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찬양시.讚揚詩(사 25.1-12)

20200813(묵상)

  

 

 

이사야 찬양시(讚揚詩)

Isa. 25.1-12

  

   본문 관찰

 

   하나님을 찬양(1-5): 황폐하게 하시며 영원히

      ↕

   하나님의 잔치(6-9): 연회를 베푸시리니

      ↕

   하나님의 심판(10-12): 모압 그를 누르실 것이라.

   

 

하나님의 일하심

 

이사야의 하나님 찬양시(讚揚詩)는 좀 갑작스러워 보인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면서 통곡했던 모습 때문이다(24.16b-20). 그러나 공의의 심판은 영광의 나라를 드러내는 전주곡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와 상관이 없는 거룩한 나라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이사야는 24장에서 죄악에 대한 심판(5 1-4,6-13,16b-20)남은 자의 하나님 찬양(6,13 14-16a),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각각 구분했던 것이다(23b). 심판 가운데서도 남은 자를 구별하신 하나님, 그분은 찬양 받으실 분이시다.

   

 

하나님을 찬양(1-5)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주께서 성읍을 영원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빈궁한 자의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주께서 이방인의 소란을 그치게 하시며.”

 

이사야는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그가 1~24장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된 하나님은 저 멀리, 혹은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1a)이시다. 그 하나님을 그는 주님으로 높이고, 또한 찬양한다. 이처럼 고백할 수 있는 근거를 하나님의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1b)에 두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 이사야 때까지 성실과 진실로서 일하셨다. 변덕스럽거나 예측 불가능하신 분이 아니라 비록 인간이 당신의 섭리를 거역하고 반기를 들었을지라도 공의와 사랑으로서 초지일관(初志一貫) 균형을 유지해 오신 분이시다. 또한 대적들과 강하고 포악한 나라일지라도 황무하게 하심으로써 당신을 경외하게 만드시사 당신의 섭리대로 열방을 다스리신다(2-3).

무엇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의 피난처요 그늘이시다(4). 하나님은 이방인(강한 민족, 포학한 나라들, 포학자, 폭양)의 함성을 그치게 하신다. 그분은 언제나 환난 당한 가난한 자들을 도우시며 은혜를 베푸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조금 있다고 목에 힘을 주는 사람들의 포악한 언행들을 심판의 기회로 삼으심으로써 공의를 만족시키셨다.

이것은 단순히 기계적인 빈부차별(貧富差別)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실성을 훼방하면서까지 아침 안개처럼 참으로 무상(無常)한 인간의 강함을 앞세우는 포학한 자, 그래서 그것으로 빈핍한 자를 환난 가운데 몰아넣는 포학한 자를 공의로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이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1b) 신실하고 진실하게 이루셨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변덕스러운 초로인생(草露人生)의 어쭙잖은 몰골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를 통찰하고 있는 이사야, 그래서 나의 하나님편에 서 있는 이사야의 신앙고백이 아름답다.

   

 

하나님의 잔치(6-9)

   vs

하나님의 심판(10-12)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모든 민족의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라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

   “모압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여호와께서 그 교만으로 인하여 그를 누르실 것이라

    네 성벽의 높은 요새를 헐어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하나님은 심판(1-5,10-12, 24.1-4,6-13,16b-23)을 성취하시면서 동시에 잔치를 준비하신다. 이처럼 심판과 잔치의 대상은 엄격히 구분된다. 이 연회는 동방에서 모든 섬에서 땅 끝에서부터”(24.15-16) 모으신 남은 자’(6-9, 24.6b,13b-16a)-이들은 심판 속에서 구별된 자들이다- “만민을 모든 민족 열방”(6-7)을 위하여 베풀어진다.

이제 죽음을 덮고 있는 휘장이 제하여지며(7), 이로써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8a). 주께서는 모든 눈물과 저들이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8b). 바로 그날에’(9a)의 영광스러움이 오고 있다. 하나님이 배설하신 잔치에 참여한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고백하며, 또한 주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을 말하게 될 것이다(9). 마침내 당신의 백성들을 열방에서 모으시고 저들을 [천국잔치]로 위로하신다.

반면, 심판을 받아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 자들을 모압’(10-12)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모압은 선지자 발람의 예언에 의하면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24.17)는 말씀처럼 결국 메시야를 통한 종말론적 심판을 통해 멸절(滅絶)될 족속이다. 이처럼 심판을 받을 자들의 최후는 명백하다. 심판을 거역하거나 빠져나올 수 있는 자는 없다(1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그렇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은 심판하시며, 또한 남은 자를 구원하신다.

지금 나는 어느 편에서, 어떤 하나님을 만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또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은 또 어떨까를 생각해 본다. 모두가 다 심판을, 동시에 모두가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내 쪽에서 보자면 어차피 나는 어느 한 편에 서 있게 될 것이다. 그날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오늘 내가 어떻게 사는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까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잔치에 참여하게 하시겠다 하시니 황송하고 감사하고 더 없이 행복하다. 내가 나를 봐도 한심하고 무가치한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오죽하겠냐만, 어떻든 기적과도 같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마치 이사야처럼(6.5, 24.16b), 바울처럼(7.7-25) 탄식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말이다. 이것이 아무 공로 없이, 값없이 받은 은혜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이요 고백이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워짐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4.5-8)

 

바울과 그가 인용한 다윗의 고백(32.1-2)이 그토록 아멘인 것은 살아갈수록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나의 의()를 꺼낸들 그게 빛바랜 지 오래고, 설사 당당하게 하나님께 말할 수 있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여지없이 추락하는 럭비공 같은 나의 변화무쌍(變化無雙)한 모습이 드러나기라도 할 때면 그 절망감이란 이루 말 할 수 없다. 이런 경험은 한 두 번이 아니고, 그래서 언제 또 재발할지 겁부터 나는 게 또한 사실이다.

별 수 없는 인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살아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존심 부릴 때가 아니다.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1)이 아니셨다면 나 또한 심판의 대상이 되어 모압처럼 하나님의 손과 발에 밟혀 눌렸을 것이다(10-11). 그리고 어느 순간 땅바닥에 폭삭 주저앉게 되었을 것이다(12). 마치 고목(古木)처럼 말이다.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 나는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서 있다. 그러니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기는 못남을 이제는 좀 버릴 때도 되었다 싶다. 하나님은 이미 나의 못남과 죄악을 물에 새기셨는데, 더욱 십자가 보혈을 통해 다 씻으셨는데 그렇다면 나 또한 이처럼 살아야 되지 않을까.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더 은혜의 빛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하나님을 찬양할 분명한 이유가 이사야처럼 있음으로 인해 거기에 걸맞은 삶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내 영혼의 맑은 가락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함으로써 이사야 옆에 서도 그와 하모니가 되도록 해 보자. 이제는 이사야를 좀 배우고 닮을 때다. 이것이 이사야의 찬양시(讚揚詩)가 내 일상의 영성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목 날짜
요동치는 시대일지라도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합 3.1-19). (1) 2020.07.24
결(結) - 히스기야 이야기4(사 39.1-8) 2020.08.31
왜 악한 자를 사용하십니까?(합 1.12-2.1) 2020.05.28
하박국 맥잡기 2020.05.2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2-20) 2020.05.29
하나님의 선과 공의(합 1.1-11) 2020.05.27
아름다운 포도원 노래(사 27.2-13) 2020.08.15
승(承) - 히스기야 이야기2(사 37.1-38) 2020.08.28
이사야 찬양시.讚揚詩(사 25.1-12) 2020.08.12
‘내 백성’ vs 성령님(사 32.1-20) 2020.08.24
바벨론이여, 합락되었도다!(사 21.1-17) 2020.08.07
이사야 맥잡기 2020.07.01
애굽의 과거 현재 미래(사 19.1-25) 2020.08.04
전(轉) - 히스기야 이야기3(사 38.1-22) 2020.08.29
예루살렘, 그 영욕(榮辱)의 역사(사 29.1-24) 2020.08.18
하나님의 징계가 사랑인 이유(사 28.1-29) 2020.08.15
강해1 - 폭풍행전, 거의 깨지게 된 때까지!(욘 1.1-5) 2020.10.19
두로 망국가.亡國歌(사 23.1-17) 2020.08.10
강해5 - 참된 회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욘 2.1-10[2]). 2020.12.06
유다 + 들포도원 = 심판(사 5.18-30) 2020.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