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눅 11.1-13)

20210203b(묵상)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Luke. 11.1-13

  

    본문 관찰

 

    주기도문(1-4)

    기도는 관계다(5-8).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9-13).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주여 기도를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1)

        → 주기도문(2b-4):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2a)

   

 

끈질기게 조르기(5-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 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어, 한밤중에 찾아와서 말했다. ‘친구, 내게 빵 세 개만 빌려 주게. 내 친구가 여행하여 내게로 왔는데 그에게 차려 줄 것이 하나도 없다네.’ 그런 경우에, ‘나를 괴롭히지 말게! 문이 이미 잠겼고, 내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네. 일어나서 자네에게 줄 수 없네하고 대답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친구라는 것만으로는 일어나 주지 않을지라도 끈질기게 조르기 때문에 일어나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이 말씀은 기도의 방법론이나 기도의 기술을 가르치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기도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씀하신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시면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가 끈질기게 조르기라는 간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이 친밀한 관계일 때 일어나는 불꽃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기도하는 네가 나를 그리 생각하고 신뢰하고 믿고 있다면 너의 기도가 이처럼 될 것이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9-1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다. 찾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문이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생선을 주지 않고 뱀을 주겠느냐? 또 계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하더라도 좋은 것을 자녀에게 주려고 한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간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응답을 약속하신다(9-10).

     구하는 사람 받을 것이다.

     찾는 사람 찾을 것이다.

     두드리는 사람 문이 열릴 것이다.

 

생선을 구하면 생선을, 알을 구하면 알을 주신다. 구체적이다. 그리고 분명하다. 이를 우리 식으로, 오늘 식으로 말하면 이렇다: 집을 구하면 축사(닭장)가 아니라 아파트(빌라)를 주신다. 돈을 구하면 위조지폐가 아니라 돈을 주신다. 예수 믿게 해 주시기를 구하면 예수를 믿게 해 주신다. 이처럼 선명하고, 기도를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귀로 듣고, 우리 머리로 알게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놀랍다. 그렇다. 기도는 하늘 아버지의 부요하심에 참여하는 놀라운 선물이다.

   

 

1. 그럼 여기서 기도에 대한 성경의 약속과 가르침을 좀 더 들어보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고, 구한 모든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11.24)

믿음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만일 그가 죄를 지었더라도, 그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해 주십시오. 의로운 사람이 기도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구했더니, 삼 년 반 동안, 그 땅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후, 다시 기도하자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고, 땅에서 다시 곡식이 자랐습니다.”(5.15-18).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했기 때문입니다(요일3.22).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할 때, 그리고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맞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져 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간구할 때마다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구한 모든 것들을 그분께서 주시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요일5.14-15).

   

 

2.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어떻게에서 기도가 참 어려워지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모든 기도의 경우가 해당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한 기도제목을 예로 들어보자: “하나님, 제가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알고 따르고, 그래서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세요.” 어떤가? 간결하지만 참 멋지고, 또한 고상한 기도가 아닌가.

그런데 이 기도를 포함해서 우리가 드리는 거의 대부분의 기도는 그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가 없어 보인다. 좀 더 리얼하게 이 말의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몇 가지 응답의 과정이랄까, 가능해 보이는 그 길을 설정해 보자. 이 기도가 긍정적인 과정들을 통해서 응답되겠지만 혹여 부정적인 방법들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가정해 보면서 그걸 하나 둘 찾아보자:

 

     부정적인 과정들을 통한 기도의 응답

     ① 다리가 부러져서 그 고통 중에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② 암에 걸려 죽게 되는 과정을 통해

     ③ 남편이 실직을 하고 가정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④ 아들이 재수를 넘어, 삼수를 하게 되면서

     ⑤ 며느리가 8년째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서

 

만일 우리가 이런 과정들이 두렵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으면 하나님 이런저런 일들을 일어나지 않고서, 몇 년 안에, 이런 식으로, 누구를 거치지 않고, 이런 조건들과 상황들을 설정해 놓고 기도하기 시작한다고 가정해 보라.

우리는 아마도 기도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다 예방하고, 일어날 상황들과 예측 가능한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야 하고, 그래 그렇게 한다고 해서 기도의 응답이 올 때까지 우리가 안전하다 할 수 있을까.

 

 

3.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맞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위탁이자, 전적인 신뢰다. 마치 아이가 2층 침대에서 아래에서 손을 벌리고 서 있는 아빠에게 뛰어내릴 때처럼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전적인 위탁과 무한한 신뢰에 기초한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아들은 어떻게까지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 부모에게 맡긴다. 의심하지 않고, 불신하지 않고, 그냥 모든 것을 다 전적으로 맡긴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없애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14.36)

따라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영성이며, 믿음의 용량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총량이다. 기도의 주인이시며 기도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 신뢰가 기도를 견인해 간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기도는 그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비례하며, 동시에 한 사람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의 기도의 깊이와 넓이와 용량과 비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기도의 방법론에 집착하거나 골몰하지 않는다. 이런 것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 오직 있다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귐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집중한다. 기도는 기술이 아니며, 기도는 방법론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을 누리는 은혜의 방편이다.

   

 

부스러기 묵상

 

모든 종교에 기도가 있다.

응답으로 따지면 기독교에서만 기도 응답이 있는 게 아니다. 이방의 세속 종교 속에도 능력과 역사와 기적이 일어난다. 또한 절박함과 간절함이, 그래서 신을 감동시켜서 응답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기독교 밖에서 드려지는 기도 또한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도 간절하고 놀랍기까지 하다. 지극정성이라면 꼭두 새벽에 목욕 재개하고, 정한수 떠놓고, 무릎과 손바닥 지문이 다 닳도록 기도하는 자들을 누가 무슨 재주로 당해낼 수 있겠는가.

내 기도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자업자득, 곧 자기공로다. 그럼 신은 필요 없고, 내 능력과 정성과 땀과 눈물이 결국 내가 원하는 결과(응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잘 보면, 이게 다 이방의 기도들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기도가 우리 기독교(교회) 안에 있는가, 없는가?

이재용 상무는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부친 이건희 회장께 구하지 않았을까? 그 역시 구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필요한 것을 당연히 구한다. 그럼 우리가 하늘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맞다. 그건 틀린 게 아니다. 당연히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날 동안에 필요한 것을 아신다. 그리고 그것을 당신에게 구하는 것을 기대하시며 이처럼 구하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그것들이 주어지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구하는 것만으로 다 채워질 수 없다. 생각해 보라. 기도가 구하는 것만이라면 구하는 우리와 구하는 것을 주시는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주고 받는 사이 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기도는 구하는 것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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