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의 과거 현재 미래(사 19.1-25)

20200804-05(묵상)

  

 

 

애굽의 과거 현재 미래

Isa. 19.1-25

  

   본문 관찰

 

   애굽에 관한 경고(1-15): 심판

      정치적 몰락(1-4)

      경제적 파탄(5-10)

      정신적 공황(11-15)

   ‘그날에애굽(16-25): 회복

   

 

심판, 회복

 

애굽이 심판을 받는 것은 우상들’(1)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빨리 애굽으로 가시는 중이시다. 하나님의 방문이 애굽의 심판을 목표하고 있기에 저들의 간담이 녹을 것이다. 심판은 크게 세 부분으로 집행될 모양이다. 첫째, 정치적 몰락이다(1-4). 둘째, 경제적 파탄이다(5-10). 셋째, 정신적 공황이다(11-15). 애굽은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으로써 그 미래는 패망으로 끝맺게 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애굽의 미래는 그날에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심판은 애굽을 깨어나게 만든다(16). 애굽은 여호와께 부르짖고,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사 저들을 건지심으로써 애굽인이 하나님을 아는 자리에 나아와 이스라엘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다(20-21,23). 하나님은 내 백성 애굽이여!”(25a)라 부르시는 자리까지 저들을 높이신다.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백성이 없으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부터 영원히 단절된 민족 또한 없다. 이것이 이사야가 보고 있는 복음(福音)이다. 놀랍게도 구약은 이처럼 이미 신약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애굽에 관한 경고(1-15): 심판

 

   [심판]

   하나님(1a) - “여호와께서 애굽에 임하시리니

 

   [몰락]

   이유(1b) -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정치적(4) -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포악한 왕)이 다스리리라

   경제적(5-6) -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나일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정신적(11a) -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

   심판(14) - 여호와께서 그들이 애굽으로 매사에 잘못 가게 하였으니

 

우상숭배는 패망의 씨앗이다. 한 나라가 몰락하게 되는 것을 볼 때 더 그렇다(2). 그럼에도 우상과 무당을 찾아가는 영적 무지가 애처롭기만 하다(3). 길은 오직 하나인데(14.6a)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길을 찾으니 잘 될 리가 없다. 나라는 나라대로 내분에 의한 자중지란(2-3a)과 폭군의 손에 들어가고(4), 경제적으로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5-10). 먹고(5-8) 입는(9) 문제가 엉망이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일이 만무하다(10).

이처럼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 삶의 모든 부분이 다 삐걱거린다.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지도자들 역시 어리석은 제안만을 하고 있다(11). 그러니 애굽은 그릇된 길로 가고 있다(13). 이사야의 조롱 섞인 탄식이 뭘 의미하는지 알 턱이 없다: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고할 것이니라.”(12)

나라와 백성이 이런 꼴인데도 정작 그 원인이 무엇이고, 지금의 이 형국을 벗어날 길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심판임에도 말이다(14). 그러므로 애굽은 지위고하(地位高下)나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무론하고 아무 쓸모가 없이 될 것이다(15). 이것이 하나님 없이 사는 나라와 백성(‘’)의 비극이다. 우상을 숭배하며 살면서 이런 파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대명사일 뿐이다.

   

 

그날에애굽(16-25): 회복

 

   “그날에 애굽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그날에 애굽 땅에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 한 구원자(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이라

    그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드리고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치시고는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그날에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그날에가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된다. 애굽이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아올 날이 있을 것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애굽은 멸하고, 하나님을 찾는 애굽은 회복되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날에의 꿈은 사도행전을 통해서 시작되었고,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종말론적인 세상 끝 날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지금 이사야는 이것이 성취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애굽의 응답을 각각 소개해 준다. 먼저 하나님의 섭리인데 이는 심판에서 점화된다(16). 이것은 곧바로 두려움을 낳고(17), 그런데 이번에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데 이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20b)이다. 애굽을 치시지만 곧바로 어루만져 낫게 하실 것이다(22a). 바로 그날에이방의 경배를 받으실 것이며(23), 또한 애굽이 세상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것이며(24), “내 백성 애굽이여!”(25a)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애굽이 하나님께 무엇으로 응답했기에 이와 같은 놀라운 복음(福音)의 역사가 이루어졌을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두려움(16-17)과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18) 동시에 그날에애굽에 마치 누룩처럼 퍼지게 됨을 통해 애굽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다.

애굽은 이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20-22a)는 자리까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애굽의 매우 적절한 하모니가 빛난다(20).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시고(20b), 애굽을 치심과 동시에 다시 고치시고(22a), 애굽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실 것이다(22b).

종말론적인 그날에의 꿈은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응답이라는 하모니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무엇이 하나님의 진노를 잠재우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깨어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읽어내는 것, 이것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피와 살이 되는 생명의 양식이 된다.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었던 애굽임에도 하나님을 향한 나아감을 용납하셨다면 나에게도 희망은 언제나 남아 있다는 생각,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내 안에 자리를 잡는다.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은 온 세상의 것이 될 것이다(23-25, 3.16). 하나님의 백성됨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가 아닌(1.13)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진리는 이미 구약에서 발견되고 있다. 놀라운 복음의 씨앗이 아닌가. 하나님의 은총을 맛본 자들은 함께하나님을 경배하고(23), ‘더불어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이며(24),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애굽과 앗수르까지도 나의 백성, 나의 손으로 지은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받게 될 것이다(25).

   

 

부스러기 묵상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8)

 

이사야의 비전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계속해서 보고 있는 중이다.

비록 범죄한 가운데 있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내 백성’(5.13, 10.2,24)이다.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은 구원자(메시야)의 싹을 준비하신다(7.14, 9.6-7, 11). 동일한 하나님은 역시 범죄하여 심판의 대상인 애굽마저도 그날에의 은총 안으로 부르신다. 인간이 잘 나고, 뭔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만한 어떤 자격과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다. 인간의 실패마저도 하나님의 은총을 막을 수 없다는 이 기막힌 역설의 복음이 이사야서 안에 촘촘하게 박혀 있다.

하나님을 더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가슴은 숯덩이가 되셨을 텐데, 그럼에도 그분은 영원한 진노로 끝맺지 않으신다. 인간의 실패와 죄악의 끝에서도 구원의 새노래를 당신의 사랑과 십자가의 보혈로 다시 소생시키신다. 인간이 누구인가에 끝없이 절망하다가도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인하여 더없이 희망의 증거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만이 희망의 증거이시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넘어 마침내 애굽에까지 그 깃발이 펄럭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이 절망의 세대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시다면 마른 막대기보다 못한 나 또한 당연히 그러해야함을 간절한 마음으로 붙든다. 그럼에도 알량한 내 자아는 애굽이 그런 은혜를 받기 위해 내 밀었던 부스러기가 있었지 않은가를 기웃거리고 싶어한다. ! 얼마나 사악한 죄의 씨앗인가. 조금만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옛사람의 못된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아직 남은 죄의 뿌리를 어찌할까. 은혜 앞에 죄로 범벅된 나의 알량한 목록표를 정리하고 있는 나의 불의를 어찌한단 말인가. 애굽마저도 은혜 앞에 깨어나고 있는 이 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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