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진리의 반대편, 이제는 떠날 때입니다(마 12.1-21).

20220410(양무리교회)

  

 

 

진리의 반대편, 이제는 떠날 때입니다.

Matt. 12.1-21

  

    본문 관찰

 

    안식일 논쟁

       바리새인(시비1) -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님(대답)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사람들(고발) -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님(대답) -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바리새인들(의논) -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예수님(경고) -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또 다시 논쟁으로

 

아담의 범죄 이후로 세상은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共存)하며 충돌한다.

악은 언제나 선을 싫어하며, 대항하며, 거역하며, 시기하며, 증오하며, 할 수 만 있으면 선을 파괴하려고 한다. 이것이 악의 실체이다. 선한 안식일이 악한 바리새인들에 의해 일그러지는 게 한 예다(1-14). 바리새인들은 초청장을 받아 놓고도(11.28-30) 안식일을 수단으로 삼아 다시 논쟁과 시비를 계속한다. 이때 예수님은 다윗과 제사장과 구덩이에 빠진 양 한 마리의 예를 들어 저들을 이해시키시지만(4-5,11-12; 삼상21.1-9, 24.8), 그럴수록 저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도모한다(14). 이렇듯 안식 초대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천국 복음에 도전장으로 응답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의 도전

 

    *시비 -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2)

    *사람들(고발) -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10)

    *의논(반응) -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14)

 

제자들과 예수님은 소위 안식일 논쟁에 휘말리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다(1-8, 2.23-28). 그것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금기(禁忌)를 범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악을 도모하고 실행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업신여기고, 시기하는 일만큼은 역대급 사람들이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예수를 죽이려는 의논을 한다. 악으로 선을 지워버리겠다는 식이다.

바리새인들의 언행을 보면, 논리와 설명으로 이해하도록 했다고 해서 죄인이 돌아서거나 멈춰 서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하다. 지금 바리새인들의 태도가 그렇다. 종종 불신자들, 혹은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설득(납득)하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보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죄는 본질상 죄가 무엇이며, 즉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영적 무지라 말한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거부했던 부류는 무지한 백성들이 아니었다. 소위 안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백성의 장로들이라는 종교 권력가들로서, 배우고 똑똑하고 힘있고 매우 이성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실상을 이렇게 말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1.9-11)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처럼 반응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진리가 무엇인지, 기독교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의 숯불을 그 머리에 쌓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의 대답

 

    *대답1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8)

    *대답2 -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12)

    *대답3 이사야 - “말씀하신 바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17-21)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매우 지혜롭게 처리하셨다.

첫째,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의논이 무엇인가를 아셨다: “예수께서 아시고”(15a) 이렇듯 예수님은 사람의 내면을 정확하게 아신다.

주님은 나를 아신다. 무엇을 구하고 있으며,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지도 다 아신다. 내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아신다. 주님은 내 마음에 아직 용서하지 못한 분노가 있음을 아시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거나 믿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아직은 남아있는 초보신앙을 아신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자신 있는 것 때문에 신앙이 없어 보이는 다른 사람을 조금 무시하고, 깔보고, 마음대로 판단하다가, 또한 심한 영적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까지를 다 아신다.

주께서 나를 다 아신다는 것을 정작 나는 알지 못하고 살았다. 사람들은 속일 수도 있다. 신앙이 아닌 윤리와 도덕과 같은 훈련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교묘하게 신앙이 깊은 것처럼 삶이라는 상품에 포장하여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살 수도 있다. 사람에게 보여진 나와 내가 아는 나의 불일치를 적절하게 즐기기라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나를 아신다(15a).

둘째, 주님은 그곳을 조용히 떠나셨다: “거기를 떠나가시니”(15b) 이처럼 악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 축복이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만드는 고향 갈대아 우르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떠나는,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잠시 낙을 누리는 것보다 믿음으로 고난받는 위해 떠나는, 그렇다면 우리에게 손해가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위배될 때 그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떠나는 훈련을 잘 감당해야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천국 시민의 생활이다.

셋째, 바리새인들의 안식일 논쟁이라는 시비를 예수님을 죽일까 의논하지만 주님은 이를 통해 구약의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신다(17-21):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17-21) 이뿐 아니다. 이미 처음부터 주님은 오직 말씀으로(3,5,11-12) 이처럼 악과 악인이 진리와 천국을 방해하고, 이를 이루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때, 그때마다 하늘의 진리의 말씀으로 악의 실상과 실체를 드러내셨다.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3, 삼상21.1-6)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5, 28.9-10)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다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옮으니라.”(11-12)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17-21)

 

이로써 선을 악으로 바꾸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계략은 좌절되었다. 잠시 악이 승리하는 것 같고, 세상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출세하는 것 같고, 주일도 잊어버리고 세상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에 그대로 있으면, 바로의 상에서 떨어지는 고기 부스러기를 먹는 것으로 만족해한다면, 세상을 사랑하여 믿음을 버리면,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 순위에서 잠시 뒤로 미루면 처음은 잘 되는 것 같다. 승리(성공, 출세, 형통)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잠깐일 뿐이다. 이것들이 슬피 울며 통곡하게 하고 나를 떠날 때가 곧 온다.

 

 

부스러기 묵상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말자.

바리새인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살다가, 시간만 있으면 남 비난하고, 남 잘되는 꼴 못 보고 열심히 끌어내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14)는 사탄의 앞잡이로 살았다.

이처럼 선과 악이 충돌할 때, 이때 주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바리새인들이 진리를 거부하고 주님의 사역을 훼방하면 예수께서 아시고”(15a), 주님은 이 악한 무리와 거기를 떠나”(9,15a)시고, 변함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신다. 지칠만도 하고, 멈추고 싶을만도 하고, 적대자들이 더 이상 씩씩거리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여줄 수도 있는 능력을 행할 법도 한데 말이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런 와중에서도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다(17-21, 42.1-4, 61.1). 참으로 놀랍다. 이런 열악한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주님처럼 살아야겠다. 그래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못하도록, 결국 하나님의 법이 강물처럼 흐르도록 선으로 악을 이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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