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거함으로 열매 맺는다(요 15.1-8).

20220404a(묵상)

  

 

 

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거함으로 열매 맺는다.

Jn. 15.1-8

 

    본문 관찰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1)

    너희는 가지라(5a)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2a)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4b)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5b)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6a)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이루리라(7)

       열매를 많이 맺으면(2b,8)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참 포도나무

 

성경은 종종 이스라엘을 포도나무 열매로 비유하곤 한다(2.21, 10.1, 80.8-15).

이에 따라 참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열매는 들포도를 맺는 경우에 선지자들은 그들을 무섭도록 질타했다(5.1-7):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1-4)

우리 주님은 포도나무요, 아버지 하나님은 농부시요, 제자(성도)들은 그의 가지다(1, 5a). 그런데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2a)가 문제다. 주님에게 붙어 있는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과실을 맺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이 된다. 중요한 것은 열매를 맺는 것이 철저하게 가지의 몫으로 요구되고 있음이다. 그러나 동시에 문제가 되는 것은 가지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는 점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4a,5a,7a)

 

참포도나무(주님)와 가지(성도)의 관계를 주목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와의 완전하며, ‘신비한 연합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에서, 여기 거하다’(meno)는 말은 예수님과의 계속적인 교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계속해서 교제를 유지하라는 말과 같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문제는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하고 세상의 다른 것들을 따라 다녔거나, 그것들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 예수 안에 거하는 삶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관계가 깨져버린 결과일 뿐이다. 한편 우리 주님은 주님과 계속해서, 변함없이 교제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다.

 

(1) 열매를 맺는다.

 

가지인 내가 포도나무인 예수님 안에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과실을 맺을 수 없다(4). 다른 말로 하면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뿌리로부터 양분을 공급받아야만 열매를 맺는다. 영양분의 불균형을 초래하면 질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맛도 없다. 그러므로 내가 관심해야 할 일은 영적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맺게 하신다(2b). 감사한 것은 더 많이 결실하도록 이끄신다는 점이다.

한편 과실을 많이 맺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열매를 맺는 목적(목표)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맺는 과실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된다는 점이 새롭다. 따라서 열매를 통해 나의 영광을 이루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영광은 하나님께, 고난은 내가!’ 참포도나무에 거하는 가지라면 열매가 내 것인 양, 열매를 내가 필요한 용도로, 열매를 나를 세우는 일에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이 영적 원리를 잃어버리면 나는 진짜 가지가 아니라는 얘기고, 그러면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8b)는 말씀과 전혀 상관이 없는 버리운 가지(제자)라는 뜻이 된다.

 

(2)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리라(7).

 

기도 응답에 대한 말씀이다. 중요한 것은 본문 속에서 이 말씀이 함께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기도는 예수님과의 관계속에서 시작되고 이루어진다. 주님은 단지 구하다는 쪽에 중심을 두지 말고, 먼저 거하다는 쪽에 더 강세(accent)를 두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7a) 역시 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것도(13), 근심이 아니라 평안을 누리며 사는 것도(14) 가지 스스로 자가발전(自家發電)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예수님의 가지일 때 이루어지는 열매들이다.

 

 

예수 안에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2)

 

그런데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예수 안에 있음에도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1) 아버지께서 제거해 버리신다(2a).

 

심판을 말씀하는 내용이다(3:10-12). 예수님과 분리되어 있는 가지(불신자)들은 이처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병든 가지는 자신은 물론 다른 가지까지 열매를 맺는 것을 방해하게 된다. ‘의 전염성이다. 이렇듯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과실을 맺을 수 없다(4). 나에게는 왜 열매가 없는가? 가지가 아무리 굵고 튼튼하고 능력 있어 보여도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없다. 가지는 열매로 평가받지 가지가 얼마나 튼튼하고 아름다우냐로 평가받지 않는다.

이렇듯 가지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5b). 열매는 예수님과 나의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비록 부족할지라도 주의 힘은 강하기에, 주님(포도나무) 안에 거하면, 주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된다. 많은 경우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주님’(포도나무) 따로, ‘’(가지) 따로, 따로따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과 상관이 없이 자기 열매를 추구하고 있는 가지의 생명은 찰나적이다.

 

(2) 버림받는다(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주님과의 분리는 곧 죽음이다.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자. 예수 안에 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는 세상, , 명예, 물질과 같은 세속적인 것들에 빠져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그것으로부터 어찌 예수님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으랴: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7.20)

열매를 맺지 못하면, 마치 1달란트 맡은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25.26a)이라고 정죄받게 될 것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종처럼 우리는 이처럼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25.28-30)

 

 

부스러기 묵상

 

나는 열매를 맺고 있는 가지인가?

하나님은 포도원의 농부가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포도나무를 심으셨다. 이 포도나무에 제자(성도, )라는 새순이 돋고, 자라서, 열매를 맺고 있다. 비록 아직은 푸른 포도지만 결실의 때가 되면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될 것을 믿는다. 그 이유는 나는 주님 안에 있는 가지이기 때문이다. 가지인 나 스스로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진리를 잊지 않아야겠다.

사실 열매는 하나의 결과다. 열매는 어느 날 갑자기 맺혀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긴 과정의 산물이다. , 주님과의 끊임없이 계속되는 교제를 통해서 열매는 맺힌다. 나는 주님 안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내 힘으로, 내 스스로 열매를 맺어보려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은 나무에 붙은 가지로 나를 자라게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포도원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포도나무를 심으사, 바로 그 나무의 가지로 나를 쓰시기 위해 지금 자라게 하고 계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나에게 열매를 찾으실 것이다. 지금은 잎이 나고 꽃이 핀 가지이지만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이 오면 나는 열매를 주께 드려야만 한다. 잎만 무성한 가지로는 좋은 판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21.18-22).

나는 예수님의 가지다. 주께서 나를 당신의 가지로 남겨 놓으시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고, 기다림과 기대로 인내해 주시고, 더 많이 맺게 하시고, 이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그런 가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지가 나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가지 스스로가 이 일을 이루는 것 또한 아니다. 이 점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는 겸손한 가지로 살아가고 싶다. 봄이다. 내 영혼의 뜨락에도 새순과 싹이 피어나는 봄이 오고 있다. 주의 포도나무에서 자라고 있는 나의 가지에도 이처럼 희망이 있다. 이 축복이 아버지의 포도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나무에서, 그 안에 있는 가지에서 자라고 있다. 내가 그 가지라는 게 황홀하다. 동시에 나는 가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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