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기도를 섬길 수 있다(요 14.12-14).

20220401b(묵상)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기도를 섬길 수 있다.

Jn. 14.12-14

  

    본문 관찰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12a).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13a).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4).

  

 

무엇을 구()하든지

 

요한은 예수님의 기도 장면을 매우 간추린다.

주님의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주께서 친히 기도하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명하시는 경우다. 친히 기도하심으로 모범(6,11,12,17)을 보이시고서는 중심에 제자들을 향해 기도하라는 명령(14,15,16)을 품으신다. 멋진 구조다. 먼저 요한복음에 소개되고 있는 예수님의 기도를 정리해 본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6.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함이니이다.”(11.41-42)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하시니 .”(12.27-28)

 

        → 본문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구하라 .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16.23-24,26a)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 ….”(17)

 

 

12

 

믿음은 신자(信者)를 단순히 근심 너머로 이동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12절이 이를 말한다. 주님은 믿음에 대해서 보다 큰 그림을 그리신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자에게 뭘 말씀하시는가? 먼저,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리고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믿음 이후가 아름다운 희망이다.

사실 빌립의 문제(8)는 믿음의 문제다. 이것이 주님의 시각이자 통찰이며, 이에 따른 처방이다. 가룟 유다(12.4-6, 13.2,27,30) 베드로(13.6,8,9,36,37) 도마(5) 빌립(8) 유다(22)로 이어지는 제자들의 흔들림은 심상치가 않아 보인다. 제자훈련이 거의 마무리될 시점이 아닌가. 소위 말하면 이들은 초신자들이 아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냥 주일예배나 드리며 살았던 신자가 아니다는 뜻이다. 공생애 처음부터 십자가 구속을 앞둔 현재까지 진리와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했던 자들이다. 특히 제자들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주님은 근심 너머에 있는 믿음으로 직행하신다.

주님의 초점은 나를 믿는 자’(12a). 이것만이 14장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흐트러진 영적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주님은 이들에게 희망을 거신다. 주님은 당신을 믿는 자는 주님이 하신 일을 저도 할 것이라 언약하신다. 주님의 약속이다. 믿음이 자가발전(自家發電) 되어 주님의 일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믿는 자를 거기까지 쓰시겠다 하신다. 그럼 주님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주와 선생으로서(13.13) 하신 일을 종과 제자로서 이어가게 하시겠다는 의미다. 믿음이 사역(사명)이 되어 열매로 나타나게 하심으로써 결과적으로 주의 일을 제자()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걸 잊지 않고 싶다. 주의 일을 내가 할 때 그것은 마치 겨자씨와 같은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일 수 있다. 또 실재가 그렇다. 그러나 주님은 마치 오병이어를 5천명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게 하신 것처럼 그런 의미의 그보다 큰 것도 하”(12b)게 하신다. 나의 겨자씨를 주의 겨자나무로 크게 하신다는 뜻이다(4.30-32) 잘 해서, 내가 믿음이 많고 좋아서가 아니다. 단지 생물학적으로 큰 것도 하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님의 사명이 제자들을 통해 확장될 것을,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이 현실로 임하게 되는 그런 영광스러움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을 말씀하심이다. 복음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

 

 

13-14

 

기도로 이어지는 게 아주 자연스럽다. 여기 너희’(13)는 제자들이지만 동시에 주님을 믿는 자다. 그러니까 믿는 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앞서 묵상한 12절을 성취하기 위해서 무엇을 구()하든지”, 이처럼 기도하면 주께서 시행하신다 말이다. 이것은 기도의 무한(無限)이자 동시에 유한(有限)이다. 무엇을 구하든지 시행하는 것은 무한한 기도의 축복이지만, “아버지로 하여금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13b)는 목적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면에서 기도의 축복은 유한하다. 아무렇게나 구해도, 사사로운 목적이나, 이기적이고 욕망에서 비롯된 것을 구해도, 마치 어린아이에게 칼을 주는 것과 같은 응답이 곧 축복이 아닌 것을 구해도, 오늘은 복 같지만 내일은 화가 되는 것이어도, 다른 사람을 추락시키고 자기만 사는 것을 구해도,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는 것을 구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시행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믿는 자만이 바른 기도, 건강한 기도, 성경적인 기도, 이어지는 성령 안에서의 기도(14.16- , 16)를 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고, 믿고, 보고, 깨닫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결국은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이 기도의 응답일 수 없다. 그것을 주의 이름으로 구한다고 해서 응답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 예수님을 믿는 자가 누구인가를 그것만큼 모르는 자다. 성도의 모든 삶의 좌소에는 이와같은 믿음이 자리한다. 그래서 주님이 줄기차게 믿음을 얘기하시는 것 아닌가.

 

 

부스러기 묵상

 

주님처럼 기도하는 자는 주님이 하신 기도 이후를 그도 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기도 속에 들어있는 비전이다. 이처럼 기도는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한다. 주님이 이 기도를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요구하시고, 맡기시고, 그리하여 기도 그 이후를 섭리하신다. 이것은 분명한 약속이다. 믿음은 이 약속을 보게 하고, 기도는 이 약속을 성취하게 한다. 이게 믿음 안에 들어 있는 축복이다. 신나는 일이다. 이것들이 기도를 통해서 주어진다는 점이 말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해서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얻어내는 그런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기도는 하나님께 설득 당해서 하나님이 이루고 싶어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는 그런 영적 전투다. 나는 지금껏 기도를 이렇게 생각하며 신앙해 오고 있다. 이 점은 주님의 기도에서 더욱 분명히 빛나는 원리이다. 6장부터 등장하는 주님의 기도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자신의 영광을 위해 기도를 동원하고 있는 곳은 없다. 주님은 늘 하나님의 영광을 기도 속에 품었고, 그것이 성취되는 것을 위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셨을 뿐이다. 주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이처럼 언제나 하나님을 중심에 놓은 아버지와의 교제였고, 그 친밀한 하나되심을 통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복음으로 열매를 맺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이렇게 묻고서 한참을 묵상한다. 막 써 내려가는 것 같아도, 그게 아니다. 주님의 기도 생활에서, 주님이 제시하시는 기도의 신학으로부터, 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기도를 말씀하셨던 주님의 기도하심에서 부스러기 같은 기도의 향기를 만나게 된다. 참 오랜만에 기도가 회복되고 있다. 눈물도 그렇고, 입술도 그렇고, 내 영혼의 샘도 그렇다.

말씀 묵상과 기도의 공존에 늘 부담을 느껴왔던 까닭에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기도의 미로로부터 빠져나오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살 것 같다. 짧은 무릎을 길게 꿇고 앉아 기도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올려다보는 기도의 향을 주께 드릴 수 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난 행복하다. 정말이다. 주님 앞에 서서 기도할 때면 어김없이 초라해지는 나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안심이 되고, 또 기쁨으로 자리하고, 평안하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느끼며 산다. 난 이게 좋다.

 

   

제목 날짜
복음은 세상을 거꾸로 사는 것이다(요 15.18-27). 2022.04.04
가지는 나무의 사랑, 그게 희망이다(요 15.9-17). 2022.04.03
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거함으로 열매 맺는다(요 15.1-8). 2022.04.03
26 심판 안내장, 안식 초대장(마 11.20-30) 2022.04.02
평안,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요 14.27-31). 2022.03.30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보내신다(요 14.15-26). 2022.03.30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기도를 섬길 수 있다(요 14.12-14). 2022.03.30
도마와 빌립의 해답이 믿음임을 주님은 아신다(요 14.1-11). 2022.03.30
25 요한마저 흔들릴 때, 어찌할까?(마 11.1-19) 2022.03.26
*24 제자도③ - 약 속(마10.24-42) 2022.03.21
23 제자도② - 파송 그 이후, 고난(마 10.16-23) 2022.03.17
22 제자도① - 부르심과 파송, 그 마음(마 10.1-15) 2022.03.14
21 천국로(天國路): 믿음을 사용하십시오(마 9.18-38). 2022.03.05
20 천국로(天國路): 나는 누구인가?(마 9.1-17) 2022.02.19
제자는 ‘지금은’과 ‘후에는’을 사랑으로 완성한다(요 13.31-38). 2022.02.14
가룟 유다, 그 정체를 추적한다(요 13.21-30). 2022.02.13
주님의 언행(言行)이 나의 본이다(요 13.12-20). 2022.02.13
섬김의 종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요 13.1-11). 2022.02.13
19 천국로(天國路): 가다라 지방은 거절하다(마 8.28-34). 2022.02.12
‘장차 … 보리라’의 길목에서 부른 노래가 있다(요 12.44-50). 202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