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심판 안내장, 안식 초대장(마 11.20-30)

20220403(양무리교회)

  

 

 

심판 안내장, 안식 초대장

Matt. 11.20-30

  

    본문 관찰

 

    화 있을진저(20-24)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메시야의 초대(25-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책망, 그러나 초대

 

인간의 희망 없음이 예고되고 있다.

이는 주님의 심판 예고 사이렌(Siren)으로 시작된 절망 때문이다(20-24). 하지만 바로 그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일하신다. 비록 세례요한이 흔들려도(2-15), 세상이 장터의 아이들처럼 영적으로 무감각해도(16-19), 그리고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처럼 권능을 행하여도 회개하지 않아도 천국 복음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20-24). 무엇보다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침소봉대(針小棒大, 9.3,11,34)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찌 보면 분명 위기는 위기다. 이때 주님의 책망이 이어지고, 그러자 세상은 더없이 절망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이제 심판인가. 바로 그 순간, 주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신다(25-27). 그리고 당신의 미션(mission)을 다시금 붙드신다(28-30). 위기는 곧바로 기회의 문으로 바뀐다. 놀라운 것은 반복음(反福音)적인 이 세대’(16a)를 당신의 넓은 사랑의 가슴으로 품고 가신다는 점이다. 결국 인생이 무슨 의로운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희망이 없는 죄인이기에 주님에게서 은총을 받는 것이다. 이 은혜와 사랑의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11장의 절묘함이다.

 

 

화 있을진저(20-24): ‘회개하지 아니한 도시들에게

 

이 세대가 곧 절망의 세대라는 책망을 받게 된 이유는 권능’(dunamis), 그러니까 4장을 시작으로 10장까지 앞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므로”(20)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3중사역을 통해 천국 복음을 전하고 이를 보여주셨지만 그러나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하지”(20) 않았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주님의 권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회개하지 않은 것이고(20), 교만한 것에 있다(23). 물론 이처럼 사는 것이야 자유지만 결국 심판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22,24). 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다름 아닌 주님의 권능을 친히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는커녕 교만이 하늘까지 치솟았다는 것이 좀 씁쓸하다.

산상수훈 이후에 이렇듯 두 기류(믿음 vs 불신; 8.2,8,13, 9.2,22,28-29 9.3,11,34)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더니 급기야 주님의 심판선언까지 몰고 왔다(20-24). 이게 세상의 모습이다. 결국 어떻게 사는 것이, 무엇으로 사는 것이 주님의 화 있을진저라는 준엄한 책망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만큼 이 심판선언은 아프다.

 

 

메시야의 초대(25-30): 짐 진 자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

 

일은 주님 편에서 시작된다. 이게 은혜다. 주님은 이 세대’(16-24)의 모든 것을 당신의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신다. 소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라는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회개와 구원에로의 길이 감추어져 있다(25). 결국 이들에게는 심판 날이 오고 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여기서 중단되지 않는다.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화 있을진저”(20-21), 그리하여 신판 날을 맞을 것이라 책망을 받은 자들을 향하여 위대한 사랑의 초청장이 선포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 주님은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20)함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게 먼저 심판을 예고하시지만, 그러나 다시 구원에로의 초대를 하신다(28-30).

지금(현재)의 심판선언과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인 심판 날, 바로 그 사이 남아있는 때를 이처럼 더 없는 사랑으로 모든 인류를 초대하신다. 누구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28a)이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라는 교만 때문에 회개를 거부한, 그래서 인생의 헛된 수고와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심판의 문을 향해 걸어가는 희망 없는 인생들을 향해 주님은 다시금 구원의 불씨를 살리신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55.1)

 

이렇듯 주님의 초청에는 누구는 되고 또 누구는 거절이라는 그런 조건이 없다. 인생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로 보셨고, 그들을 모두 부르신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 죄 아래 놓인 인생은 이렇듯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다. 그럼에도 안식과 생명의 주인인 주님을 오히려 배척하고 거부하고 있으니 이게 회개 없는 인생의 모습이다. 인생은 이렇듯 주님을 배반하였지만 주님은 바로 그 인생들을 초대하신다.

초대장을 받았으니 이 최상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사는 것, 이게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의 행복이다. 그러면 영혼이 쉼을 얻게 하시겠다 하신다(29b). 놀라운 것은 주께서 지워주신 멍에는 수고하지 않아도 될 만큼 쉽고, 또한 무거운 것이 아니라 가볍다고 하신다(30). 여전히 짐(멍에)을 지고 있지만 썩어 없어질, 즉 해도해도 줄지 않는 수고와 무거운 형벌적인 짐이 아니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already) 시작되었으나 최종 집행은 아직(not yet)이다.

심판 예고 사이렌(Siren)과 그것이 집행될 심판 날은 분명 다르다(22,24). 그래서 아직은 희망이다. 물론 역사의 심판 날에 앞서 개인적인 심판 날이라는 죽음을 먼저 맞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회개하는 것을 뒤로 미루는 것은 죽음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자살행위일 뿐이다.

그날이 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회개는 무한정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28a) 부르시는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길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 아니면 사()가 있을 뿐이다. 주님이 심판이 아닌 구원으로 돌려놓으신 기회를 이 세대또한 듣고 알고 믿어야만 한다.

그렇다. 주님의 초청장을 겸손하게 받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살아도(9.3,11,34), 장터의 아이들처럼 살아도(16-19), 주의 권능을 가장 많이 받은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처럼 살아도, 그럼에도 회개하지 않아, 마침내 책망과 심판을 예고 받았을지라도(20-24) 주의 초청장은 저들 모두를 포함하여 회개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달되고 있다.

물에 빠진 내가 살아나는 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내가 내 머리를 잡고 들어올린다고 해서 내 몸이 물 위에 올라오거나 건져지는 게 아니다. 인생은 이렇듯 스스로의 힘과 노력과 공로를 통해서 구원을 얻고, 또 쉼을 얻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 축복이요 행복이요 살 길이다. 나 같은 죄인도 불러주셨으니 이 값없이 받은 은혜와 사랑, 하나님의 구원의 초대장을 감사함으로 받아보자. 이 길이 살 길이니까.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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