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은 믿음이라는 꽃으로 피어난다(요 9.35-41).

20220102(묵상)

 

 

 

표적은 믿음이라는 꽃으로 피어난다.

Jn. 9.35-41

 

    본문 관찰

 

    그 사람과 예수님의 대화(35-39)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대화(40-41)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한 사람을 짧은 시간에 통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특히 맹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믿음 그 밖에서 영육의 어두움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눈을 뜨고, 신앙고백을 통해 분명한 영적 성장을 시인하고, 급기야 오늘은 믿음을 고백하는 자리까지 나아오는 것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한 사람이 진짜 얼마 되지 않은 기간임에도 이처럼 영적인 진보를 나타내 보일 수 있다는데 일단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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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맹인의 첫 번째 만남에서부터 그가 눈을 뜨고, 또 무엇보다 영적(靈的)으로 눈을 떠가는 과정과, 다시 주님을 만나게 되기 이전까지의(35) 그의 언행(言行)을 본문의 시각에서 다시 묵상해 보자. 일단 그가 30-33절의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기까지, 그 결과 출교를 당하기까지(34) 그는 표적 이후에 이미 믿음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자로 9장 앞에, 또한 유대 종교지도자들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날 때부터 맹인이었고 그 모습대로 이미 장성해 있다(1,21). 그런 그가 주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먼저 구했거나, 역시 그가 먼저 주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그를 보셨다(1). 제자들도 보았지만 그들은 율법의 검색을 위한 하나의 예(case)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2). 하지만 주님은 달랐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3), ‘세상의 빛이신 자신을 맹인에서도 주시기 시작하신다(4-6). 그리고 명하신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7a) 그는 이 영광의 빛이신 주님으로부터 이러한 은총을 입을 만 한 아무런 조건이 없는 사람이다. 한 게 없다. 오직 불가항력적으로 값없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받았을 뿐이다. 이렇듯 표적은 이렇듯 인간의 어떠한 행위나 선행(先行)된 어떤 경우의 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한편 표적 이후에 그는 아직 예수님을 다시 만나지 못한 상태다(8-12). 그 상태에서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14)는 점 때문에 그 사람은 바리새인들 앞에 서게 된다(13). 그리고 저들 앞에서 놀라운 신앙고백을 표한다(13-34). 그는 분명 표적 이전과 이후가 매우 선명하다. 표적 이전에는 아무 말도, 무엇을 보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표적 이후에는 이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한다. 영육(靈肉) 모두가 치유된 것이다.

그러나 표적 이후부터 예수님을 다시 만나기 이전까지에(7-34) 나타난 그의 언행을 보면 그는 아직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아직은 좀 미약해 보인다. 그가 듣고 만났던 예수님의 복음은 3-7절이 전부다. 표적은 이 일을 이루신 분이 예수라 하는 그 사람’(11,15), ‘선지자’(17), ‘죄인이 아닌 경건한 자(31),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33)이라는 신앙고백을 낳는다. 여기까지가 표적이 한 일이다. 눈을 뜬 이후에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있다. 표적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앞에까지 그를 인도한다. 이제 본문은 이렇게 열리기 시작한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35-41)

 

    “네가 인자를 믿는냐.”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주여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과 그의 두 번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이 만남을 통해 표적 신앙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12.2a)이라는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이 이루어진 현실 안으로 이동(shift)한다. 이 일 역시 예수님께서 눈을 뜬 그를 만나심으로 시작된다(35a). 그는 예수님을 ’(Lord, 36,38)로 고백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을 입으로 시인한다. 표적이 예수님을 통해 온전케 되는 순간이다. 그는 표적만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이 일을 이루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고백함으로서, 그리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함에 따라 자신을 그분의 종으로 겸손하게 낮춤으로써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의 기초를 든든하게 다진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38)

   

 

부스러기 묵상

 

표적을 통해 주님께 입문하지만 표적 이후가 더 아름답다.

그러나 9장을 잘 보면, 표적(7b)을 전후로 해서 예수님이 그를 둘러싸고 있고,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하심이 표적 이전과(3-7a) 이후를(35-41) 역시 감싸고 있다는 점이다. 표적은 말씀과 분리되거나 독립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표적을 이루시며, 역시 말씀으로 표적의 깊이를 보게 하신다. 말씀이 겨자씨만 한 표적을 믿음의 큰 나무로 자라나게 하신다. 맹인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표적이라는 씨앗이 심겨진 밭으로 부르심을 받더니 급기야 자라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된다. 그는 말씀의 기초 위에 서서 믿음을 고백하는 으로 선다.

한편 예수님은 이 표적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에게 뭔가 깊은 영적 도전과 각성을 주시고자 하심을 밝히신다(39-41). 저들을 가리켜 보는 자라 하시며 이들을 소경 되게 하려는 심판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신다(39). 보지 못하는 자들의 대표적인 사람인 맹인은 그러나 지금 주님을 보고 있다. 그런데 구약을 알고, 율법을 알고, 모세를 알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안다는 자들이 정작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 이것이 저들의 (41). 그렇다면 죄는 결국 예수님을 보고, 알고, 믿는 이 거룩한 부르심에 따른 거듭남을 가로막는 거대한 힘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불쌍한 영혼들, 이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아직도 어두운 죄 가운데 있기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시인하지 못하고, 영혼이 있어도 믿음을 갖지 못한다. 이것이 죄의 실체다. 죄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어두움에 살도록 만드는, 그리하여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가담하게 만듦으로써 결국은 썩어질 것을 거두는 자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한 영혼이 깨어나면 참으로 아름답고 맑은 가락이 울려난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영적으로 깨어남을 지켜보면서 우리 역시 참 기쁘고 즐거운 묵상을 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이처럼 좋은 일이 있다. 그분은 인생의 모든 숙제와 무거운 짐을 다 담당하시는 놀라운 분이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을 다 부르신다(11.28-30). 정말 깃털처럼 가볍게 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당신 안에서 편히 쉬게 하시기 위해서 부르신다. 소경은 표적 이후에, 아니 말씀으로 만나주신 주님과의 만남 이후에 이와 같은 풍성한 삶을 사는 자로 영육(靈肉)의 눈을 뜬다. 그리고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을 현실로 바꾸신 주님의 은총 안에서 믿음의 파도타기를 힘차게 시작한다. 참 멋스럽고 맛깔나는 믿음의 세계가 아닌가. 이 신세계(新世界)를 함께 더불어 보고, 알고, 깨닫고, 믿고, 누리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표적으로만 붙들고 있지 말고 믿음으로 꽃피워 보자.

언제까지나 보았네, 얻었네, 받았네, 들었네, 체험했네만 붙들고서 마치 한 달란트처럼 꼬옥 땅에 묻어둔 사람으로 살다가는 것은, 언제 표적이 변하여 심판이 될 지 모르는 법 아닌가. 체험이 중요하지만 체험만으로는 안 된다. 표적이 자라고, 꽃이 피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 거기까지, 그리하여 표적이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을 현실로 끌어당기는 거기까지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믿음을 따라 살아가게겠다. 진실로 진실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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