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보내신다(요 14.15-26).

20220402(묵상)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보내신다.

Jn. 14.15-26

  

    본문 관찰

 

    성령님(15-17,25-26)

    예수님(18-21)

    하나님(22-24)

 

 

또 다른 보혜사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7.39)

 

성령님은 아직 장차 보리라’(1.42,50-51)의 예고편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본문 역시 그렇고, 이 약속은 사도행전에 가서야 성취된다. 성령님이 아직 제자(성도)들에게 임하지 않으신 것이지 성령님이 계시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께로부터 요한에게 계시되었다. 132-34절이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이처럼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셨다(3.34).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씀(3.5-8)하심으로써 성령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가를 말씀하시기 시작하신다. 성령님은 이처럼 우리 성도들에게 임하실 것이다.

이와같이 영과 진리로 예배할”(4.23,24) 때가 왔다. 그러나 739절이다. 아직 성령님은 제자(성도)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신다. 그러나 그때는 임박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처첨 본격적으로 성령님을 소개하심으로써 성령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고하신다.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이 현실로 임하는 거대한 성령의 파도가 갈보리 십자가로 가는 길목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진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선포되고 있음이 특별하다.

 

 

성령님(15-17,25-26)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16), ‘진리의 영’(17, 15.26, 16.13), ‘보혜사’(26, 16.7)로 각각 소개된다. 일단 본문 안에 계시된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님과 예수님,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으로 계시되고 있는 삼위일체를 통해 정리해 본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님을 보내주시도록 간구하신다.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이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신다.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하신다(16).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성령님을 보지도 못한다.

    세상은 성령님을 알지도 못한다.

    세상은 성령님을 맞아들일 수가 없다.

    제자들은 성령님을 안다.

    성령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제자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17).

    성령님은 보혜사이시다.

    성령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 이름으로 보내실 것이다.

    성령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26)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셨듯이 보혜사’(parakletos, 돕는 자) 성령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이 약속의 복음이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저 천상으로부터 예수님을 통하여 배달되고 있다. 마침내 예수님의 부재와 함께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환난과 시련의 세상에 넘실거리는 근심’(1)의 파도가 결코 제자들을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못할 것임을 약속으로 받고 있는 셈이다. 누가 이 약속을 하시는가?

 

 

예수님(18-21)

 

갈보리 이후에 대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16a) 그렇다. 주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두지 않으실 것이다(18).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 그러니까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다시보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19a). 왜냐하면 주님처럼 우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9b). “가서 오리라”(3,18) 하신 분, 동시에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 아버지 하나님 안에 계시고, 제자들이 주님 안에, 주님이 제자들 안에 있으시는 분, 바로 그 분을 알게 될 그 날이 올 것을 약속하신다(20). 그 약속이 오늘 우리에게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21절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수님의 계명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지키는 자라야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말씀 말이다. 이 모든 약속을 누가 상속하는가? 그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다.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주님도 말씀을 받아서 지키는 자를 사랑하신다(7.24-27).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언약하신다. 이제 장차 보리라의 약속은 그것을 가지고 지키는 자를 통해 열매를 맺게 될 국면으로 서서히 이동(shift)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차 보리라’(1.42,50-51)꿈이 현실로 임하게 될 것 말이다.

 

 

하나님(22-24)

 

가룟이 아닌 유다의 질문(22)에 대한 답(23-24)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말씀을 지키는 자고, 그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신다(23a)고 하신다. 바로 그가 천국의 상속자다(23b). 하나님은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다. 하나님은 이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셨다(24b).

 

 

부스러기 묵상

 

근심’(1)의 제자들에게 사랑이 선포된다.

그뿐 아니라 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임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이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시고, 성령님 안에서 영원토록 보존하신다. 바로 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사는 자, 그가 바로 나다. 주님은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지키고, 사랑할 것을 명하신다. 성령님은 이처럼 내 곁으로 오신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작정하시고, 약속하시고, 성취하신다.

다시금 성령님을 바라본다.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을 모두 생각나게 하실 성령님을 찬양한다. 이토록 많은 말씀과 표적을 3년이나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보고, 체험하고, 느끼고, 받았음에도 근심으로 밖에 반응할 수 없는 연약함을 아시고 성령님을 보내신다고 약속하신다. 이 약속이 내 안에서도 성취됨을 감사드린다. 나를 부르사(1) 거듭나게 하시고(3), 이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성령으로 예배하게 하시고(4),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그 안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시고(7), 마침내 진리의 영으로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는 분, 그분이 내가 섬길수록 더욱 귀한 성령님이시다. 이렇게 해서 근심평안으로 바뀐다(27). 27절 역시 내가 만들어가는 게 아니다. 이걸 27절부터 더 묵상해 보자.

사랑은 동사(21, 13.1, 15.12-14). 동시에 사랑은 명사그 이상이다. 사랑은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 그 이상이다. 사랑은 명사(앞서 말한 것들)를 그대로 실행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당신의 말씀’(명사)대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동사)이었다. 그렇다면 사랑은, 그리고 사랑을 행하며 산다는 것은 이 둘’(명사+동사)이 합력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는 것은 그만큼을 균형 이루지 못한 사랑을 따라 사는 자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내게 있어 사랑은 어떤 것일까.

 

   

제목 날짜
복음은 세상을 거꾸로 사는 것이다(요 15.18-27). 2022.04.04
가지는 나무의 사랑, 그게 희망이다(요 15.9-17). 2022.04.03
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거함으로 열매 맺는다(요 15.1-8). 2022.04.03
26 심판 안내장, 안식 초대장(마 11.20-30) 2022.04.02
평안,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요 14.27-31). 2022.03.30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보내신다(요 14.15-26). 2022.03.30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기도를 섬길 수 있다(요 14.12-14). 2022.03.30
도마와 빌립의 해답이 믿음임을 주님은 아신다(요 14.1-11). 2022.03.30
25 요한마저 흔들릴 때, 어찌할까?(마 11.1-19) 2022.03.26
*24 제자도③ - 약 속(마10.24-42) 2022.03.21
23 제자도② - 파송 그 이후, 고난(마 10.16-23) 2022.03.17
22 제자도① - 부르심과 파송, 그 마음(마 10.1-15) 2022.03.14
21 천국로(天國路): 믿음을 사용하십시오(마 9.18-38). 2022.03.05
20 천국로(天國路): 나는 누구인가?(마 9.1-17) 2022.02.19
제자는 ‘지금은’과 ‘후에는’을 사랑으로 완성한다(요 13.31-38). 2022.02.14
가룟 유다, 그 정체를 추적한다(요 13.21-30). 2022.02.13
주님의 언행(言行)이 나의 본이다(요 13.12-20). 2022.02.13
섬김의 종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요 13.1-11). 2022.02.13
19 천국로(天國路): 가다라 지방은 거절하다(마 8.28-34). 2022.02.12
‘장차 … 보리라’의 길목에서 부른 노래가 있다(요 12.44-50). 202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