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천국이야기① - 마음밭이 말씀의 씨를 결실하기(마 13.1-23)

20220522(양무리교회)

  

 

 

천국이야기- 마음밭이 말씀의 씨를 결실하기

Matt. 13.1-23

  

    본문관찰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1-9)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10-17)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18-23)

       길 가(4,19)

       돌 밭(5-6,20-21)

       가시떨기(7,22)

       좋은 땅(8,23)

  

 

씨앗 때문인가? 밭 때문인가?

 

말씀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밭은 어디인가.

모든 씨는 밭에 뿌리지만 말씀은 오직 인간의 마음에 뿌린다. , 말씀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밭은 인간 심성이라는 마음의 밭이다. 주님의 해석에서도 이는 분명하다(18-23). 한편 각각의 밭들은 이미 어떤 밭이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말 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애초부터 돌밭이었기 때문에 환란으로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열매가 씨 때문인가, 아니면 밭 때문인가 하는 점이다. 열매 유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만약 밭이 항의하면 씨앗이나 그 씨앗을 뿌리는 농부(하나님)가 할 말이 없어진다. 반대로 씨앗이 그렇게 항의해도 역시 난감해진다. 씨앗에 문제가 있다면 말씀이 열등해서 그 결과 밖에 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는 궤변이다. 따라서 이 비유는 씨앗과 밭의 어떤 조건에 대한 비유가 아니다. 인간 마음이 어떠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말한다.

 

 

인간 마음이라는 네 종류의 밭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이,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11-12)

 

왜 똑같이 말씀을 듣는데 이러한 다른 결과가 발생할까. 매우 중요한 사실은 네 종류의 밭 모두가 다 말씀을 들었다는 사실이다(19,20,22,23): “말씀을 듣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들으나 말씀을 듣고 .” 어떤 밭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어져서 처음부터 말씀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일에 제외된 것이 아니다. 또한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릴 때 어떤 밭은 이미 길가밭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씨를 뿌린 것 또한 아니다.

각각의 밭은 말씀이라는 씨앗을 뿌렸는데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다. 그럼 중요한 것은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같이 뿌렸는데,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똑같이 천국의 복음을 전하시는데도 왜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이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다. 어떤 농부가 자신이 뿌린 씨가 쓸모없이 되기를 바라겠는가.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은 이어지는 비유 해석(18-23)에서 그 이유를 알려주신다.

 

[1] 길 가와 같은 마음밭(4,19)

 

악한 자는 늘 마음에 뿌리운 말씀이라는 씨앗을 빼앗는다. 마음이 길가와 같아서 씨앗을 받아 품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처럼 말씀 따로, 밭 따로”, 이렇게 살아간다. 전혀 이 둘이 어우러질 줄 모릅니다. 미물에 불과한 새들도 자기에게 유익한 것인 줄 아는데 하물며 말씀을 뿌림 받은 사람은 그것이 생명이고 밭이 밭 되게 되는 축복의 씨앗인줄조차 깨닫지 못한다.

밭으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 되어 버렸기에 밭을 살리는 씨앗이 뿌려지고 있음에도, 말씀이 그 밭을 살리겠다고 찾아왔음에도 사탄(‘악한 자’)에게 그만 이 씨앗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 혹 내 마음 밭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서 이리저리 뒹구는 씨앗들은 없는지 모르겠다. 내게 필요해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나를 찾아와 주셨음에도 내 취향에 맞지 않다고, 나는 그런 씨앗의 열매를 원치 않는다고 내 마음대로 방치해 둔 천국 씨앗은 없는지 갑자기 머리가 바빠지는 것 같다.

 

[2] 돌 밭과 같은 마음밭(5-6,20-21)

 

씨앗을 품을 만한 밭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흙이 얇고 깊지 않다(5). 때문에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꿈을 펼칠 수가 없다(6). 이 밭의 특징은 즉시 기쁨으로 받되 잠시 견디다가로 요약된다(20-21). 시작은 되는 것 같은데 언제나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가 없다. 왜냐하면 그 속에 뿌리가 없어”(21a) 그렇다. 말씀이라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도 못할 정도로 흙이 엷은 밭, 이렇듯 문제는 늘 밭에 있다.

기쁨으로 말씀을 받는 것은 좋다. 하지만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까지 그것을 붙들고 있을 만큼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그래서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21b)고 만다. 말씀은 뿌려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한송이 국화꽃도 가을에 피려면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야 하고 무수한 비바람이 몰아쳐야 한다면, 하물며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을 통과해야 하겠는가.

말씀을 듣고 즉시 기뻐하는 밭에게도 환난과 핍박은 있다. 이렇듯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 모든 어려움을 면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씀의 씨앗이 뿌리내리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로부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관리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 옮겨 심은 나무도 자기 자리를 잡으려면 몇 년은 걸리는 법이다.

 

[3]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밭(7,22)

 

말씀이 자라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는 가시가 자라는 곳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이것들이 호시탐탐 말씀의 기운을 가로막는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22, 6.25-34 참조)

세상은 언제나 말씀을 들은 자의 마음의 뜰에 말씀이 뿌리내려 자라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잠시 있다 없어질 가시덤불과 같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좇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어느 때나 세상이 복음을 환영한 적이 있는가. 말씀이 자라듯 그것을 방해하는 가시도 함께 자란다(7). 그리고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통해 말씀이 결실치 못하도록 만든다. 이것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힘이다.

 

[4] 좋은 땅과 같은 마음밭(8,23)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19)아 버렸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깨닫는”(23a) 일이 일어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앞의 세 종류의 밭과 좋은 땅까지 네 종류의 밭 모두가 다 말씀을 들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런데 좋은 땅은 말씀을 듣는 것에서 깨닫는것으로 나아갔다.

같은 비유를 기록하는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8.15) 그럼 좋은 땅은 무엇을 깨달았기에 결실하였을까. 아마도 앞의 세 밭들처럼 살아서는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또한 씨앗을 잉태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말씀을 듣는 것과 그것이 자라는 것이 언제나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듣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듣는 것과 그 다음이 합력하지 못한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땅은 깨달은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지켰다. 그 과정에서 마귀가 빼앗아 가는 것이나(19), 환난이나 박해가 (21),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는(22) 갖은 방해로부터 인내라는 수고가 있었다.

결실이란 그저 심었다고 해서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천국’(11)에로의 열매를 맺어 가는 길은 이렇듯 험난하기만 하다. 그러나 씨를 뿌리는 이가 하나님이시기에, 시작하신 아버지께서 끝까지 이루실 줄을 들은바 말씀을 통해서 믿고, 그래서 그것만큼 인내로 주의 섭리를 바라볼 수 있다면 결실하는 기쁨에의 꿈은 현실이 된다. 얼른 생각해 봐도 넷을 뿌렸는데 셋은 없어지고 하나만 남았으니 실패처럼 보인다. 그러나 넷 중 하나가 30, 60, 100배의 결실을 낸다. 이게 천국의 법칙이다.

 

 

부스러기 묵상

 

    “귀 있는 자는 들으라.”(9)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7b-9)

 

마침내 천국의 비밀은 너희’(제자들)그들로 양분된다(11).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14-15). 많은 선지자들과 의인이 천국의 비밀을 보고 듣고(17), 그래서 넉넉하게 되고 싶어 했다(12). 이처럼 귀한 것이 그들에게는 분리되어 있고(11b), 급기야 빼앗길 것이며(12b), 보고 듣고 깨닫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13). ‘너희는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께로 모여 든 믿음의 사람들이다(2). 그리고 그들은 갖은 궤변과 시비를 통해 천국 복음을 반대하는 복음의 적대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다.

세상은 이처럼 크게는 두 종류의 인생밭으로 양분되어 있다. 주님은 이를 보셨다. 그럼에도 저들이 최후심판 때에 항의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천국 씨앗인 복음을 뿌리셨기 때문이다. 그 씨가 결실치 못한 것은 씨앗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은 밭의 문제다(18-23). 천국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자, 환난이나 핍박,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결국 문제는 이것들이었다. 천국은 이것들과 매우 깊은 긴장 관계에 있다.

내 인생이라는 마음밭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밭인가.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로 하여금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지금 정확하게 보고 있는가.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 위해 나는 내 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씨앗타령이나 하고 있는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기력한 밭은 아닌가.

내 마음은 이미 길가처럼 굳어져 버린, 말씀이 심겨지지도 않을 만큼 척박(瘠薄)한 박토(薄土)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 그래서 뿌려도 뿌려도 튕겨나가는 그런 밭은 아닌지 겁난다(19). 환난이나 핍박이 말씀이 싹이 나고 뿌리내리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통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20-21). 자라기는 하는 것 같은데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는 가시가 더 잘 자라서 말씀을 막아버림으로써 결실치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60년 묵은 땅이 되었다. 지금도 뿌려야 할 씨는 있고, 싹이 나 자라고 있고, 이미 조그마한 열매를 맺은 것도 있고, 이제 곧 열매를 맺을 것도 있고, 어떤 열매를 맺게 하실까를 기대하며 바라보는 것도 있고, 종종 내 불찰과 무능력함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지난 60년 동안이나 말씀의 씨앗을 내 심령에 뿌려주셨다.

주님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으시다. 하지만 나는 늘 초라하고 볼품없는 밭에 불과하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밭인데도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금년에도 그대로 두셨으며, 묵은 것이 아닌 또 다시 새로운 씨앗을 뿌려주셨다. 이제는 내 힘과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음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필요하고, 주의 보혈의 피가 내 마음의 밭을 적셔야 하고, 하나님이 늘 주시는 공기와 햇빛과 비를 받아야 하고,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려 주님의 영광이라는 결실을 맺어야 할 때도 되었다. 이렇게 살자! 언제까지나 황량한 들녘을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이런 나를 지금도 추수꾼으로 쓰시겠다 하시니 오직 황송할 뿐이다(9.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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