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4)

20210207(양무리교회)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십시오.

Luke. 11.1-4

  

   본문 관찰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복음서는 한결같이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예수님의 모습 가운데 기도하시는 예수님은 참 특별하다. 이 모습은 우리들 역시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을 제공해 준다. 예수님도 기도하셨다면 우리야 당연히 기도해야 할 사람들이다. 어느 누구도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도 기도하셨다면 말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는 말씀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14.23)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1.35)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5.16)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6.12)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9.28)

 

무엇을 기도하셨을까?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기도하셨을까? 이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 역시 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중언부언(重言復言, 6.7)하면서 옆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기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를 바르게 이해하면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역시 복음서에서 찾아본다.

[1] 무엇을1 - 겟세마네 기도가 하나의 힌트다: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14.35-36,39) 그렇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응답하기를 기도하셨다.

[2] 무엇을2 -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도록 제자들을 격려하신다(22.39-46).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시는 장면이며, 이때 제자들에게 부탁하는 내용은 시험을 이기기 위한 기도였다.

[2] 무엇을3 - 주기도문이 가장 강력한 힌트다(6.7-13, 11.2-4).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기도다. 사사로운 것이 아닌 기도의 영적 공공성이 기도의 기초다.

[3] 무엇을4 - 중보기도를 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 요한복음 17장은 이 부분의 압권이다.

   

기도는 구하는 것 그이지만, 그러나 그 이상이다.

 

기도에 관하여 이런저런 것을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실제로 기도하다는 쉽지 않다. 사실 기도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또 하고 있다. 하지만 주님이 가르치시고, 주님이 친히 모범을 보여주신 기도를 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쉽지 않은 것은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따르도록 만든다.

 

 

1. 기도는 구하는 것이다.

 

성경은 구하는 기도를 지지할 뿐 아니라 명령하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구하도록 하시고, 또한 우리가 구하는 기도를 하면 그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하신다. 대표적인 성경 말씀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11.9-10, cf. 7.7-8)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하는 기도를 약간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쉽게 내가 필요하고, 얻고 싶고, 갖고 싶고, 소원하는 것을 간구하는 것을 구하는 기도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니까 오직 중심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서 구하는 것이란 철저하게 의 필요와 목적이라는 내 개인적인 소원(욕망, 욕심)에 맞추어져 있다는데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런 기도는 다음과 같이 점에서 기도의 본질을 그릇되게 만드는 요인들을 품고 있다.

[1] 내가 구하는 것을 얼마나 빨리, 분명하게 얻는 것으로 기도의 능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흔히들 저 분은 기도의 능력이 있어!”라고 말할 때 그 말의 의미는 하나님과 기도자를 연결하는 통로로서의 기도가 아니라, 언젠가부터 기도의 결과를 끌어내고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능력(power)을 뜻하는 것이 되었다. 이것은 비극이다.

[2] 그래서 기도하는 것보다는 기도의 효율과 성과(결과, 응답)를 위해 기도의 능력을 구하는 쪽으로 갔다. 그래서 좀 더 크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기도가 내가 원하는 바를 얻어내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된 셈이다. 이것만큼 기도를 오해하는 것은 없다. 여기에 기도의 방법, 응답의 비결, 기도의 공식과 같은 소위 기도의 테크닉(기술)을 말하고 가르치고 추구하는 쪽으로 빗나가 버렸다.

[3] 우리의 기도는 많은 경우 내가 목표한 것을 얻기 위해 기도를 자가발전(自家發電) 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응답받을 수 있는가에 기도의 모든 초점을 모아 버렸다. 그 결과 응답과 관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기도에 대한 많은 말씀들을 관심 두지 않고 그 말씀들을 희생시키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응답을 말씀하는 것 같지 않은 기도에 대한 말씀들에는 관심도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성경이 기도를 말할 때 그 모든 말씀들이 반드시 기도의 응답과 관련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 기도는 구하는 것 그 이상이다.

 

이것 주세요, 저것 필요해요처럼 구하는 것이 기도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야 한다. 때문에 그분이 구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상 예수님은 우리가 구하는 그런 필요들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그만큼 예수님이 명하신 기도와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기도라는 거룩한 것을 인간의 탐욕의 도구로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죄악이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단순히 어떤 얻고 싶은 필요’(need)를 위해 기도하시지 않았다. 그분은 모든 것의 창조주요, 주인이시다. 그런 분이 우리처럼 이런저런 것들이 필요하셨을까? 물론 필요로 한 것들이 왜 없으셨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구하는 식의 기도, 하나님, 이것 주세요. 그리고 저것도 주세요식의 구하는 기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구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달라고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처럼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처럼 하나님을 마치 백화점 사장으로 취급하는 그런 무지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에 다시 주목한다: 그렇다면 습관을 쫓아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을까? 이것이 구하는 것 이상으로써의 기도다.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통찰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최소한 우리처럼 무엇이 필요하여, 그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지는 않으셨다.

그럼 무엇인가.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만남, 교제함이었다. 그러니까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함께함,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방해하는 것과의 결별, 그리하여 좀 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음에서 나온 하나님 앞으로 나아감,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함이 그분의 기도였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야(구원자)로서의 뜻을 이루어가려는 공생애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감당하시려함이 기도의 핵심이다. 여기에 자신의 뜻은 없었다.

   

 

부스러기 묵상

 

    ▪예수님의 기도는...

    ∙? 하나님 아버지

    ∙무엇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시려는 것이 있다.

기도는 우리가 땅에서 구하는 것으로부터 하늘로서 하나님이 임하는 것까지, 그러니까 기도는 온통 하나님의 사건이다. 인간의 어떠함이 기도의 중심이거나 기도를 지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구하고 있던 것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구하는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기도를 드리지 말자는 말 역시 아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거의 전부가 단지 나의 어떤 필요를 달라는 것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기도는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이를 반성하고 회개하자는 얘기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하는 기도자를 찾고 계신다. 단지 이 세상에서만 유효한 것들만을 구하는, 그래서 마치 릴레이처럼 이것 끝나면 저것 구하고, 이것의 필요가 끝나면 또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여 구하는, 오직 나에게 필요한 것만을 기도하는 그런 수준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그의 의를 보는 알고 찾고 구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기도자가 되어야 할 때다.

 

    ▪주여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주여, 구하는 기도 그 이상을 가르쳐 주옵소서.

    ∙주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주여,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줄여가도록 도와 주옵소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기도다: 주여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제 기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마음을 알아가고, 그분의 심정을 깨닫고, 나를 향한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듣고, 알고, 느끼고, 깨닫고, 그리하여 그 뜻에 응답하기 위해 주의 능력과 은혜를 구하는 그런 기도를 드리도록 하자. 그래야 건강한 교회다.

이것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기도의 무한한 영광이다. 기도는 비록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와 그분의 하늘 영광을 보고 알고 믿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에게서와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육신을 입고서도 저 영광의 하늘을 맛보고 누리고 경험하는 하나님의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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