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에스겔 34장을 성취하신다(요 10.19-30).

20220204a(묵상)

 

 

 

예수님은 에스겔 34장을 성취하신다.

Jn. 10.19-30

 

    본문 관찰

 

    유대인(19-24): 분 쟁

    예수님(25-30): 말 씀

 

 

()은 누구인가?

 

요한복음 10장을 읽으면 에스겔 34장이 생각났다.

참 감사할 일이다. 10장을 읽기 시작할 때 기억된 것이 은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이시다. 그분은 과거에만이 아니라 지금도 목자로서 자기 양인 친백성들을 모으시기를 원하신다. 이를 위해 목숨을 버리실 때가 점점 임박하는 그날을 바라보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 무지의 깊은 잠을 자면서 잠꼬대를 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몰골이 한심하게 그려진다(19-24). 그렇지만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

   

 

에스겔 34

 

    이스라엘에는 목자가 없다(1-6).

    하나님은 거짓 목자들을 심판하신다(7-10).

    하나님이 친히 참 목자가 되신다(11-16).

    하나님은 양 떼를 공의로 심판하신다(17-22).

    내 종 다윗이 내 양의 목자가 될 것이다(23-24).

 

하나님은 예수님이 성육신하시기 약 600여 년 전에 이미 [목자와 양의 비유]를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놀라운 것은 에스겔 때나 예수님 시대에나 어쩌면 그렇게도 동일한 형편인지 모르겠다. 이렇듯 죄는 모양과 형태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동일하다(34.1-16). 거짓 목자들에게는 소망이 없다. 이들은 목자가 아니라 절도요 강도다(10.1,8). 구약과 신약, 이 두 시대 모두다 목자는 없고 삯꾼만 있다(34.1-10, 10.1,8,10,12-13).

예수님은 이런 영적 공항에도 불구하고 영적 어두움에 빠져(1.5) 목자를 보지 못하는 죄 때문에(9.39-41) 오히려 주님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을 목숨 걸고 진행하는(5.16,18- ) 거짓 목자인 종교지도자들에게 더 이상 자기 양을 맡기실 수 없으셨다. 결국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아버지에게서 친히 들으셨던(8.26,28, 10.8,15,25) 것을 기억하셨을 뿐만 아니라 23-24절의 성취자로서의 참 목자이심을 선포하신다(37.24, 40.11).

   

 

유대인(19-24): 분 쟁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20).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21).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하나이까(24a).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24b).

 

마침내 에스겔의 설교(34)는 지금, 바로 저들이 보는 앞에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성취될 것이다. 시간은 조금 더 있다가”(7.33) 밖에 남아있지 않다. 예수님은 지금 삯꾼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내가 내 양을 찾아서 그들을 건져낼지라.”(34.10-12)를 성취하시기 시작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9-24절의 죄행(罪行)에 빠져 장차 보리라’(1.42,50-51) 밖에 있는 불쌍한 삯꾼들이 아닌가. 이처럼 믿음이 없는 곳에는 언제나 분쟁’(19)의문’(24a)무식한 변론’(24b)만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25-30): 말 씀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25a).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27a).

    나는 그들을 알며(27b).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27c).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28a).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28b).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29a).

 

다시 에스겔의 그림과 예수님의 그림을 동시에 관찰한다.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34.1-10, 10.1,8,10.12-13)에게 소망은 전혀 없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만이 참 목자이시며 선한 목자가 되시사 양들을 회복하신다(34.11-16, 10.25-28). 이처럼 주님은 예언의 성취를 말씀하고 계시지만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이를 듣지도, 알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그 결과는 멸망이요, 목자의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 양을 오직 참 목자이시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만 주셨다.

   

 

부스러기 묵상

 

그래서 예수님은 줄기차게 하나님을 말씀하신다(29-30).

하나님과 동일하신 목자로서 자기 양과의 관계를 회복하실 것을 말이다. 이를 반복해서 다시’(7a) 말씀하시지만 삯꾼들 역시 다시’(19,31,39) 분쟁과 돌을 들어 치려함과 잡고자 할뿐이다. 이게 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온다(25-26). 이 치열한 영적 전투는 516,18절부터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양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삯꾼들과, 이들에 의해서 철저히 유리(遊離)되었고 흩어졌으되 찾는 자가 없었”(34.6)던 바로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아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까지 오셔야만 했던 예수님,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그림이 요한복음 10장에도 걸려있다.

하지만 나는 예수님의 양()이다. 그래서 좋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신나는 일 아닌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구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구원과 영생을 얻고(9a,28),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b)의 축복을 누리게 되니 말이다. 삯꾼들(1,8,12-13,19-24)이 아무리 요한복음의 무대를 뒷골목처럼 만들려고 516절과 18절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목자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11,15,17,18) 양들을 위해 일하신다. 목자가 양을 위해 말이다. 바로 그분이 우리가 따르며 섬기는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양이 목자를 위해 죽어야 할 때다. 나를 위해 살면 죽지만, 목자를 위해 죽으면 산다. 예루살렘은 수전절, 그러니까 성전 봉헌절로 분주하다(22). 주님은 이때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니시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셨는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위해 수전절을 지키는가? 제도와 형식과 관습은 있으나 이미 그 안에 생명은 없다.

이렇듯 달라진 것은 없다. 아직 예루살렘은 에스겔 341-10절의 모습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깊은 영적 어두움에 휩싸여 있다. 지금 세상이 그렇고, 사람들이 그렇다. 그때의 그림을 통해 이때를 보면서 양인 우리가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이며,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를 조용히 생각해 본다. 벌써 목자의 음성과 발소리와 숨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지금도 일하시는 나의 목자이신 주님을 바라본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한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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