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마 12.22-37).

20220508(양무리교회)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Matt. 12.22-37

  

    본문 관찰

 

    성령훼방죄(신성모독죄, 22-32)

       무 리 -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바리새인들 -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열매로 나무를 안다(33-37)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바알세불과 성령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다(22).

공교롭게도 이게 성령론 논쟁이 시작되게 만든다. 축사(逐邪) 기적을 무리와 바리새인들 모두가 함께 듣고 보았으나 반응은 정반대다(23 24). 주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25a)-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얼마나 사악한 거짓인가를 밝히 보이신다(25-32). 이것이 유명한 성령훼방죄(신성모독죄)에 대한 가르침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으로 바꾸려는 바리새인들에게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이어서 무엇이 성령훼방죄인가를 나무와 열매 이야기를 통해 실재적으로 교훈하신다(33-37).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듯이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결코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심판이라는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무엇을 말하는가가 그는 어떤 나무이며, 그리고 그 나무에서 어떤 열매를 맺게 될 것인가를 알려준다.

 

 

성령훼방죄(신성모독죄, 22-32)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25a)

 

참으로 좋은 일이 있었다.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서 치유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중증장애인(重症障碍人)으로 살다가 예수님 때문에 몸도 마음도 심령도 정상적으로 돌아온 그 사람이 누릴 행복을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다. 주님을 만나면 이처럼 좋은 일이 생긴다. 이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왔음을 의미하기도 하다(28).

이를 본 무리들은 모두가 다 이를 행한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23)라며 소리쳤다. 여기 다윗의 자손은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야를 지칭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백성들은 사심 없는 눈으로 주님을 보았고, 그러자 그가 행한 축사(逐邪)의 이적을 통해 예수님은 메시야라는 시각을 갖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언행을 통해서 그분이 누구신가를 알아가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축복의 흐름이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과 같은 편으로 모함한다(24). 같은 기적을 보고 들었음에도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을까(23 24). 하긴 지금도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곤 한다. 한 교회에서 같은 시간과, 장소와, 설교자와, 설교를 들어도 그 가운데는 무리들처럼 반응한 사람들(23)과 바리새인들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24)이 있다는 점이 그렇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두고도 그랬는데 뭘 탓하리요.

바리새인들의 말처럼 만일 주님이 바알세불’(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면 귀신이 귀신을 쫓아낸 셈이 되고 만다. 이처럼 분쟁하는 나라여서야 어찌 황폐함을 벗어나 든든히 서겠는가(25-26). 이것은 주님이 바리새인들의 허구를 통렬하게 반박한 첫 번째 반론이다.

두 번째는 그럼 바리새인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27a)는 반론이다. 만일 바리새인들의 말이 옳다면 예수님만이 아니라 바리새인들도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있는 셈이 된다. 이렇게 되면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이 친구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친구를 원수 취급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지 않는 넌센스다. 이게 바리새인들의 허구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들의 사악한 죄를 발견한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이 범한 성령훼방죄(신성모독죄, 31-32). 이 죄는 금생은 물론 내생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32b) 물론 회개치 아니할 때 그렇다(11.20-24). 주님은 용서받지 못할 죄의 구렁텅이로 치닫는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을 이처럼 안타까워하신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처럼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에 빠지지 않으려면 성령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이것은 악한 바리새인들처럼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고(35), 심판 날에 심문과 정죄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럼,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누구신가?

 

    “나는 성령을 믿으며”(사도신경)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16.13a)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무슨 말인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우리가 그 진리 안에서 살아가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우리를 도우시는 돕는 자가 바로 보혜사라는 이름의 뜻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4.16) 그럼 이렇게 좀 더 정리가 된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우리 안에 오셔서 영원히 거하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데, 이를 통해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은 저주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쉬운 성경)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는 이미 성령님이 그 사람 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써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6-17)

,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그 안에 성령님이 거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성령에 붙잡혀서 그분이 원하는 삶을 따라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처럼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에베소서 518절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영적인 삶을 갉아먹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힘쓰십시오.”(쉬운 성경)

 

성령을 훼방하는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성령 안에 거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더 분명히 알게 된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는 바리새인들처럼 언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령에 대해 무지할 때, 성령 안에 거하지 않을 때, 성령을 따라 살지 않을 때, 그 사람은 바리새인들처럼 정죄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열매로 나무를 안다(33-37).

 

나무와 그 열매의 질()은 같이 간다(33,35; 7.16-20 참조). 그러니까 실과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주님은 지금 이를 통해 바리새인들이라는 나무와 그들이 맺고 있는 열매를 비유로 가르치신다. , 가당찮은 헛소리를 하는 것은 저들이 악하기 때문이다(34a). 사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 아닌가(34b).

무엇보다 그가 하는 말()이 그렇다. 주님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36)라 하신다. 그가 한 말이 심판의 한 기준이라는 말씀이 참으로 무겁게 들린다(37).

 

 

부스러기 묵상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7.20)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9.14)

 

나는 지금 어떤 열매를 맺어가고 있을까.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주께서 원하시는 바른 열매를 맺을 수 없다(30). 주님을 반대하고 헤치며 살면서 선한 것을 열매 맺는 나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께서 내 안에 악한 것들을 물리쳐 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내 안에 임했다면(28) 이제 내가 승부를 걸어야 할 일은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추함은 바리새인들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예수님께로 집중되자 바리새인들은 이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 아닌가. 이러고도 온전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오늘의 언행이 내일의 심판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36).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28a) 일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24) 이처럼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며 마녀사냥 식으로 덤벼드는 마음에 가득한 악()을 품고 악한 말을 토해내며 죄를 범하고 있는 바리새인들 앞에 서 계신다(31,34).

우리 역시 세상 앞에 예수님처럼 서 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것이 귀신의 왕을 따르는 바리새인들과 달리 선한 열매를 맺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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