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하지만 좋은 편을!(눅 10.38-42)

202100202b(묵상)

  

 

 

둘 다, 하지만 좋은 편을!

Luke. 10.38-42

  

    본문 관찰

 

    [구조1]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9.51)

    70인을 세우사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1)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5)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더든(10)

    70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17)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영접(38)

 

    [구조2]

    마르다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마리아는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마르다 vs 마리아

 

10장의 전후 문맥이 중요한 관찰이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노중사역(9.51, 19.28 참조)이 시작되면서 주님은 추수할 일꾼’(2) 70인을 세우사 저들을 파송하신다. 이때 주신 말씀과 추수 이후의 이야기가 10장 전반부다(1-24). 그리고 이번에는 제자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한 마을에 들어가시는 일을 친히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38). 주님은 앞서 파송의 말씀(1-16)에서 영접하는 동네와, 반대로 영접지 아니하는 동네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8-16). 그렇다면 예수님이 친히 한 촌(베다니, 11.1 참조)에 들어가셨는데 이때 이 동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또한 그들의 반응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당신이 말씀하신 전도수칙(4-9)을 적용하실까. 이점에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중요한 시각이다.

 

 

좋은 편을 택하라!

 

첫째는,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다(38b). 예수님은 앞서 이 경우에 식탁 교제(8), 치유 사역(9a), 선포 사역(9b)을 명하셨다. 그렇다면 이번에 예수님 또한 친히 전도수칙’(4-9)에 기초해 이 사역들을 이루실 것이 분명하다. 그럼 무엇인가? 이 여자들이 먹을 것을 주면 잡수실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은 마르다가 많은 준비하는 일’(40a)을 막지 않으실 것이고, 이 일 역시 전도자들을 위해 중요한 하나의 사역이며, 이 식탁의 나눔을 늘 그러셨듯이 이번에도 즐기실 것이다.

둘째는, 70인에게 명하셨듯이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이번 베다니 방문에서도 역시 하실 것이다. 보라, 지금 이미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39)에서 이점이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마르야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는 일에, 마르다는 전도자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인 일용할 양식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주님은 지금 베다니라는 동네에 오신 것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6.31) 하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6.32)만을 위해 이 동네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들어오신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a)는 당신의 말씀을 친히 실행하고 계시다.

셋째로, 그렇다면 마리아가 지금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39)와 마르다가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40a), 이 둘의 상태는 어느 것을 부정하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아님에 틀림이 없다.

   

 

마르다와 마리아

 

    마르다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10.40)

    나사라의 죽음 앞에 예수님이 살릴 수 있다고 확신(11.21-27)

    동생 나사로의 부활을 축하하는 잔치 일을 봄(12.1-2)

 

    마리아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음(10.39)

    오빠 나사로가 예수님이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11.32)

    향유 옥합을 붓고 그리스도의 장사를 예비함(12.3,7)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 이후에 이들의 동생인 나사로가 죽고, 그 다음에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기적이 있은 후에, 예수님이 다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신 이야기다(12.1-11). 여기서도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가 벌어지는데 놀랍게도 마르다는 이번에도 잔치 일을 보고 있다(12.2a). 만일 오늘 본문에서의 경험, 즉 단순히 문자적으로 일(봉사, Diakonia)이 무가치하고 열등한 것이고, 반대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게 가치있는 일이었다면 이번에도 마리아는 자연스럽게 주님의 발치에 앉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읗 씻”(12.3)고 있다. 보라, 잔치 일에 분부한 마르다와 향유로 예수의 발을 씻고 있는 마리아는 둘 다 이번에는 말씀을 듣는 자리에 공히 나아가 앉아있지 않다.

다시 정리하지만, 오늘 본문은 두 자매의 언행을 보신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뭔가 말씀하신 게 아니다. 마르다가 일방적으로 마리아의 선택을 무시하면서 제시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 주어진 말씀이다. 주님은 마르다의 분주한 일까지 금하지 않으셨다. “너도 그 분주한 일을 좀 내려놓고, 마리아처럼 내 말을 듣는 자리에 나아올 수는 없겠느냐?”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부스러기 묵상

 

많은 경우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는 오해되곤 한다.

준비’(Diakonia)하는 일은 하급(저급, 무가치)하고, 말씀을 듣는 일은 고급(상급, 가치)하다는 식의 이원론적인 해석이 이것이다. 오늘 묵상하는 사람이자 예배자로 드려지기 위해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39)기 위해 나름 여러 가지 준비하는 일에 분주했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야 하고, 세수하고 화장하고, 또 끝나면 잠시 기도하고서 다시 귀가하여 가족들의 아침을 간단하게 준비하고, 자녀들 학교 갈 준비에, 자기 자신 출근 준비에, 남편 와이셔츠와 넥타이 준비에, 집 안 청소 대충하고, 또 오늘은 제자훈련이 있는 날이니까 다시 꽃단장하고 분주하게 교회로 향한 발걸음을 해야 한다. 이런 준비하는 일 없이 말씀을 듣는 일에만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이 둘 가운데 주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에게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42b)라고 말씀하신다. 어쩌면 주님은 바로 앞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한 율법사의 모습(25-29)을 마르다에게서 본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오늘 내가 하고 있는 것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강조하기 이전에 주님이 그런 나의 언행심사를 어찌 보고 계시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묵상과 기도의 삶이 필요하다. 마르다와 마리아, 난 지금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 있는가? 둘은 비교해서 인정받아야 할 것이 아니고, 내가 너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주님 역시 어느 것 하나를 버리거나 포기할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아 역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을 택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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