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에게 있는 주님의 흔적을 ‘숯불’에서 본다(요 21.7-14).

20220419b(묵상)

  

 

 

베드로에게 있는 주님의 흔적을 숯불에서 본다.

Jn. 21.7-14

  

    본문 관찰

 

    주님이시라 하니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육지에 올라오니 숯불이 있는데

    와서 조반을 먹으라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그들에게 주시고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숯불 앞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육지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아마 처음 제자들을 만났던 그곳에서 기다리신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5.1-11). ‘’(6)숯불’(18) 역시 예사롭지 않은 소품들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에서 제자들은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는 것 또한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오늘의 만남에서 주께서 의도하신 목적은 무엇일까. 고기잡이(옛사람) 사람 낚는 어부(새사람 - “내 양을 먹이라!”)에로의 회복이 점차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역시 이 무대 중앙에는 주님과 베드로의 만남이 자리한다. 숯불과 떡이 말없이 뭔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베드로

 

요한은 얘들아!”(5) 부르며 찾아오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가장 먼저 알았다(7a). 아마도 6절의 기적을 보자 이를 이루실 분은 주님 밖에 없고, 또한 3-4년 전()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와 동일한 장소에서, 그것도 같은 유형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자 순간적으로 주님이 생각난 모양이다. 베드로가 요한의 이 말을 듣고 보인 반응이 이어진다. 베드로는 상당히 먼 50(1)이나 되는 주님 계신 육지를 향해 바다에 뛰어든다. 이 베드로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어 오랫동안 7절에 머물러 서 있는 묵상이다. 베드로가 아닌 이상 이게 어려운 일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주님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그의 행동에서 묘한 감동을 느낀다.

베드로는 제자들과 함께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20.19a), 두 번째 역시 문들이 닫혔는데”(20.26a)에서 알 수 있듯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도 여전히 뭔가 명쾌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3a) 하면서 주님으로부터 더 멀리 고향으로 낙향(落鄕)해 버렸다. 아마도 그의 마음은 여러모로 복잡하고, 그것만큼 깊은 실의와 절망 속에 빠져 있었을 것 같다. 이렇듯 주님은 이 베드로를 찾아오시는데 그는 주님을 점점 멀리 떠나와 버린다. 마침내 처음 주님을 만날 때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그물이 있고, 그의 옷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 오랜만이라 좀 서툴기는 해도 왠지 익숙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그곳까지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베드로는 요한이 외친 주시라!’는 말을 듣고 고난의 십자가에서부터 지금까지 썰물처럼 밀려왔던 주님과의 거리를 다시 좁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님이 계신 곳을 향해 온 몸으로 나아간다. 자신은 주님을 부인하고(18.15-27), 무엇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에도 이곳 디베랴에서 패배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쓸쓸히 무너져 있는데 주님이 바로 그 자신을 다시 찾아오셨다는 점, 그것도 누가복음 51-11절을 재현해 주시면서였기에 베드로는 주시라!’는 말을 듣자마자 저 멀리 계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님은 분노에 찬 채찍이 아니라 사랑 가득한 생선과 떡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계셨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9)

 

아침으로 가는 참으로 추운 시간에 거의 1정도의 거리를 온 몸으로 바다를 가로질러 왔다. 그런데 거기에 따뜻한 숯불이 준비되어 있고, 아침 식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참으로 따뜻한 만남이다. 하지만 여기 숯불이라는 단어는 여기가 처음이 아니다. 요한은 이와 동일한 단어를 앞에서 사용한 적이 있다(18.18). 그러니까 베드로는 불과 얼마 전에 바로 그 숯불앞에서 주님을 부인했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이 바로 그 숯불을 피워 놓고 베드로를 맞이하신다(9). 베드로는 숯불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주님은 숯불 앞에서 사랑의 음식을 준비해 놓으시고 그를 기다리고 계신다.

베드로는 아마도 이 숯불을 보는 순간 오히려 온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그런 깊은 고통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베드로에 대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죽는 날까지 닭 울음소리만 들어도 눈물로 회개했다고 한다. 어쩌면 베드로에게 있어서 이 숯불과 닭 울음소리는, 마치 바울을 늘 괴롭혔던 육체에 가시’(고후12.7)와 같았지 않을까 싶다. 때로 우리의 약함은 그만큼을 주님의 능력에 붙들려 살도록 하며, 그 주님을 의지하게 만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a) 베드로는 숯불에서 주님을 부인했지만 주님은 숯불 앞에서 베드로를 회복시키신다. 이것이 베드로가 평생 품고 살아가야 주님의 흔적이었다(6.17).

 

 

부스러기 묵상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12)

 

어찌 보면 참 어색한 자리요 만남이다.

주님은 계속해서 말을 거시는데 제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주님은 제자들이 실패하던 그 밤에 조용히 제자들 곁으로 오셔서 숯불을 피우시고, 친히 아침을 준비하신다. 지치고 피곤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신다. 주님은 지금껏 영혼이 잘 되는 하늘 양식을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25b) 만큼 주셨다. 그것과 함께 주님은 또한 육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일도 소흘히 하시지 않으신다.

영육(靈肉)의 양식에 대한 이러한 균형은 대단히 중요하다. 영혼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육신을 학대하고, 고행하고, 수도하는 것으로 빠지는 경향이 문제다. 반대로 육신만을 위해 영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그래서 의식주(衣食住)가 우상인 사람 역시 문제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시고 계시면서 동시에 육신의 배고픔이라는 문제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계신다는 점을 주목한다. 친근하게 제자들 곁으로 다가오신 주님과의 말 없는 식탁 교제는 제자들에게 많은 무언(無言)의 메시지였음에 틀림이 없다. 때때로 말보다 더 진한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주님은 제자들이 조반을 다 먹기까지 기다리신다. 급하거나 서두르지 않으신다. 모든 것을 순리대로 이어가신다. 사명 때문에 삶의 여유로움을 인위적으로 훼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소위 종교적인 분위기나 모양새만을 통해서 진행되거나 성취되는 것만은 아니다. 주님의 모습에서 나의 고정관념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밥 먹는 것은 육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앙과 상관이 없고, 사명을 다시 확인하는 것은 영적인 만남이기 때문에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 자신의 삶 전체가 복음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요, 신앙에 대한 매우 기형적인 고정관념이다. 밥에도 영성이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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