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그 고난을 영광으로!(요 17.1-5).

20220417(양무리교회)

  

 

 

먼저 고난의 영광 앞에 서야 합니다.

Jn. 17.1-5

  

    본문 관찰

 

   예수께서 이 말씀([다락방 강화], 13-16)을 하시고 ”(1a)

 

        → [예수님의 기도](17.1-26)

 

            → [겟세마네 동산](18.1- ): 십자가

  

 

십자가의 비밀, 그 고난을 영광으로!

 

    “예수께서 이 말씀(‘다락방 강화’, 13-16)을 하시고 ”(1a)

        → [고난 = 영광](17): 십자가의 길을 말하다.

            → [겟세마네, 골고다](18-21): 십자가의 길을 행하다.

 

17장은 예수님의 그 선지자의 기도(Prophetic intercession).

아버지의 원어 아바(abba)-우리말로도 아빠- 친근한 호칭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기도의 서두를 이처럼 아빠로 시작하신다. 부자(父子) 사이의 사랑이 물씬 풍겨나는 기도의 향기가 느껴진다. 한편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라(6.9-1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고 말씀하신다.

이 기도에는 기도하는 행위만큼이나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지금 십자가로 나아가는 고난의 길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다. 놀랍게도 그것은 고난 그 자체가 주는 이미지를 뛰어 넘는다. 무슨 말인가. 주님은 고난이 영광이 될 때가 왔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고난이 영광이다는 뜻인데, 이것이 십자가 고난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들도 고난을 어떻게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먼저 고난의 영광 앞에 서야 합니다.

 

    [17.1-5; 표준새번역] - 십자가 고난은 영광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여, 때가 왔습니다.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습니다.”(1-2)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3)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버지,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리던 그 영광으로,

      나를 아버지 앞에서 영광되게 하여 주십시오.”(4-5)

 

제자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셨던 다락방 강화(13-16)를 마치시고, 붙잡히시기에 앞서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난다. 물론 이 기도는 복음서들이 기록하고 있는 겟세마네 기도(26.36-46, 14.32-42, 22.40-46)와는 구별된다.

먼저 체포와 심문,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처절한 고난의 여정을 앞두고서 기도앞으로 나아가신 것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말씀(‘이르시되’)하시듯 기도하시는 예수님(17.1, 18.1), 기도하시듯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래서 더 기도에 대한 새로운 통찰(생각)을 갖게 한다. 주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그러니까 눈을 감으시고가 아니라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시고 기도하신다. 사실 기도할 때 반드시 눈을 감아야 한다는 명령은 없다. 그렇다면 기도를 평소 말씀하시는 모습대로 하시는 예수님, 눈을 들어 하나님을 향해 보시며 말씀하시듯 기도하시는 기도자 예수님, 역시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더 생각하게 한다.

또한 때가 이르렀사오니”(1a), 때가 왔습니다.”라는 기도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져야 할 때(2.19, 3.14),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4.21,23),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7.33-34, 8.21, 13.1),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할 때(10.15,18), 동시에 마침내 영광을 얻을 때(1,5, 12.23)가 도래하였음을 아셨다.

, 여기서 중요한 묵상은 십자가 고난에 대한 예수님의 시각이다. 주님은 이를 영광으로 인식하신다(1,4,5). 고난과 영광이 연결되고 있어서다. 놀라운 것은 십자가의 고난이 예수님의 영광과,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과 만난다. 다시 본문을 읽어보자:

 

    [성자의 영광, 성부의 영광]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b)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4)

    ▪아버지여 창세 전에 가졌던 영화로써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5)

 

,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은 무엇인가. 십자가로 가시는 길에 영광이라? 그럼 고난이 영광이다는 말씀이 아닌가. 이것이 어떻게 성자의 영광이고, 동시에 이것이 또한 어떻게 성부의 영광이 되는가.

 

[1] 1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표준새번역)

 

예수님은 마침내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할 때가 왔다고 기도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시간표(13.22,28,36a,37a, 14.5,8,22, 16.17-18)를 주님 발 앞에 다 내려놓고, 마침내 우리는 믿습니다!”(16.30b)를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때에 동참한다. 이렇게 해서 제자들 역시 하나님(아버지)과 예수님(아들)의 영광 앞에 초대된다.

놀랍게도 고난에 대한 또 하나의 놀라운 통찰이다. 육체적으로 당하는 것만이 고난은 아니다.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과 고생을 예수님 자신을 영광되게 하시는 것으로, 동시에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이해하신다. 성자 자신의 영광으로 영광을 독점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광마저 성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을 바라본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난을 단지 어렵고, 힘들고, 싫고, 불필요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영적 미성숙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유익하다 싶으면 복()이고, 나에게 불리하고 해가 되는 것 같아 보이면 화()라고 단정해 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대입해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고난 = 나쁜 것이라는 인생방정식을 따라 살아간다. 그래서 정작 속은 죽겠는데 겉 표정은 천사표다.하지만 고난마저도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낳은 또 다른 의미의 영광이라는 것(2), 이것이 고난 앞에서도 기도하시며 또한 고난 앞에 이처럼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들을 영광되게 해 달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께 돌리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그 초점이 아버지 하나님이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욕망에 붙들려 살아가는 우리와 격이나 결이 다른 이타적인 영광이다.

 

[2] 4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표준새번역)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고 있는 지금,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함으로써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씀하신다(4). 주님은 아버지의 일을 하셨다. 아버지께서 하라고 맡기신 일을 하셨지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어서 만든 일을 하신 것이 아니다. 자기 목적을 이루어 놓고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하시지 않으셨고, 자신이 한 일이 아버지의 일이라 하지도 않으셨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공생애 전부를 하나님 아버지께 그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나님만으로 충분했던 삶,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룬 복음행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성한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소명이고 사명이고, 맡은 바 하나님의 일이 갖는 영적 공공성이다.

*부모로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은 어떤 것들인가?

*성도로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은 어떤 것들이며, 그것을 알고 있는가?

*교회로서 하라고 맡기신 소명과 사명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3] 5

 

    “아버지,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리던 그 영광으로,

      나를 아버지 앞에서 영광되게 하여 주십시오.”(표준새번역)

 

()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4). 아버지께서 하라고 맡기신 일을 통해서다. 이를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이루었다고 말씀한다. 이는 다름 아닌 공생애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성자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충성과 헌신으로 응답해 드렸다.

() - 아들의 영광을 구하다(5). 마침내 성자 예수님은 당신의 온 몸과 마음으로 순종한 고난의 영광에 기초해서 5절의 기도를 올려드린다. 바로 아들이 영광되게 하여 주시기를 요청한다. 하지만 이 기도는 무엇인가. 십자가를 지고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해야 하는 죽음이라는 고난이다.

주님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영광과 기도하는 지금이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을 보셨고, 다시금 십자가의 고난을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창세 전의 영광과 동일시 하신다(5). 지금 십자가 고난이 이처럼 영광이라면 고난 없는 영광은 허상이며, 영광은 고난을 먹고 자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부스러기 묵상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3, 표준새번역)

 

    고난은 내가...

      -못나서 받는 게 아니다.

      -할 수 없이 맞이하는 게 아니다.

      -죄의 값을 치르는 게 아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패배이자 실패가 아니다.

      -재수없이 당하는 게 아니다.

      -누구 혹은 환경 때문에가 아니다.

      -허망하게 치르는 게 아니다.

      -아무 목적이나 의미 없이 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맡기신 일을 하고 있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맡기신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하나님을 영광되게 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다.

      -영광을 잉태하는 씨앗이다.

      -그 끝자락에 영광이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이것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고난을 예수님처럼 읽어낼 수 있는...

      -믿음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십시오.

      -영적 성숙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니까 예수님처럼 고난을 볼 수 있는 자로 서십시오.

      -그러니까 예수님처럼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확신이 있다면 당당하게 맞설 수 있습니다.

 

영생(3)은 고난의 영광을 예수님처럼 알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과해 가는 것이다. 이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 그 속에서 영생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의 원형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보았고, 그의 부활에서 보았으며, 그의 말씀에서 보았다. 그 실상이 오늘 부활의 아침이다.

영광이 이처럼 값있고 영광스러운 것은 그것이 있기까지 먼저 그 앞에 있는, 그러니까 있어야 하는 고난이다. 그리고 이 고난을 받아들이고 통과해 가는 자세와 모습이다. 바로 예수님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이 비록 고난이지만, 그러나 고난이라 쓰고 영광이라 읽는 이유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부활을 통해 영광이 되게 하셨다. 그러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하는 고난을 영광으로 잇게 하실 것이다. 이 믿음이 부활의 아침에 우리가 받아야 할 선물이고, 주께 드려야 할 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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