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천국과 어린아이(마 18.1-14, 19.13-15)

20220904(묵상) 초안 - 20021101

  

 

 

천국과 어린아이

Matt. 18.1-14, 19.13-15

  

 

    본문 관찰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삼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어린아이 같아라!

 

제자들은 질문하고 주님은 대답하신다.

그런데 질문이라는 게 좀 그렇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김칫국부터 마시겠다는 것인지, 정말 아득하기만 하다. 두 번이나 수난예고(16.21, 17.22-23)가 주어졌음에도 말이다. 또한 주님을 따르는 자의 결단(10.32-42, 11.28-30, 16.24-28)에 대해서도 누누이 가르치셨는데 아직껏 이렇다. 이 세상에서도 모든 게 여전히 아직인데 사람들은 벌써 이미천국까지 가 버렸다. 그것도 누가 더 크냐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관심이 온통 딴 곳에 가 있다.

제자들의 누가 크냐?’의 질문에 주님은 어린아이로 대답한다(1-2).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비교되는 어린아이는 성품(수준, 됨됨이)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3),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4) 것이 지금 어른인 제자들과 비교되고 있다.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것과 자기를 낮추는 것 사이의 긴장이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이 땅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로 사는 자다(4). 제자의 관심은 크냐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으냐에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다움

너를 실족하게 하고 나를 범죄하게 하면?

 

천진난만(天眞爛漫)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철이 없는 것인지 제자들의 꼴이 말이 아니다(1). 이들을 두고 주님은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그에게서 배우라 말씀하신다(2). 핵심은 변화되어, 즉 생각이나 마음을 바꾸어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3-4). 그러니까 어린아이다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인데(성품과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일까.

그것은 먼저 이런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는, 그러니까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이를 주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5, 10.42 참조). 이런 수용성은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렇듯 나를 끊임없이 어린아이 같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먼저 주님이 인정하신 이런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주의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 하신 주의 말씀을 이룰 수 없다.

지금 내게 요구되는 것은 누가 크냐를 생각하며 자기를 높이는 어른의 마음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이것은 천국의 출입을 좌우한다(3b). 이것과 함께 중요한 것은 이런 어린아이를 죄짓게 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6-7). 어린아이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죄짓게 하는 것은 천국의 어린아이다움을 무너뜨리는 천국 파괴 행위다.

한편 이러한 행위는 너(어린아이)를 죄짓게 하는 것과 동시에 나를 범죄하게 하는 일이다(8-10). 마음에서 결정한 것이 손과 발과 눈을 통해 죄의 열매를 거둔다는 말씀이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면 내 손(, )이 나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결국 내 몸이 천국을 이루고 사는 어린아이다움을 죄의 사슬 아래로 몰고 가는 주범(主犯)이다는 얘긴데, 이는 너와 나 모두에게 죄가 되는 것이며, 그랬을 경우에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어린아이다움을 파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단 한 마리의 양일지라도 나의 죄 때문에 그가 어린아이다움을 잃어버렸다면 반드시 다시 그를 찾으신다(12-14).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어린아이다움을 통해서 천국을 이루며 사는 자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니 나의 어린아이답지 않은 언행이 너의 어린아이다움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불충(不忠)한 죄행(罪行)인가 말이다.

내가 천국에서 누가 크냐?”에 빠져있을 때 그것 때문에 너로 하여금 천국을 이루며 사는 어린아이다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죄를 낳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설령 그것 때문에 잃어버린 양이 있을지라도 다시 찾으시지만 그 양으로 하여금 길을 잃어버리도록 하는 원인을 제공한 자는 결단코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6-10).

 

 

부스러기 묵상

 

몇 가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유아부와 유치부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다. 어느 날 유아부에 다니는 아이가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식사기도를 하였다. 그러다가 그냥 밥을 먹는 아빠를 보고서 심각하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아빠는 왜 밥 먹으면서 기도하지 않지?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데 아빠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지 않나 봐!” 이 말 한 마디에 뭐라 대답할 수 없던 아빠가 그 다음 주일에 교회에 등록하고 지금은 온 식구가 다 예수 믿는 가정이 되었다.

또 있다. 주일이면 야외에 놀러가기 좋아하는 가정이었나 보다. 아이는 교회 가는 줄 알고 차에 탔는데 그게 아니다 싶으면 이렇게 계속해서 노래를 부른단다: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한 두 번도 아니고 그럴 때마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이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는 아이를 통해 하나님은 부모의 마음에 주일을 성수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하셨다.

하나만 더 해 보자. 유치부에 다니는 자녀 가운데 전도사님의 설교를 유심히 듣고 그걸 집에 가서 부모님께 그대로 전달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 중에 한 아이는 용서하라!’는 제목의 말씀을 듣고 선생님께 그러더라는 것이다: “나 오늘 집에 가면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용서해 달라고 해야겠어요!”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문 밖에 기다리는 엄마에게 가서 뭔가 말하는 아이의 태도와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의 환한 모습에서 그 교사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동을 맛보았다고 말한다.

전도를 해 보면 결신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주일학교에 다녔던 것이 이제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는 말을 기쁨으로 고백하곤 한다: “사랑하며 살래요 예수님처럼! 사랑의 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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