, A)

 

이들은 대부분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서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26b)에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이다(A). 이들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41,51)에 대해서는 관심 없었고 또 이를 믿지도 않았다(36,64). 더 큰 그림에서 보자면 장차 보리라’(1.42,50-51)의 빛 안에 있지 못했으며, 결국 영생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다. 누구보다 열심은 있었지만 일찍 식어버렸고, 썰물처럼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b)의 모습으로 일단 무대에서 사라진다. 자신들의 필요와 목적과 이익에 따라 예수님도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참 즐긴다. 냄비 역시 그렇다. 빨리 뜨거워지는 것만큼 빨리 식는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넓은 의미의 제자들(60-66, A)이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하자면 이들은 6장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초신자들이다. 예수님을 찾는 것도 빨랐고, 예수님을 떠나는 것도 빨랐다. 자기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뿌리가 없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60a)는 말은 예수님과 회당 설교의 그말씀’(26-59)을 믿을 수 없다는, 관심 없다는, 그걸 위해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의미다. 뭐라도 할 기세로 덤벼들었던 이들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에 걸려 넘어졌고(61), 이렇게 해서 많이 물러가고’(66)처럼 일찍 피었으나 그것만큼 일찍 진, ‘거품 제자들이었다.

   

 

12 제자들(67-71, B)

 

이에 반해 12 제자들(B)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그로부터 부르심을 받는다(1.35- ). 그리고 6장에까지 오면서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러니까 성육신 하신 하나님으로서 장차 보리라’(1.42,50-51)의 복음을 현실로 바꾸시는 그분의 언행(言行)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며 지내온 제자들이다. 이들은 6장에서 갑작스럽게 입문하는 초신자들이 아니라 1장부터 제자훈련을 통하여 믿음과 영생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기신자들이다(68-69). 말하자면 교회 안에 오래 믿은, 신앙의 뿌리가 있는, 계속해서 양육을 받아 성장하고 있는 성도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제자라고 해서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6장에서도 빌립과 안드레는 함량 미달한 신앙고백을 했었다(7-8). 이들이 1장에서 고백한 신앙고백과 비교하자면 오히려 부끄럽다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다(40-41,45-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시몬 베드로의 고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곁에 서 있다(68-69). 비록 아직 사도행전의 제자들로 성장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주님이 붙들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70a) 이들이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들을 선택하셨다.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부스러기 묵상

 

오늘 본문은 그림이라면 두 그림으로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끝까지 주님 곁에 있고, 진리를 따르며, 영생을 얻기 위해 믿음을 지키며, 어렵고 힘들 때 교회를 지키며,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면서 뿌리 없이 설교나 동냥하며 살아가는 A형 신자로 살지 않는 사람, 그가 바로 B처럼 살아가는 오래 믿은 성도들이다. 모두들 주님 곁을 떠나갈 때에도 굳굳하게 진리 편에 서서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 바로 그 B형으로 살아온 성도들 때문에 한국교회의 오늘이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황송하게도 우리를 B로 받아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기대와 목표에 축복스럽게 다다르기까지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8b), 이처럼 우리의 소망이 오직 주님과 교회와 말씀 밖에 없음을 주님께 드린다.

한편, 참 피하고 싶은 사람,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가 나온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주 나올 테지만 못내 무겁고 아픈 부분은 이 사람이 어떻든 B 안에 있다는 점이다. B 안에도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아니 있을 수 있다는 깊은 영적 부담은 견디기 어려운 짐이 아닐 수 없다. B 그룹 안에도 끝까지 B를 어렵고 혼돈스럽게 만드는 어두움의 도구가 있다. B라고 해서 가룟 유다 같은 사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누구도 내가 가룟 유다의 후예다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지 않기에 땀을 쥐는 긴장이 B의 노정에 꿈틀거린다. B에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니다. B 역시 끊임없는 영적 전투장이다. 지상교회는 그것만큼 불완전하다. 이러한 적절한 영적 긴장이 있다는 점을 다시금 기억하면서 믿음의 은혜를 좀 더 촘촘하게 붙들어 본다.

제자들이 이미 앞서 풀었던 중간시험지를 나 역시 동일하게 받아 놓고 너희도 가려느냐?”(67b)는 주님의 질문에 뭐라 답할까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베드로의 모범답안을 그대로 옮겨 적은 일이야 쉬운 일이다. 6장에서 찾다(22-40) 수군거리다(41-51) 다투다(52-59) 물러가다(60-71)라는 답안을 제출하고서 무대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어떤 정거장을 지나 여기까지 왔고, 또 어디로, 누구와 함께, 무엇을 위해 중간평가를 받고 있는가를 생각한다.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답안을 써 내려가고 있다. 답안처럼 그렇게 살 수 있기를 간구하며 말이다.

주님이 우리의 신앙보고서를 찾으실 때, 우리 또한 베드로처럼 말하고 행한 인생보고서를 가지고 주님 앞에 서기를 기도한다.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살았던 삶이 그대로 그려진 그림, 그 그림이 천국 벽면에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내 인생이라는 그림이 A형으로 그려지지 않고 복된 B로 그려지도록, 이 그림 안에 옥에 티처럼 가룟 유다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도록, 오직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어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의 삶으로 믿음 안에서 그려진 그림이기를 소망한다.

약간 스케치되어 있는 A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고, 더 이상 이것이 주님 앞에 가지고 가야 할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못하도록 살아보자. 주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그려져가는 볼품없는 값싼 그림이 되어 천덕꾸러기 꼴 나지 않도록 말이다. 아니, ‘믿지 아니하는 자’(64)로 지옥에 걸리는 사망의 그림이 되지 않도록 앞으로 남은 최종시험(심판) 때까지 장차 보리라’(1.50-51)의 여백을 68-69절 신앙고백으로 그려가는 축복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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