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 심판, 後 영광이다(사 63.1-14).

20210812(묵상)

 

 

 

심판, 영광이다.

Isa. 63.1-14

 

    본문 관찰

 

    주의 승리(1-6): 심 판

    주의 선하심(7-14): 찬 양

 

 

심판과 찬양

 

왜 갑자기 에돔에 대한 심판인가?(1-6)

앞에서도 에돔은 -사실 에돔은 이스라엘의 형제다(25.30).- 심판 받아야 할 적국들의 원형이었다(34). 지금 전체적으로 메시야에 의한 시온의 영광이 예고되고 있는 중인데 에돔(보스라) 심판이 등장하는 것이 궁금하다. 이로 보건데 메시야의 심판은 도래하고 있는 메시야 왕국(새 예루살렘)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전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에돔(보스라)은 종말론적 심판을 예고하는 것일 것이다(2-3; 14.19-20 참조). 그리고 이 일을 이루신 메시야 찬양이 이어진다(7-14). 심판과 찬양의 극명한 대조, 또한 그것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선언, 이 두 사이에서 이사야서는 꿈틀거린다.

   

 

주의 승리(1-6): 심 판

 

메시야와 이사야 사이의 대화가 이어진다. 선지자는 에돔(보스라)에서 오는 화려한 붉은 옷을 입은 큰 권능으로 걷는 자가 누구인가에 주목한다(1a). 놀랍게는 그분은 공의를 말하는 이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자!’로 자신을 소개하신다(1b). 그는 지금 공의와 구원을 이루는 발걸음으로 에돔(보스라)에서 오고 계신다. 그러자 선지자는 자신 앞으로 오는 자가 진홍색을 물든 화려한 의복을 입은 자에서 포도즙 틀을 밟는 자로 인식하기 시작한다(2a).

하지만 선지자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선지자는 지금 정의와 구원의 능력을 지닌 자와 붉은 옷을 입은 포도즙 틀을 밟은 자를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이미 ’(메시야)는 포도주 틀을 밟는 일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아직 이를 알지 못한다. 이렇듯 어쩌면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심판을 집행하고 계시지만 정작 심판의 대상인 자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침내 그분은 에돔에 대해 당신이 친히 하신 일을 선지자에게 계시하신다(3-6). 한 마디로 말하면 에돔(보스라)은 심판을 받았다. 그는 홀로 진노와 분노로 원수를 짓밟았다. 그런데 이 일은 단지 에돔만이 아닌 만민을 밟았으며또한 부수어 뜨려 그들의 선혈(포도즙)을 땅에 쏟아지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6). 이 때문에 메시야의 옷이 온통 붉게 물들게 되었다(3b). 마침내 계속되는 대화에서 초점이 맞추어졌다.

선지자마저도 종말론적 심판의 집행을 알지 못하였다면 세상은 이를 알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틀에서 밟히는 포도로 추락하게 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메시야는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 그분은 당신이 오셔서 회복할 그 나라에 반()하는 악의 세력을 멸하여 원수를 갚으심으로써 구속할 해가 오게 하신다. 이것이 에돔에서 심판을 행하시고 그곳으로부터 오시는 그분의 모습이다.

   

 

주의 선하심(7-14): 찬 양

 

드디어 선지자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총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찬양하는 자리로 나아간다(7). 에돔(보스라), 곧 세상은 심판을 받았으나 그분은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8a)고 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지켜 주셨다. 이스라엘이 에돔처럼 심판을 받지 않은 이유를 선지자는 하나님에게서 찾고 있다. 결코 이스라엘이 잘나서도, 선해서도, 의로워서도 아니었음을 당당히 선언하는 선지자의 통찰이 내가 어떤 자로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반응해야 하는가를 말해 준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에돔처럼 취급하지 않으신 배후에는 언제나 출애굽 메시지’(10-14)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지만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10a)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저들의 대적이 되어 그들과 친히 싸우신다(10b).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라면 에돔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에돔과 다른 것은 이때 보이는 하나님을 향한 반응이다. 이것이 에돔은 심판이지만(장송곡) 이스라엘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다.

   

 

부스러기 묵상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14b)

 

이사야처럼 반응하며 살고 싶다.

에돔과 자기 백성에게 이루신 일을 정확하게 구분해 낼 줄 아는 믿음의 눈으로 말이다. 사실 그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했었다(1). 그러나 그분이 말씀으로 알려주시는 소리를 듣고 그분과 그분이 이루신 일에 바른 응답을 하게 되었다. 이사야가 복() 있어 보이는 이유는 이 부분이다. 계시의 통로로서 쓰이고 있지만 그 역시 불완전하고 무지하다(1). 하지만 하나님과의 계속되는 교제를 통해서 더 깊은 영적 성장과 성숙의 자리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어제의 심판에서도 오늘의 찬양을 토해 낼 수 있는 사람, 이점이 몹시 부럽다.

이사야에게는 심판과 찬양이 이중주가 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 언제쯤 심판하심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는 자로 설 수 있을지 .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이 둘이 항상 동시상영되곤 한다. 때문에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고, 또 기뻐하고만 있을 수 없다. 바로 그때 들려오는 하나님의 소리(섭리)를 읽어낼 수 있는 통찰, 이것이 63장의 이사야에게서 배워야 할 대목이다. 사실인즉슨 이게 뭐 배운다고 될 일인가.

에돔 짝 나지 않기 위해서는 비록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 아래 있다할지라도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기억하여 이르되”(11a)로 다시 무릎을 굻음으로써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다시 회복하였던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사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철저히 인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처럼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함으로써 다시금 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하자. 이것 밖에는 희망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참 뻔뻔스럽기도 하지, 결국 이 일을 또 반복하고 있으니 .

나도 나지만 하나님도 참 무던하신 분이시다. 이럴 줄 다 아시면서도 죄 뒤집어쓰고 또 무릎을 굻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빙그래 웃으시니 말이다. 이젠 철들 때도 되었다. 다시금 60년 묵은 죄록(罪錄)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이렇듯 오늘은 바로 오늘의 죄가 60년이나 묵은 죄라는 사실이 가슴 시리도록 아프다. 이러고도 내가 그분의 자녀인가. , 이렇게 살면서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당당해 고개를 들어도 되는 것일까. 이것이 더 오랫동안 63장 앞에 머물러 있는 부끄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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