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23)

20220418a(묵상)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Jn. 20.19-23

  

    본문 관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부활 후 첫 만남

 

이른 아침에서 저녁으로 시간이 바뀌었다.

제자들은 마리아를 통해서 부활의 주님에 대한 기쁜 소식을 이미 들었다(18). 그리고 밤이 되었다. 부활 후 첫날이 이처럼 저물어간다. 아마 가룟 유다와 도마를 뺀(24) 열 명의 제자들이 마리아가 전해 준 복된 소식을 듣고 한 곳에 모였던 것 같다. 한편 마리아는 울고’(11),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19a)라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문제는 제자들은 이미 마리아를 통해서 17절의 주의 말씀을 전해 들었다는데 있다. 베드로와 요한은 거기다가 빈 무덤’(3-10)을 또한 보았던 자들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며, 무엇을 두려워할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19b,21b)

 

이처럼 19a절의 모습으로 무너져있는 제자들을 주님은 찾아오신다. 하지만 제자들의 형편은 말이 아니다. 고난 때에는 불신앙이더니 부활 이후에는 두려워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주님의 인사는 다름 아닌 평강’(Shalom)이었다. 참으로 만감(萬感)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제자들은 이러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일단 없는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제자들 자신이 더 잘 안다. 지난 공생애 기간 주님은 제자들과 모든 삶을 함께 하며 자신의 전부를 주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모두 다 한결같이 그의 곁을 떠나 버렸다. 주님을 배반(배신)한 것이다. 주님을 믿지 못했고, 또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때쯤에서는 제자들의 잘못을 추궁하고, 이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요구했어도 제자들로서는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들에게 평강으로 찾아오셨다.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주님은 아주 무섭고, 화가 난 모습으로 제자들 앞에 서신 것이 아니다. 속으로는 대단히 화가 났지만, 입만은 그러한 감정을 어렵사리 참고서 오신 것 역시 아니다. 주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13.1).

주님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파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정죄가 아니라 용서의 모습으로, 그렇게 찾아오셨다. 인자하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이처럼 큰사람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상대방이 생각할 때 이것은 분명 크게 꾸중들을 것이라고 각오하고 있는 일마저도 너그럽게 그를 믿어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준다. 그것이 예수님의 삶이셨다. 이것이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한 이유다(‘두려워하여기뻐하더라’ / 19 20).

또한 인내(오래 참음)와 소망으로 찾아오셨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전13.4a). 사랑은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그래서 황무지에서도 희망을 캔다. 부모는 비록 입으로 들어가는 밥 알 보다 무릎으로 떨어지는 것이 더 많아도 그 자녀를 보며 행복해 하고, 그래서 그것만큼 오래 참는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밥 먹는 것쯤이야 능숙하게 잘 먹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알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주님은 나를 보시면서 이처럼 오래 참아 주시고 계신다.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이 사실을 알아간다. 제자들이 그렇고 내가 또한 그렇다.

 

 

성령을 받으라!”(22)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23)

 

더 나아가, 사명으로 찾아오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b)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22) 말씀하신다. 마침내 제자들에게 사명이 주어진다. 주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는데 죄사함의 사역을 감당케 하시는 것으로, 이를 위해 성령님을 받으라 하신다. 여기에는 대단히 깊은 미래에로의 그림이 율동하고 있다(21b 22 23). 과연 이처럼 유약하고 초라하디 초라한 볼품없는 제자들이 위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친히 보내노라말씀하시지 않는가. 이를 위해 성령을 받으라하시고, 그래서 보낸 목적인 어두움의 세상 권세를 파하는 죄사함의 사역을 감당하라 하신다.

마침내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제자로 이어지는 보냄, 그러니까 파송의 역사가 주님으로부터 제자들에게로 이어진다. 성부는 성자를 이 땅에 육신을 입은 하나님으로 보내사 구원의 역사를 십자가에서 이루셨다. 그리고 약속대로 성자는 가시고(7.33-34, 8.21, 14.2-3,12,28, 17.11,13), 역시 약속대로 성령님을 보내실 것이다. 주님은 바로 그 약속의 성령님을 받으라 하신다. 주께서 받으라 하신 요한이 전하는 성령님은 이런 분이시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4.16)

    “그는 진리의 영이라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7)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b)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16.8)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오직 듣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요약하면 주님이 하신 일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증으로서의 성령님, 바로 그분을 받으라 말씀하신다. 이러한 성령님의 깊은 간섭하심을 따라 죄사함의 권능을 성령님 안에서 감당하게 하시겠다는, 이것이 주님이 부활 이후에 성령 안에서 펼쳐가실 그림(plan)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강을 위해 제자들을 성령 안에서 파송하시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평강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은 것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2.38) 바로 이 일을 이루실 성령을 받으라!” 하시며, 또한 이 약속을 기다리라 명하신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1.4-5)

 

 

부스러기 묵상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20b)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뀐다(19 20).

사실 이 두려움은 꽤 오래 동안 앓고 있는 중병이다(11.8, 14.1,27, 15.18-16.33, 19.38, 20.19). 하지만 이것 역시 오직 주님만이 해결하신다. 마침내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이 주님의 부활 이후를 맡은 보냄 받은 제자들에게 다시금 약속으로 주어진다(22-23 1.4-5,8). 주님이 이미 부활하셨음에도, 그리하여 나를 찾아오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성령님으로 임하심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여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고 있지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님은 성령 안에서 이걸 판단할 수 있는 분명한 몇 가지를 제시하시는 것 같다. 평강(19b,21a), 기쁨(20), 파송(21b), 사역(23)이 그것이다.

평강과 기쁨은 그냥 앉아서 소일하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제자) 복음을 증거하는(사역) 거룩한 부르심에 순종함으로써 주어진다. 주님은 이를 성령 안에서 보증하신다. 일하는 자의 기쁨이 여기에 있다. 주님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날마나 나를 감싼다. 나를 보내사 쓰시겠다니 감사할 뿐 아닌가. 이 약하고 부족한 자를 성령 안에서 도구로 쓰시사 어두움의 죄의 권세가 물러가고 용서와 치유의 은혜가 성취된다 하시니 더 힘써 맡은 사역을 영광스럽게 감당해야겠다. 쓰시고, 또 일 할 수 있으니 오직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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