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자가 제자다(마 16.13-28).

20220814(양무리교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자가 제자다.

Matt. 16.13-28

 

 

    본문 관찰

 

    베드로의 신앙고백(13-20)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첫 번째 수난예고(21-23)

       이 때로부터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항변하여 이르되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제자도(24-28): 제자입니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신앙고백과 수난예고, 그리고 제자도

 

마침내 주님은 첫 번째 수난예고를 통해서 당신을 밝히 드러내기 시작하신다(21).

무엇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이제 서서히 공생애의 절정, 그러니까 메시야다움을 완수하기 위해 십자가를 향한 발걸음이 보다 분명하게 진행되는 분위기로 넘어가는 흐름이다. 그러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4.17)는 선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예수께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좀 더 밝히, 더 분명하게 드러내시는 것이라고 하겠다.

첫 번째 수난예고를 전후로 한 지금 마태복음의 시점은 이렇다. 14장에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표적을 맛 본 유대의 반응은 유감스럽게도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반대로 예수님을 단지 배고픔을 해결해 줄 임금으로 삼으려는, 그것도 억지로 붙들어서 빵통령으로 세우고자 하였다(6.14b-15). 다음으로, 분봉왕 헤롯은 또 헤롯대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이 예수는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라고 하며 엉뚱한 시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고 있다(14.1-2). 일이 이처럼 되어가자 15장에서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전통의 프레임에 예수님을 압박하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악한 누룩이 하나님의 말씀에까지 퍼질 기세다.

 

정리하면 마태복음 14-15장까지 천국 복음을 전하여 왔으나, 먼저 유대 온 백성들은 배고픔을 해결할 빵통령이 되어달라고 한다(그리스도 이용해먹기). 둘째로, 로마 황제로부터 권력을 부여 받은 분봉왕 헤롯은 자신이 죽인 정치적 정적인 세례 요한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예수님을 주목한다(그리스도 죽이기). 헤롯의 관심은 그렇다면 예수님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가차없이 제거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셋째로, 예루살렘 중앙의 종교지도자들까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그리스도 무너뜨리기).

 

 

베드로의 신앙고백(13-20)

 

    “사람들은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b)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이처럼 안팎으로 무엇인가 긴장감이 느껴지는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는 것(14)과 제자들이 아는 주님(16)이 좀 다르다. 같은 주님을 다르게 보는 것, 이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대단히 중요한 차이다. 사람들은 아직 선지자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들보다는 조금 더 탁월한 사람으로 밖에 보질 않고 있다는 뜻이다. 땅을 기준으로 하늘을 보려고 하니까 그 하늘이 바르게 보일 리가 없다. 자기 인식과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주님을 이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한다.

아직도 핵심을 놓치고 있는 사람들의 신() 인식(Knowing about lord)에 비해, 놀랍게도 제자들, 특별히 베드로의 주님을 아는 지식(Knowing Lord)은 정확하게 진리를 관통하고 있다. 인자(人子)이신 예수님은 주님, 그리스도(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을 볼 때 그렇다(16). 놀랍게도 베드로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17). 이처럼 빠르게 세상과 제자들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지식에서 점차 그 간격이 벌어지는 중이다.

주님의 부르심(4.18-20)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주의 공생애가 점차 절정에 다다른 오늘, 이 신앙고백을 하기까지, 주님과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보낸 제자훈련을 통해서 베드로는 눈이 열리게 되었고, 그러자 자신의 시각(수준)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을 볼 수 있는 주의 사람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13-14)처럼 이 지식이 혈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지식이라는 점이다(17). 이는 베드로의 스스로 학습에 따른 자각이 아니라는 주님의 선언이다. 모두가 다 메시야의 옴과 봄이라는 동일한 시공(時空)을 살았지만 그러나 베드로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다.

주의 축복은 계속된다(18-19). 주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바로 내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시겠다 하신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18b)는 승리하는 교회를 말이다. 제자들에게는 마침내 주님의 교회를 맡아 섬길 청지기의 자리까지 높이실 것이라 하신다. 이처럼 신앙고백은 중요한 본질이다.

 

 

첫 번째 수난예고(21-23)

제자도(24-28): 제자입니까?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21)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

 

첫 번째 수난예고(21-23)

바른 신앙고백을 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자신이 오신 이유와 목적을 드러내신다(20): 이 때로부터 비로소 나타내시니(21, 17.22-23, 20.17-19, 26.1-5) 무엇을 말인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말이다. 세상 그 어디에 고난을 받고 죽는 신이 있는가. 결코 없다. 그러나 메시야 그리스도는 자신을 핍박하고 저주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신다.

한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진리를 알게 한 이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식을 그만 어찌된 것인지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쪽으로 끌고 가 버린다(23b).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한 것이다. 지금 이 베드로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빵통령을 삼으려는 자들과 다를바 없지 않은 거 아닌가. 이것은 불신앙이다(23a). 일이 이렇게 되자 베드로는 주님의 책망을 듣는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나님이 하신 것을 따라 마침내 주는 메시야이시다.’를 고백하는 베드로(‘’)라 할지라도 이런 하나님의 일가운데서, 그것도 다름 아닌 사람의 일이라는 누룩의 지배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고도 놀랍다.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때문에 사람의 일을 생각한 인간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고백한 그의 신앙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제자도(24-28): 제자입니까?

마침내 고난의 메시야가 가는 길이 하나님의 일이고, 이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고 깨닫고 알고 믿는 자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주님을 좇을 수 있다(24). 이를 위해 사람의 일을 버리라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 말씀한다. 이 정도의 각오 없이는 결코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명을 걸어야 할 주님이 가르치신 [제자도]. 주님의 목표는 거기까지다. 베드로(‘’)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고백되는 제자도는 불가능하다(22).

이제 좀 정리가 되지요. 빵통령이나 헤롯이나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이 가고자 하는 사람의 일에는 소망이 없다. 주님은 그 길로 가지 않으신다. 반대로 오직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사 하나님의 일을 위해 죽음과 고난의 길을 가시겠다 하신다. 나 예수가 가는 이 길을 너도 가겠느냐? 그렇다면 너는 나의 제자다라고 하신다. 이것이 제자도이고, 주께서 그 길을 가는 자들에게 세우신 교회이다. 이 교회를 위해 십자가로 가신다. 그 길 같이 따라가는 자가 누구인가.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부스러기 묵상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물으신다.

그러면 나의 답()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17b)이시다. 이처럼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을 언행하며 제자로 살면 인자가 (다시)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27b)고 하신다.

주께서 인정하시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질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나를 부인하고,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생명을 걸고서 주를 좇는 것을 통해 세워진다. 제자는 이 거룩한 소명과 사명에 목숨을 거는 자이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신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자 역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24b) 그 주님을, 그러니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21b)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다.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유대 백성들처럼 주를 따르는 자는 제자가 아니다. 헤롯처럼 정치적이고 인간의 욕망과 야망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주를 바라보는 자 역시 제자가 아니다. 더욱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들의 종교적 특권을 지키기 위해 메시야의 가는 길을 흔드는 자들 또한 제자는 아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베드로처럼 신앙고백이 분명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누구인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이다. 한 번 더 묻는다: 당신은 제자인가? 아직도 자신의 성공과 야망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하는 사람인가? 내 고백과 그것에 따른 삶에 그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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