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바리새인 진단서(마 16.1-12)

20220810(묵상)

  

 

 

바리새인 진단서

Matt. 16.1-12

  

 

    본문 관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예수님 -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제자들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딴지걸기에 동참한다.

바리새인들이야 돌림노래처럼 등장하는 단골메뉴니까 뭐 새롭지는 않다. 이번에는 저들이 또 뭘 시비하겠다는 것인지,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을 것인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주님은 저들의 계산되어진 사악한 목적을 아셨기에 간단히 대답하시고선 저희를 남겨두고 떠나가셨다(4b). 그리고 제자들이 건너편에 이르렀을 때 저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라고 하셨다(6,11). 이게 뭘 의미할까 좀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그 나물에 그 반찬

유유상종(類類相從)

 

아직도 시험(temptation)인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정치적으로 이해 관계가 서로 달랐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적대 관계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 22.30-23.10). 바울을 고소해 놓고 서로 언쟁을 하면서 다투다가 바리새인 편에서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뇨”(23.9)라고 말하면서 발을 빼버린다. 이들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다가도 저들은 예수님을 골탕 먹이고, 끝내는 메시야의 길을 훼방하기 위해서는 놀랍게도 하나가 된다. 그리고 시험한다. 주님을 알고, 믿고, 배우고, 사랑하기 위해서 구도자의 심정으로가 아니다. 이를 보면 주님께 뭔가를 요구한다고 해서 다 옳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사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주님께 접근해 올 수 있다.

나 또한 주님을 이용해 먹기 위해 교묘하게 위장하고선 그럴 듯 한 명분으로 포장하여 주님께 청한 경험이 있지는 않았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 안에도 바리새적인 죄의 본능이 언제나 꿈틀거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미 하늘로서 오신 메시야로서 사역을 하고 계심에도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할 표적을 보이라 말한다.

자고로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당신이 하나님인 증거를 대라고 하는 경우는 세상 천지에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주님을 믿기 위함에서 그랬다면 이미 행하신 무수한 메시야 사역에서 결론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저들은 지금 함정을 파고 있고, 뭔가 주님을 끌어내리기 위한 물증을 찾고 있다. 이게 죄 아래 있는 인간이다. 그것도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자들이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기도 하지만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

주님은 저들의 마음에서 입으로 나오는 생각을 아셨기에(15.18-20) 그들을 두고 떠나가시면서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4, 12.38-45 참조) 하시며 천기(天氣)만 분별하지 말고 시대의 표적 또한 분별하는 자가 될 것을 촉구하신다(2-3). 이제 요나의 표적을 보여 줄 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저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미 보여준 표적을 모르니 임박한 표적을 알 리가 만무하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이다.

한편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누룩을 주의하라!”(6,11b) 말씀하신다. 저들은 악성 바이러스와 같이 전체를 다 쓸모없이 만들어 버리는 몹쓸 가라지 같은 악한 누룩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도 지키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그럴듯한 모습으로 외식하는 율법주의자들로서 말씀을 왜곡시켰다. 또한 사두개인들은 현실 정치에 깊이 관계가 되어 있는 정치적 실리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잘못된 사상은 누룩처럼 사람들의 심령을 병들게 하기 때문에 주님은 저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셨다. 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종교적 기득권이 새로이 시작된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 때문에 위태롭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 전전긍긍(戰戰兢兢)하던 차에 기회만 있으면 예수님 격하 운동에 목숨을 건 패거리들이다. 하지만 누룩처럼 퍼져나가는 천국을 저들 때문에 병들게 할 순 없다.

 

 

부스러기 묵상

 

    “너희가 천기(天氣)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3b)

 

바리새인 진단서에는 이런 판정이 기록되어 있다:

저들의 교훈을 삼가라!”(12) 이처럼 저들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며, 때문에 주님이 그러셨듯이 저들 곁을 떠나 가급적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4b). 하지만 제자들은 도대체 엉뚱하기만 하다. 떡타령이나 하고 있으니(7) “믿음이 적은 자들아!”(8a)라는 질책을 듣는 게 아닌가. 주께서 뭘 말씀하시는지 저들 역시 아직도 깨닫지 못하”(9a)고 있다. 조금은 답답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제자들처럼 언행하고 있을 때 주님의 마음도 그러셨을 것 같다. 이제는 좀 정신을 차릴 때도 되었고, 좀 더 성숙하게 일 처리를 할 때도 되었는데 항상 초보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주님 또한 얼마나 답답하실까. 전정으로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빵이 아니다. 빵은 걱정하지 않아도 주께서 다 해결해 주셨음을 기억하라 하신다(9-10). 언제쯤에나 나 역시 손에 든 빵을 내려놓고 바리새인들과 견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까.

이게 다 주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그들대로, 제자들은 또 제자들대로 각각 엉뚱한 언행에서는 비슷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들은 이후는 전혀 달랐다. 전자는 여전히 변화의 기미 없이 눈뜬 소경으로 자기 잘난 맛에 취해 살아간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제서야 그들은 ()들의 가르침을 경계하라고 하시는 줄을 깨달았다”(12, 표준새번역)는 점이 인상적이다.

주님은 말씀으로 늘 영적 무지를 깨우쳐 주시니 감사하다. 그것만큼 나로 하여금 그 다음 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이제 서서히 공생애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메시야 행진, 거기에 가라지와 같은 바리새인의 누룩이 덧뿌려져서는 곤란하다. 잘못된 가르침은 전염성이 더욱 강한 법이다. 이를 차단하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를 만날 수 있다. 나에게 맡겨진 사명의 길에도 이런 악하고 거짓된 누룩이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언제나 주님의 말씀에 민감해야겠다. 묵상은 언제나 이것을 알게 해주고, 조금이나마 눈을 뜨게 해주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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