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지평 - 심판과 구속(사 34.1-35.10)

20200825-26(묵상)

  

 

 

두 지평 - 심판과 구속

Isa. 34.1-35.10

  

   본문 관찰

 

   에돔의 심판(34.1-17)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진멸하시며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

   여호와의 칼이 에돔 위에 내리며 그를 심판할 것이라

   이것은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날이요

   에돔의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그 궁궐에는 들짐승이 모이리라

   시온의 영광(35.1-10)

   기뻐하며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밝을 것이며 열릴 것이며 뛸 것이며 노래하리니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돌아오되 노래하며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에돔과 시온

 

   “이 때가 바로, 주께서 복수하시는 날이니,

    시온을 구하여 주시고 대적을 파멸시키시는 해,

    보상하여 주시는 해이다.”(34.8, 표준새번역)

 

()과 악()은 세상 끝 날까지 공존한다.

인간은 악을 택했고(34), 하지만 하나님은 선의 손을 들어주신다(35). 하나님은 심판(에돔, 34)과 영광(야곱, 35)의 접속곡을 홀로 주도하신다. 악을 대표하는 에돔의 코드는 단조(短調)이고, 선을 대표하는 유다의 코드는 장조(長調). 이로써 34장과 35장은 짝이 된다(34.16). 이렇듯 세상에는 언제나 이 두 음악이 흐른다. 이사야는 지금 전혀 다른 두 멜로디를 들려줌으로써 이미 시작된 성도들의 인생이라는 악보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고, 어느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는가?

   

 

에돔의 심판(34.1-17)

 

   “여호와의 칼이 에돔 위에 내려며

    진멸하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34.5)

 

심판이 보편(우주)적인 것은 열국이여 민족들이여 땅에 세계와 열방을 만군을 하늘의 만상이 하늘들이”(1-4)라는 표현처럼 그 대상에서 확인된다. 이처럼 사람은 물론 천지만물(天地萬物) 모두가 다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따라서 에돔은 심판 아래 있는 열방의 대표다.

또한 진노하시며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육 당하게 하셨은즉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말리되 여호와의 칼이 큰 살육이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날이요”(2-8)에서 그 실상을 짐작하게 된다. 이 일은 무엇보다 하나님에 의해 친히 주도된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2,5,6,8,16-17). 하나님은 온 우주의 심판주(審判主)이시다.

이렇듯 예고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이 종말론적 심판은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세세에 영영히”(10), 그리고 아무도”(12) 이 심판을 역전시키지 못한다. 다시 기회가 또 있는 것이 아니고 최종적이라는 뜻이다. 좀 정리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왜 에돔’(5,9,10)을 겨냥하고 있는가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에돔이 거론되는 것은 우주적이며 보편적인 심판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돔은 에서의 별명이자 그의 후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25.10, 36.1- ). 이삭의 두 아들, 에서(5,8)와 야곱(1.8-9, 4.3, 6.13, 10.20-23, 11.11-12,16, 17.5-6, 28.5-6, 30.17)은 이로써 전혀 다른 두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럼 심판 받아 마땅한,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날 앞에 선() 에돔의 죄는 무엇인가(5-8). 먼저 형제 이스라엘이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지나가고자 한 길을 거절하였다(20.14-21). 무엇보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일에 바벨론 편에 선 일이다(1.10-14). 에서와 야곱이었을 때부터의 갈등과 긴장은 끝내 에서(에돔)의 영원한 멸망 선언으로 일단락된다.

다음은 발람의 예언이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다 멸하리로다.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24.17-19) 참으로 가슴 뛰는 일이다. 아브라함 이삭으로 이어지는 구속사의 계보에서 에서처럼(34), 그리고 야곱처럼(35)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는 점이 말이다.

   

 

시온의 영광(35.1-10)

 

하나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심판은 그분이 계획하신 섭리의 마침표가 아니다. 역사는 거룩한 길’(8)을 따르는 구속함을 받은 자’(속량함을 받은 자들, 8,9,10)와 함께 한다. 하나님은 광야와 메마른 사막이 기뻐하며, 또한 무성한 꽃이 피어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당신의 영광을 보도록 하신다(1-2). 전혀 새로운 삶의 희망을 일으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3-4), 에덴의 회복은 물론(6-7), 예수님의 사역을 통한 구원의 세계를 멀리서 바라본다(5-6a, 61.1a):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자가 걸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11.5)

그렇다면 이러한 영광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말미암아 시온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2.1-3)는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8-10)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열어 놓으신 대로’(大路, 8a),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10.20)을 통해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이 은혜는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오직 구속’(속량)함을 얻은 자들만을 위하여 예비된 거룩한 길이다. 그러므로 깨끗하지 못한 자들, 그러니까 에돔의 후예들(34)과 같은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결코 출입할 수 없다. 이제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고 즐거움과 기쁨이, 그것도 영영한 희락”(10)이 함께 할 것이다.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34.10b)라는 에돔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영영한 희락을 띠고라는 시온이 완벽하게 대조된다. 거룩한 길을 따라 영원한 영광의 문으로 들어가는 그림은 [혼인잔치의 비유](25.1-13)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광은 거룩한 길을 통과하게 된 사람들만의 몫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감사할 뿐이다. 대로(大路)를 다닐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을 위해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나 공로와 같은 것들을 요구하셨다면 아마도 우리는 아직도 그 문 밖에 서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뻔했다. 죄인인 나를, 마치 에돔 멜로디를 즐기며 살던 나를 구속(구원, 속량)하시기까지 해 주시고 은혜로 출입증을 주셨단 말이다. 그것도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10b) 얻게 하셨다. 이 영광을 취소되지 않도록 영원한 선물로 주셨으니 내 어찌 이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10a)지 않을 수 있으랴!

이렇게 해서 40장 이후가 열린다.

   

 

부스러기 묵상

 

   “에돔의 세세에 황무하여 영영히 아무도 없겠고”(34)

       ↔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35)

 

아무리 생각해도 에돔에서 시온으로의 이동(shift)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이것이 또한 구원하심에 대한 성도의 간증이기도 하다(2.1-10). 전혀 어울리지 않은 두 그림은 이사야 시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신앙의 현미경이자 우리 시대의 미래를 조망하게 하는 영적 망원경이다. 과거를 보는 만큼 동시에 미래를 보게 하는 메들리(medley)이기 때문이다.

사막과도 같은 메마른 심령의 땅에도 백합화가 무성하게 피는 그날이 예고되고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35.1). 이것이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 하신다(35.2). 이 일은 주님께서(35.5-7, 11.2-6) 구속(救贖, 구원, 속량)하심으로 말미암는다(35.8-10).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약한 떨리는 겁내는 두려워”(3-4)서 불신앙에 휘청거리는 몰골로 살지 않아야겠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굳게”(35.3-4) 부르셨고, 동시에 그러지 못하고서 불신앙에 떠는 자들을 격려하며 섬기면서 살도록 부르셨다. 이게 구원 받은 이후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미’(already) 시온의 영광 안으로 부르심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not yet) 여전히 에돔의 심판 아래 있는 자처럼 인간적인,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모습으로 시온의 대로 앞에 서 있다면 이것은 중증(重症)이다.

우리 시대의 교회(敎會)가 십자가로 가는 대로(大路)가 되어지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 아닌가. 하늘 가는 [교회대로](敎會大路)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6.24-28). 시온의 영광과 그 대로는 잠시 머물다 쉬고 가는 곳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初臨)에서 시작된 이 영광이 그분의 재림(再臨)에서 완성되기까지 이 은혜의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35.4b)를 외치며 살아야 할 때다. 타는 목마름으로 영광의 대로(大路)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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