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4-31)

20220418b(묵상)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Jn. 20.24-31

 

    본문 분석

 

    도마가 이르되 내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여드레를 지나서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는 자가 되라!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한 번 해 보자.

세상에는 반드시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달나라를 가보지 않았어도 우리는 달나라를 안다. 의사가 암()에 걸려 보아야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암에 한 번 걸려 본 다음에야 유명한 암 전문의가 될 수 있다면 아마 아무도 암 전문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이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좀 어려운 사람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가치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불변하는 결과만을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훗날 아주 무익한 것으로 바뀌는 것은 어려운 확률이 아니다. 반대로 땅을 치며 후회하고 실망했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없이 귀중한 추억과 성장(성공, )의 도구가 되는 것 또한 불가능한 확률이 아니다. 본문의 도마에게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5b)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6b)

 

주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도마의 고백이다: “내가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5) 도마는 실증주의(positivism), 혹은 경험론(empiricism)의 대부 같아 보인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뒤통수를 보지 않았으면서도 자기 것이라고 달고 다녔으며, 머리 속에 들어 있는 ’(cerebrum, )를 보거나 만져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것을 빼 버리라고 -천국에서 도마를 만날텐데 내가 좀 심하게 표현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말하지 않았는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도마는 이처럼 주님을 만나 보지 않았을 때에는 의심 많은 제자였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다음에는 복된 신앙을 고백한다. 이러한 양면성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다. 이 두 양자를 필요에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사람들이 요즘 참으로 많은 것 같다. 홀로 있을 때는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사람들의 눈이 없으면, 먼 타 지역에 가면,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모르는 곳에 가면, 그야말로 완전히 밑바닥이 다 보이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러나가 주님 앞에 서면, 교회에 나오면,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면 신앙 좋은 척한다. 요즘은 이처럼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통하는 시대다. 6일은 죄일이요, 주일은 죽일로 살아간다.

 

    A “도마가 가이르 내가 보며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5)

        → 예수께서 오사 ”(26)

        → 도마에게 이르시되 손을 보고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

    A'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

 

도마의 서른 방황(부정적 신앙, 갈등, 영적 어린아이)8일로 마감한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26a) 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에게 있어서 8일 동안은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이 때 그의 영적 상태는 한마디로 불신이요, 부정적인 자아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은혜 받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방황은 끝난다. 이것은 은혜가 아닌가. 그것도 8일로 끝났으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 주님이 만나 주셔야만 불신앙의 굴레를 벗어나게 된다.

나 또한 그렇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나의 옛 생활의 시간들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끝나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주께서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본질상 진노하심 아래 있는(2.1-3) 육에 속한 시간들을 정지시켜 주셨으니 망정이지, 만약 아직도 주님이 도마를 찾아오셨던 것처럼 나를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나도 도마의 8일처럼 죄 아래에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영적 황무지는 8일만으로 족하다. 부활의 주님만이 이 모든 것을 멋지게 끝내기하신다.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9)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31)

 

이 세상에는 [천국박물관]이 없다. 해서 더 이상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볼 수 없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주의 말씀이다. 이를 주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성경 말씀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계획하셨다.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지키며 행하는 자에게 주님은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래서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도마 이후를 살아가는 자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오직 이것을 기록함이라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을 밝힌다(31a). 또한 말씀은 믿음뿐만 아니라 믿어서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한다(32b). 이 일을 예수님이 하셨고, 이를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거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5.39-40)

 

동일한 진리가 앞서 5장에서도 이미 선포되었었다. 도마 이후에도 비록 주님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변함없이 그를 믿어 생명을 얻기 위해 주님에게, 그리고 그 주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기록된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도마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다.

믿어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신앙의 영역이다. 영적인 주도권이 주님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깨달아 믿어 버리고, 받아들임으로써 신앙이 시작된다면 기독교와 세속 종교가 다를 바 없다. 신앙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마 역시 그랬다. 그는 다른 제자들처럼 지난 3-4년여 동안 제자훈련을 받았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보고, 경험하며 주님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누었다. 그런데 주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모였는데 자신은 25b절처럼 해 봐야만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도마가 바뀐 것은 오로지 주님이 그에게 임하셨기 때문이다. ‘도마로 바뀐 계기는 이렇듯 주님이 그를 찾아오심이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다. 요한은 20장에서 부활 신앙을 받아들이고 이를 믿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분모가 부활의 주님이 임하셨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도마 이후를 살아가는 부활 예수를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30) ‘오직 이것을 기록함’(요한복음)은 동일한 부활 신앙을 이들 역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31) 하기 위함이라고 증언한다.

말씀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는 것을 믿는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해, 말씀과 더불어 일하신다.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이 말씀과 함께 하고 있음을 본다. 도마가 말씀이신 주님을 통해 이를 보았듯이 나 역시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1.50b) 하신 주님의 약속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어졌을 뿐 아니라 내 안에 생명이 되어 자라고 있고, 또한 성령님 안에서 이를 더 풍성히 하며 살고 있음이 행복하다.

내 안에 있는 천국은 이렇듯 언제나 생명의 호흡이 가득하다. 이는 주께서 나에게도 오셨기 때문이며, 성령님을 통해 부활의 증인으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9b) 하신 주님의 말씀이 희미하게나마 내 마음에 그려지니 감사하다. 해서, 이제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 모든 일을 완성하실 21장 앞으로 부르시는 것을 가슴 뜀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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