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Discipleship(눅 14.25-35)

20210216(묵상)

  

 

 

제자도(Discipleship)

Luke. 14.25-35

  

    본문 관찰

 

    ‘수많은 무리’(25a) 제자? No!

                                       그럼 누가 제자인가?

         [제자도]

          자기 부모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26b,27b,33b)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쓸데없어 내어버리느니라

  

 

제자의 조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13.24a)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25)

 

유대인은 닫히고 이방인은 열린다.

지금 분위기가 그렇다(15-20, 13.22-28,34-35 21-24, 13.29-30). 그럼에도 어찌된 게 유대인들 가운데 수많은 무리’(25a)가 계속해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주인과 함께 하는 이 수많은 무리는 누구인가. 이들이 다 제자인가. 아니다.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인데 그것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향해 누구든지 하지 아니하면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에서 그렇다.

이는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결단이 필요한가를, 혹은 뒤집어 생각하면 주님을 따르는 것이 도대체 뭐기에 이와 같은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처럼 주님을 따르는 것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밭과 소 보다(경제), 결혼보다(가정) 주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수 있는 자다. 주님과 함께 여행을 같이 한다는 것이 모든 것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25, 13.26). 모리아산을 오르던 아브라함과 같은 결단이 아니면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세 가지로 제시되는 제자의 법칙, 즉 제자도(Discipleship) 앞에 나를 벌거숭이로 세워본다.

   

 

제자, 그 부적격 사유들(26b,27b,33b).

제자의 맛을 내려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26)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27)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33)

 

좁은 문’(13.24a)에 대한 각론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밭과 소를 사고, 또 장가를 들었다’(18-20)는 이유 때문에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수준의 문제를 넘어 보다 더 근본적인 결단과 헌신을 요구하는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제자의 삶을 사는 자에 대한 자격 요건은 점차 점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것은 지금 주님을 따르는 두 그룹(제자 or 수많은 무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특별히 지금껏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은 이제 들은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자신들의 삶으로 결단해야 할 중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물론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주님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제자됨의 조건이 된다거나, 혹은 제자로서 결단해야 할 모든 것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는 주님의 엄중한 선언을 이들 모두는 주목해야만 한다(13.23-28 14.25-27,33). 더 중요한 것은 이처럼 살아야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는 이처럼 살아야 하는 자라는 점이다. 이것이 주님이 요구(기대)하시는 제자도(Discipleship).

제자는 다르게, 바르게, 제자스럽게 살아야 한다. 세상방정식을 따라 세속의 가치관이나 법칙에 길들여진 자는 주님의 제자로서 이미 그 맛을 잃은 것이다. 그럼 누가 제자 불충분조건이라는 부적격 사유에 해당하는 자인가. 즉 그렇다면 누가 제자인가. [1] 먼저 자기 가족은 물론 자기 목숨까지도 제자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26).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을 이루는 것과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이다는 뜻이 아니다. 제자란 가정(가족)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제자로 살아가는 일에 언제나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2]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자다(27). 결코 평안하고, 가정에 아무런 장애(문제)가 없도록 해 놓고서야 비로소 제자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선 곳에서 만난 삶의 모든 자기 십자가를 진 모습 그대로 주님을 따르는 자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는 이 둘 사이에 서서 제자로 사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설령 자기 자신일지라도 그것까지를 미워하며, 동시에 그것이 지워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이다.

망대를 세우는 자는 경제력을, 전쟁하려면 군사력을 따져야 하지만(28-32) 셋째로, [3] 제자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33). 이 세상의 유한한 것이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자들이 생각하듯이 무소유(無所有)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소유는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또 더 풍성히 하려는 자는 소유에 집착하거나, 소유가 짐이 되거나, 그래서 자기가 소유한 것 때문에 제자로서의 행동반경이 제한받지 않는 자로 살아야 한다.

   

 

부스러기 묵상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34-35)

 

제자는 자기(self)에 얽매이는 자여서는 이미 맛을 잃은 자다.

관심과 삶의 중심이 자신이 아닌 주님(Lord-centered)인 자가 제자다. 제자의 윤리는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권리)까지도 때로는 포기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유익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제자도(Discipleship)를 수단으로 삼지 않아야 하며, 오직 제자로 부르신 자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사는 차원까지다.

바울은 이러한 삶을 사는 자를 이렇게 말한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세상의 건축가나 전쟁을 하는 자도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를 살피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예수꾼으로서의 제자인 자들이랴.

나는 주님을 따르는 것 때문에 무엇을 미워하고 버렸으며, 지금도 그러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미워하고 버린 그 자리에 무엇을 채워가고 있는가.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7) 말씀하셨다.

주님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내 것 챙기고, 적절한 논리로 무장하고, 다른 사람이 먼저 버려주기를 기대하고, 아직도 미워하고, 버려야 할 것과 지고 가야 할 것도 구분하지 못하고, 이렇게 살면서 주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나는 아닌지 . 결국 맛을 잃어버린 소금처럼 쓸데없어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한편 제자다움을 위해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뭘까. 그리 썩 건강하지 못한 육체일까. 조금씩 알아가는 만큼 늘어가는 신앙(성숙)에 대한 부담일까. 죄인됨과 의인됨 사이를 넘나드는 연약한 믿음일까. 60년 가까이 묵은 죄인으로 내 한 몸 버티기에도 만만치 않는 무능함일까. 좀 복잡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자.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쪽보다는 나 같은 자를 제자로 써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자원함과 즐거움으로 열정 넘치는 제자로 서는 게 중요해서다. 내가 주님의 제자라면 내게서도 주님의 향기가 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님이라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자라야 할 소명자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목사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이미 내가 제자로 살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사역자라는 것이 내가 제자인 것을 자동적으로 성취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부르심 앞에 선 것은 많은 부분 이미 제자로 살겠다는 헌신에 기초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기에. 이왕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제대로 된 제자로 서고 싶다. 무엇이 내 안에 꿈틀거리는 제자 부적격 사유인가를 살피면서 말이다.

 

 

제목 날짜
종말의 법칙(눅 21.5-24) 2021.03.19
서기관 vs 과부: 경건이란 무엇인가(눅 20.41-21.4). 2021.03.18
부활을 네가 믿느냐?(눅 20.27-40) 2021.03.18
포도원 이야기I,II(눅 20.9-26) 2021.03.18
예루살렘 임팩트(눅 19.41-20.8) 2021.03.15
승리의 入예루살렘(눅 19.23-40) 2021.03.15
종들의 사역보고서(눅 19.11-27) 2021.03.15
삭개오 프로젝트(눅 19.1-10) 2021.03.14
한 소경의 메시지(눅 18.31-43) 2021.03.14
큰 부자 관리의 딜레마(눅 18.18-30) 2021.03.10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눅 18.9-17) 2021.03.10
기도(祈禱)의 법칙(눅 18.1-8) 2021.03.10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눅 17.20-37) 2021.03.10
열 모두 깨끗함 vs 한 사람 하나님께 영광(눅 17.11-19) 2021.02.16
독특한 제자훈련(눅 17.1-10) 2021.02.16
한 부자의 인생(人生)보고서(눅 16.19-31) 2021.02.16
독특한 재물훈련(눅 16.1-18) 2021.02.16
아버지여, 제가 아들이나이다!(눅15.11-32) 2021.02.16
잃은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눅 15.1-10) 2021.02.15
제자도.Discipleship(눅 14.25-35) 2021.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