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눅 12.13-34).

20210208(묵상)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Luke. 12.13-34

  

    본문 관찰

 

      ▪13-15 / 유산상속 전문변호사 유산을 나누게 하소서.

      ▪16-21 /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 재물

    A 22-30 / 세상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 - 의식주

    B 31-34 / 성도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습 하나님의 나라

 

 

재물과 하나님의 나라

 

어떤 사람이 이번에는 예수님을 유산상속 전문변호사로 일해 주시기를 요청한다(13).

늘 그렇듯, 이번에는 이를 어떻게 풀어가실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 요청 안에 든 것은 바로 탐심의 문제인 것을 아셨다(15). 그리고 소유의 넉넉함에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15)는 것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16-21), 그리고 이를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하심으로써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재물과 하나님의 나라, 그 사이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을 말씀하신다. ‘감히 이런 것을 예수님께!’라고 생각할만 한 질문을 받으셨으나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하시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된다.

 

사람은 떡으로도 산다.

그러나 떡만으로는 아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A(의식주)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그들을 불신자라고 부른다. 이 말은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A는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꼭 있어야 한다. 만약 A가 성도에게는 필요치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지구를 떠나야 한다. 누구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A가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30b)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8.3-4)

우리 주님도 A를 부정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4.4) 그렇다. 우리 주님마저도 목마르셨고(4.7), 주리셨다(3.2b). 본문에서 주님은 A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하신다.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24b)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28b)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1b)

 

 

1.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가?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먼저, A(의식주)를 얻기 위한 삶이 전부라고 하면 그것만큼 B에 관심이 있을 수 없다. 그 사람은 A를 풍성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만을 기대하거나, 그래서 거기에 비례해서 대접해 드리며 살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A에 종속(지배)되어 살아가게 된다. A의 유무에 따라서 자신의 모든 삶의 희비(喜悲)가 결정된다. 육에 속한 사람이 그렇다.

또한 B(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에 충실하다면 그것만큼 A에 대해서 자유할 수 있고, 반대로 A를 지배하며 살게 된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인생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AB를 더울 풍성하게 하는 것에 한해서만이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B를 방해하는 A라면 과감하게 그것을 희생하고 버릴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왜냐?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2. 많은 사람들은 A를 얻기 위해서 B를 구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A를 좀 더 크고 많게 하기 위해서 B를 붙들고 있을 뿐이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나(가정, 자녀, 사업) 잘되기 위해서 헌금하고, 구제하고, 예배하고, 주일성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신앙생활에 기쁨과 감사와 보람이 있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말하자면 마음이 콩 밭에 가 있어서다.

결국 얼마나 A가 많아졌느냐를 평가하는 도구로 전락한 A. 이것은 끝없는 욕심(욕망, 탐심)이다. 헛되고 헛된 소유욕이다. 그럴수록 자존심의 대결이다. 여기에는 배움의 많고 적음도, 소유의 많고 적음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A가 많아야 대접받고, 소위 기() 피고 살 수 있다는 세속적인 가치관이 그대로 우리에게도 들어와 있는 한 이 본능에 가까운 육적 욕망은 사르라 들지 않는다.

더 사악하고 은밀하기는, A 속에 교묘하게 들어와 있는 B. 그 역()도 마찬가지다. , B 속에 교묘하게 들어와 있는 A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일까. A가 만족스러워야 B를 조금씩 갚아나가는 체면(얌체, 거래)형 신자들이 많다.

   

 

3. A는 이미(already)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그러나 B는 아직(not yet) 완성되어 있지 않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바로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모두 거꾸로, 다시 말하면 결국 A 때문에 B를 구하는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현실에 노예가 되어서, 전자가 우선 충족되어야 비로소 B를 행해 조금씩 꿈틀거릴 준비만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또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A를 얻기 위해서 B에 매달려 있는 우리들일 수 있다. 예수님과 교회와 기독교를 이용해서, 즉 그 이름을 빙자해서 A를 축적해 내려고 오늘 우리들의 교회 가운데로 들어와 있는 사람은 모양만, 이름만 다를 뿐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B를 주시는 이유가 단지 성공과 축복과 이 땅에서의 소유를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B 속에는 고난과, 십자가와, 헌신과, 눈물과, 땀과, 피가 들어 있다. 그것은 A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신앙과 삶의 자리를 돌아보아야 할 말씀이다.

   

 

4.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는 이 사람을 보라.

    

     탐심(A)                                     하나님의 나라(B)

     내 곳간 거기 쌓아 두리라(18)        적은 무리(32a)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21)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33a)

     의식주 염려(22)                                하늘에 둔 보물(33b)

     믿음이 적은 자들(28b)                       마음도 있으리라(34)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30)

   

바울을 보라. 그리스도를 보라. 성경의 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B를 조건으로 A를 얻으려고 살았던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오직 B를 위해 사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가장 충실한 삶인 것을 믿었던 사람들이다. 자신(A)을 위해서가 아니었다(21.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러면 누구를 위해서인가. 하나님(B)을 위해서다(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부스러기 묵상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7-9)

 

심는대로 거둔다(6.7-9).

당신은 당신의 일생을 바쳐서 자신의 인생을 승부할 그 무엇을 발견했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 한 분이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그럼 A가 아닌 B에 선 사람임에 틀림없다. 한편 B 가운데 살아도 A를 얻지 못하는,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그는 진실로 아직 B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진정 B(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며 사는 자에게는 절망도, 패배의식도, A와의 비교의식도 없어야 한다. 오직 B가 가져다주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하늘의 보화로만 가득한 사람, 그가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어서다.

신앙의 세계는 단지 이 땅에서, 육신이 좀 더 안락하고 편안한 것이 최종 목표이거나 목적이 되는 세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가는 삶이다. 물론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 일용할 양식은 필요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하늘 아버지께서도 아신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살 것을 요구하신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도 부요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도 부요한 자로 살고 싶은 게 본성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도 있지만 모두가 다 예수님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는 보장할 수 없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님 때문에 이 세상에서 부요하게 되는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좁은 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찾는 이가 적다(32). 그러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보화를 발견한 자는 모든 것을 드려 그것을 얻는 삶을 추구한다(31,33-34).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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