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그 정체를 추적한다(요 13.21-30).

20220216b(묵상)

 

 

 

가룟 유다, 그 정체를 추적한다.

Jn. 13.21-30

 

    본문 관찰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b).

    내가 떡 한 조각을 젹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26a).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27a).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30).

  

 

가룟 유다의 이력서(履歷書)

 

그 역시 6장의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유다는 믿지 아니하는 자’()였고, 이를 주님은 아셨다. 그래서 이처럼 경고하시면서 곧바로 마귀’()라 정죄하신다. 처음부터 유다의 정체를 아셨음에도 주님은 그에게 회계를 맡기셨고, 공금을 훔쳐 가는 도둑’()임에도 세리 출신인 마태에게 임무를 교체하지 않으신다. 끝까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과 생각()까지 깨끗하지 못한() 자로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부터 격리시켰다. 이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구약 예언의 성취()를 위한 도구가 되고 만다(행동은 18장에서다). 이것이 요한이 고발하는 불신앙과 타락으로 점철된 가룟 유다의 어둡고 칙칙하고 부끄러운 이력서의 전모다.

 

    ①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6.64)

    ②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6.70-71)

    ③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감이러라.”(12.4,6)

    ④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13.2)

    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13.10-11a)

    ⑥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13.18b)

   

 

유다의

 

그리고 오늘 본문이다. 그런데 22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6-13장까지 여섯 번에 걸쳐 가룟 유다의 정체에 대해서 줄 곧 말씀을 해 오셨음에도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보면 유다의 교활함과 이중성이 얼마나 지능적이었나를 짐작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것만큼이 유다에게는 기회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13장에서 주님은 좀 더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신다. 2절과 27절 사이에 식사(3)와 발씻음(4-12a)과 말씀(12b-20)이 이어진다. 이게 다 유다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수납을 거부한다. 마침내 마귀가 생각을 넣었더라.”(2)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27a)로 유다는 추락한다. 이제 회복 불능이다. 그때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27b) 이로써 유다는 더 이상 빛으로부터 영원히 격리된 어두움의 철창에 갇히고 만다. 30절의 은 주님의 말씀과의 영적 대결을 통해 여러 의미들로 분광된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9.4-5)

 

베드로는 성령강림 직전, 사도를 보선하면서 유다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유다는 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1.25b) 그랬다. 그는 주님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주님이 친히 자신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끝까지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팔기 위해 영적 어두움이라는 을 택한다(30). 그는 빛을 의지적으로 거부했고, 빛을 끝까지 믿지 않았고, 빛과 함께 있었으나 어둠을 택했고, 빛의 복음을 들었으나 흘려 버렸고, 빛을 보았으나 영적 눈을 감아 버렸고, 빛을 체험했으나 포기했고, 빛의 길로 들어섰으나 마침내 밤의 출구를 따라 지옥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부스러기 묵상

 

일이 이처럼 진행되고 있음에도 제자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28-29).

26절에서 밝히셨듯이 한 조각을 찍어다가 가룟 유다에게 주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유다는 은밀하게 이 일을 진행한 것이다. 결국 적()과의 동침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끝까지 유다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하지만 유다는 끝내 주님이 주시는 조각을 천연덕스럽게 받음으로써 은혜를 원수로 대신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유다는 사탄의 도구가 된다(27a). 사탄의 노리개로 자기 일생을 스스로 몰아넣는다.

집에 파피루스에 그려진 성찬을 기념한 예수님과 열두 제자의 그림이 걸려있다. 중앙에 주님이 서 계시고 좌우로 여섯 제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눈에 유다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이 그림을 꼭 보면서 지나다니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가룟 유다는 정면을 보지 못하고 선 곳의 우측으로 시선이 돌려져 있다. 그리고 오직 그만 얼굴 주위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원()이 없다. 참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다가 왜 이처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3년 이상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함께 하지 않았는가? 모든 것을 보았고, 들었고, 누렸고, 체험했는데도 이럴 수 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건 그렇고, 이처럼 은총의 빛 아래 있어도 유다처럼 될 수 있다는 긴장이 느껴진다. 실마리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데 있다. 믿음 없이 종교생활을 한 셈이다. 그러니까 중생 없이 교회의 회원이 되어 이것저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믿지 않았던 그것이 마침내 주님을 배반하는 자리까지 자랐음을 본다.

다시금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믿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예수님 주변을 빙빙 돈 사람은 가룟 유다 하나로 족하다. 더 이상 이런 비극의 후예가 교회 안을 맴돌지 않도록 목회의 질을 건강하게 가꾸는 일에 생명을 건 영적 승부를 펼쳐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영적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성시(聖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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