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눅 3.1-6)

20210107a(묵상) 양무리교회(20200426)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Luke. 3.1-6

  

    ▪[10] 출생 성장/준비

        → 제사장의 아들로서 제사장 수업을... 율법!

    ▪1.80b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 빈 들곧 광야에서... 홀로!

    ▪[30] 3.2b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1] 사역 순교

   

 

요한의 출생

 

누가복음 1장에 요한의 출생 이야기가 자세히 소개된다. 요한은 아론의 후손 제사장 가문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따라 태어난다(5,19). 이렇게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뜻이 있는 출생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가정에는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은 나이가 많”(7)았을 때다. 그러니 사가랴가 의문 보다 좀 더 나간, 그러니까 천사가 전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고 할 수 있다(18,20).

, 마침내 엘리사벳은 해산할 기한이 되어 아들을 낳는다(57). 이웃과 친족들이 듣고 함께 즐거워하였으며, 8일이 되매 할례를 받고 가브리엘이 알려준 이름대로 요한이라 이름을 지었다(13,60-63). 이렇게 해서 그는 고향, 유대 한 동네 산골(39,65)에서 심령이 강건해지면서 자랐다(39,65,80a).

   

 

요한의 소명

 

요한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를 위해 세례 요한으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기 이전, 그에게 주어진 소명을 정리해 보자. 계속해서 누가복음 1장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메시지(1.15-17)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선포하는 예언(1.68-79)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76-79)

   

 

요한의 사역

 

        → 제사장의 아들로서 제사장 수업을... 율법!

    ▪1.80b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 빈 들곧 광야에서... 홀로!

    ▪[30] 3.2b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그럼 왜 세례 요한이 등장하는가. 이처럼 태어난 요한은 먼저 제사장 수업과 율법을 공부하면서 이사야의 예언(40.3- )을 알고 있지 않은가?- 자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 30에 드디어 하나님이 말씀으로 빈 들에 있는 요한을 찾아 오신다.

이처럼 광야에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기까지 요한은 그 기나긴 세월을 빈 들에서 홀로 지낸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처럼 살게 했을까? 그러니까 요한은 무엇에 의지해서 지금 광야의 외치는 자로서의 사역을 하고 있는가?

 

본문 3절이라는 사역의 소명이자 사명 때문이다. 마침내 요한은 선지자 이사야 예언(40.3- )의 성취 앞에 선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함과 같으니라.”(4-5)

빈 들, 즉 광야도 이 소명(40.3- )을 막지 못했다. 한편 이 부분, 그러니까 이사야 403절 이하의 예언을 요한이 어찌 알았을까. 광야, 빈 들에 홀로 있는 그가 말이다. 이것은 그의 빈 들, 즉 광야가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건강한 곳으로 준비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1.80b)를 가능하게 한 힘이요 기초였다.

요한의 빈 들에서는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그 시간이 무려 30년이다. 물론 태어나 어느 때 쯤에 광야로 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유년시절을 포함해 20대 어느 시점까지는 제사장 수업을 비롯해 율법(토라)을 암송하는 등 여러 준비를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라면서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를 아버지 스가랴를 통해 듣고(), 또한 아버지의 예언까지(), 그리고 자신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까지(2b) 이 모든 것이 말라기가 예고한 엘리야로서의 소명 앞에 서게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친척이자 곧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마리아가 자신이 요한을 잉태 중에 있을 때 이미 자기 집을 다녀갔고(1.39-45),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자가 구약이 그토록 기대하고 대망한 메시야 곧 인자(사람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었다(1.46-56). 그러면서 이미 구약이 예언하고, 자신의 출생 때부터 예언된 것까지를 포함해 자신의 사명이 오신 메시야를 위해 길을 예비하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①②) 그의 나이 30이 가까이 오는 어느 시점에서 그는 자신의 삶의 무대를 예언에 일치시키며 소명과 사명을 불태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 뒤에 숨는다. 빈 들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올 때까지 무엇보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의존하지 않았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1.31a,33a) 하지만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미 그는 바로 앞, 요한복음 129에서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앞서 15에서도 그에 대하여’, 그러니까 요한이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하지 않았는가.

그럼 지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1.31a,33a)는 무슨 말인가. 그는 이미 태어나기 전 아버지 스가랴 제사장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한 메시지(, 1.15-17)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스가랴를 통해 요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소명을 듣고 알고 배우고(), 그래서 지금 이처럼 빈 들에서 머문 시간을 마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전령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리 말하기 때문에 지금 자신에게 세례를 받는 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자신이 아느냐 모르느냐와 상관없이 요한복음 133-34절을 보라.- 요한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라고 그야말로 증언한다. 지금 자신에게 세례를 받는 예수는 요한 그 자신의 언행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말씀하신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자신 역시 보고서 지금 이처럼 말하는 것이라고 증언한다.

 

말라기 선지자가 오리라 한 엘리야의 출현에 대한 말씀이다: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4.4b-5a)

신약이 시작되기 400년 전,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이처럼 엘리야의 도래를 예언한다. 그리고 계시가 중단되고 주어지지 않은 중간기(암흑기)를 지나 비로소 신약이 시작되는 나팔을 이처럼 울린다. 요한이다.

, 앞서 보았지만 이는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메시지(, 1.15-17)에서도 엘리야가 곧 요한이라고 알려진다. 후에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말씀하신다: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11.12-14)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이야기하지만-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1.31a,33a)라며 겸손하게 소명 앞에 서서 일한다. 그러기까지 무려 그의 생애 전체, 3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빈 들에서다. 예루살렘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 스가랴가 제사장이라면 그 역시 종교 지도자들의 자리에 들어가도 될 모든 것을 갖춘 신분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묵묵히 광야, 빈들에서 홀로 하나님이 부르사 사용하실 그날이 오기까지 모든 초점을 하늘에 맞추어 놓고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았다.

  

 

부스러기 묵상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묻는다(1.19-28).

 

    유대인(A) - 네가 누구냐?

    요한(B) -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A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

    B 나는 아니라

    A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B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믿고 행한다.

그는 광야에서 그냥 30년을 뒹굴며 소일하지 않았다. 23절처럼 이사야의 글을 말하고, 자신에게 소명과 사명을 주신 하늘 아버지 하나님을 알아가고 묵상하고 경배하고 배워가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어 쓰실 때 불편하지 않은 사람으로 자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당신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인가라고 물을 만큼 그는 광야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세상이 그를 알아보았을 정도다. 사람들은 또한 몰려왔고 인기는 높아져만 갔다. 이때 그의 한 마디면 세상의 중심이 될 수도 있었다. 이처럼 폭발력을 가진 존재로서 유대 광야 빈 들을 넘어 곧바로 예루살렘 중앙무대에 진출해 성공과 명예와 권력을 일시에 얻을 수도 있었다. 이미 그는 제사장 가문의 아들이지 않은가.

 

그는 묵묵히 빈 들에서 하나님의 소명이 울려 퍼질 그날을 기다린다. 그 어떤 유혹과 시험 앞에서도 그는 홀로 광야에서 지낸다. 그 세월이 총 30년이다.

지금 우리는 때로 이 시대의 빈 들과 같은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그 소명을 잘 감당할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은 자신들의 중심이 서울이라 예루살렘이라 소리치지만 하나님은 저 이름 없는 변방, 사람들 누구 하나 관심하지 않는 빈 들,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광야 같은 곳에서 당신이 준비해 부르시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사이렌을 준비하신다.

볼품 없는 좁은 단칸방에서, 아무도 이 시대의 답을 달라고 주목하지 않은 이곳 산 끝자락에서, 늘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그 보좌 앞으로 나아가 무릎 꿇는 골방에서, 지금 세상의 화려한 불빛과 야망의 빛을 마다하고 조용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바로 그곳에서 세례 요한과 같은 부흥은 시작된다. 나의 빈 들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찾아오시는 거룩한 소명이 되어야 한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빈 들이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예비되고 준비하여 부르신 당신의 사람을 통해 새 일을 시작하신다. 광야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예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 그가 지금 빈 들에서, 땅 끝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명 앞으로 나아가는 자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 시작되는 전령이 되게 하신다.

그렇게 시작한 예수 믿은 세월이 여기까지 아닌가. 요한처럼 세상의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지금 내가 무릎 꿇어 기도하는 바로 그 자리가 빈 들, 광야이기를 바라는 겨자씨 같은 믿음을 붙들고 비록 내가 선 곳이 빈 들이요, 이 시대라는 광야일지라도 요한처럼 묵묵히 견디고 살아낸다면 그곳이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거룩한 성소가 되리라 믿는다. 이것이 오늘도 빈 들에 서서 주님 바라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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