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오병이어(五餠二魚), 그 이후(마 14.22-36)

20220724(양무리교회)

  

 

 

오병이어(五餠二魚), 그 이후

Matt. 14.22-36

  

 

    본문 관찰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배가 물결을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오병이어(五餠二魚), 그 이후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이어지는 그 이후 이야기 역시 매우 흥미롭다.

본문 22-23절이 중요하다. 한 번 더 보자: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같은 오병이어(五餠二魚) 이야기를 다루는 마태복음 14장과 요한복음 6장을 흐름을 따라 오병이어(五餠二魚) 그 이후를 정리해 보면, 먼저 주님이 본문 22절처럼 언행하신 배경에는 빵(기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삐뚤어진 요구와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6.15), 그러니까 예수님이 먹고 배부름이라는 일용할 양식을 해결해 주는 능력자가 되어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무리를 떠나 따로 산에 홀로 기도하고 계시는데(23), 그런데 그 무리들은 그곳까지 주님을 찾아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동행하려고 찾아간 게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주님은 저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아셨다. 그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것 때문이었다고 말씀하신다(6.26). 그래서 22-23절이 중요하다. 이렇듯 오병이어(五餠二魚) 이후는 22-23절에서 그 다음이 어떻게 되는가를 주목하게 한다.

 

 

무리들: 예수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자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6.15)

 

여기 그들은 누구일까: “무리가 예수를 찾으러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여기 언제 오셨나이까”(6.24-25)라고 한 자들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주를 끈질기게 찾아온 이유가 불순하다. 주님과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단지 육신의 배를 채우는 빵의 문제 해결이 목적이다. 하나님의 나라, 진리, 생명, 구원, 하나님의 영광, 제자로 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때문에 주님은 이 무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6.26-27)

이처럼 그리스도와 교회와 복음과 믿음의 사람 곁에 모이는 이유와 목적이 주께서 원하시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지금도 없다고 볼 수 없음이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서 예수님은 오병이어(五餠二魚)를 통해 진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인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설교하신다(6.28-59).

그러면 이 무리는 어떻게 되었는가. 1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을 맛보고, 2차 설교까지 들었으니까. 하지만 무리를 집으로 돌려보내셨다(22). 주님이 함께 동행할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좀 특별해 보이는 것 하나를 살피면서 가겠다. 지금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둘러싸고서 22절에는 [무리들 그룹](22b; 6.22-28), [12제자 그룹](22a,24-34; 6.67-71)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 사이에 또 하나의 그룹이 있다. ‘제자 중 여럿’(6.60)으로 소개되는 자들이다. 결국 이들도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진정한 진리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길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6)

 

, 보라. 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이 어디 쉽게 일어나는 표적인가. 그런데 그 많던 사람들 가운데 모두가 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떠나간다. 놀랍다. 이제 남은 자는 누구인가. , 12 제자들이다.

그때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때나 비슷하다. 세상이 언제 진리와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나 가졌던 적이 있는가. 오직 자신들의 육체적 욕구와 욕망을 채우는 수단과 방법에서 보니 필요하다 싶은 게 교회였던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무리가 아닌 제자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래서 이번에는 주님이 12 제자에게 물으신다: “너희도 가려느냐?”(6.67) 무슨 말인가. ‘그래, 너희도 나를 따르는 이유가 단지 배부르게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더냐.’이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또한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이 시간 각자 여러분의 답을 자신의 고백에 담아 주님께 말씀을 드려보라.

베드로는 오병이어(五餠二魚) 이적과, 그리고 요한복음 6장에서 그 후에 예수께서 전하신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떡이다.”는 메시지를 듣고 이에 대한 답을 이렇게 고백한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로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68-69)

,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모두가 경험했지만 남자만 5천명인 무리들과 제자들의 생각은 이렇게도 달랐다(22-23, 6.15). 제자들은 이 기적을 통해, 그리고 이것에 대한 설교를 듣고서 주님이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시다는 것을 알고 믿었다(6.26-27): ‘주님, 우리가 주를 따르는 것은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그러나 오병이어(五餠二魚) 이후의 제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제자들처럼 언행했다 하더라도 고속도로와 같은 탄탄대로만 있는 게 아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밤이 깊도록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던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풍랑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게 되는 일이었다(24). 제자들은 고난을 만나자 곧바로 두려워하고 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과 이어진 요한복음 6장의 후집회에서 들었던 설교와 고백을 까마득히 날려 버렸던 것 같다. 또한 그 제자들에게로 주께서 가까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지 못하고서 생각나는 대로 말해 버리고 만다(26). 이렇듯 제자들은 무리들과 달리 주를 따라서, 주께서 명하신 곳으로 순종하고 있음에도 찾아온 두려움과 염려의 문제 앞에 어쩔 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품으신다. 배은망덕한 무리들처럼 대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27) 이처럼 제자들은 비록 무리들과 다른 신앙고백을 오병이어(五餠二魚) 이후에 고백했으나 그러나 고난을 당하고(24), 두려워하고(27), 믿음이 작고 의심하는 자들이다(31). 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 이전에는 이 많은 무리를 무엇으로 먹이겠느냐 했던 자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병이어(五餠二魚) 이후,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빵을 선택하지 않고, 비록 지금처럼 현실 앞에 두려워 떨더라도 영생의 말씀을 따라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이처럼 제자들은 풍랑 앞에 다시 믿음이 적은 자가 된다. 하지만 주님은 고난 가운데 빠진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저들의 문제를 진단하시며, 또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비록 믿음이 적은 자’(31b)이지만 그러나 이처럼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30b)라고 다시 주님을 향해 믿음의 눈을 들기만 하면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31a)는 분이시다.

 

 

부스러기 묵상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의 인치신 자니라.”(6.26-27)

 

주님께서 혼자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신 이후를 주목해 보죠.

오병이어(五餠二魚) 이후에, 이어서 무리와 제자들을 떠나 홀로 올라가 기도하신 이후에, 그러면 예수님은 빵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임금 삼으려는 무리에게로 가셨는가. 아니면 오병이어(五餠二魚) 이후에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서 빛나는 신앙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작은 모습을 보이며 만난 문제 앞에 여전히 두려워하는 그런 제자들에게로 가셨는가. 그렇다. 주님은 임금 삼으려는 무리에게로 가지 않으시고, 여전히 두려워하며 믿음이 작은 자들인 제자들에게로 가셨다.

이로써 우리는 주께서 오병이어(五餠二魚) 이후에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주님은 어떤 자들과 함께 하시는가를 알았다. 비록 부족하고, 믿음이 작고, 두려워할지라도 상관없다. 그럼에도 마음과 생각과 삶을 주를 향해 순종함으로 달려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며 살아간다면, 빵 때문에 주를 찾고 또 그러다가 이번에도 빵 때문에 떠나는 것으로 밖에 언행하지 못하는 무리가 아니라면 그것이면 된다.

 

주님은 지금도 안심하거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27)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서 있지만 여전히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느냐?”(31)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연약하고 부족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주님은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25)는 분이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오신다:

 

  힘들지...

  믿음으로 사는 게 만만하지 않지?

  돈 벌며 사는 거, 쉽지 않지?

  지금 부모로 사는 거, 가족들 책임지는 거 녹녹하지 않지?

  무엇보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거, 그거 장난 아니지?

 

  그래, 안다... 그래, 내가 너의 수고를 안다... 나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오는 길이

  정말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웠단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능욕과 멸시와 천대를 이

  겨낸 줄 아느냐? 너 그걸 정말 아니? 다시 말해 줄까? ‘그래, 그것은 바로 너, 내 사랑

  하는 아들이요 딸 너를 위해서였다.’

 

  그러니 너도 다시 배고픈 일용할 양식인 빵을 위해 너의 인생을 걸지 말고, 영원한 생명인 나를 믿고 따라 오거라. 힘든 게 당연하다...

  눈물나는 게 맞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싶은 게 사람에게 찾아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기며,

  그러기 위해 예배와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나를 찾고 찾으며 사는 게 성도의 삶이고 내 제자가 되는 길이란다.

 

오늘 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 그 이후에 우리에게도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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