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주의보(사 8.1-10)

20200720(묵상)

  

 

 

홍수주의보

Isa. 8.1-10

  

   본문 관찰

 

   마헬살랄하스바스

   앗수르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이 백성이 버리고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주 내가 앗수르로 뒤덮을 것이라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늑하리라

   

 

마헬살라하스바스(Mahershalalhasbaz)

 

경고의 나팔은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하지만 임마누엘’(7.14)의 예언 앞에서도 아하스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아들들의 이름을 통해서까지 말씀하신다(7.3 8.1-4). 그는 비록 다윗의 후예이기는 하지만 유다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배도자(背道者), 하나님의 소유된 나라의 왕으로 세워졌음에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던 거의 불신자(不信者)에 가까운 죄인이다(왕하 16, 대하 28).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너무도 많은 은총을 부어주셨다.

그럼에도 그는 깨닫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고 사악한 악()으로 도전한다. 그래도 이사야를 통해서, 그의 아들들을 통해서, 당신의 말씀과 사랑으로 그를 찾아오신다. 하지만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울 정도다. 하지만 기회의 문이 닫히면 심판의 문이 열린다.

   

 

이름 억세스(1-4)

 

하나님은 이사야의 아들들을 통해서 아하스에게 표증을 보여주신다. 이사야의 문학적 터치가 빛난다. 당근과 채찍의 절묘한 조화가 7-8장의 두 지평을 이룬다. 그는 아들의 이름에서까지 유다의 희망을 찾고 있었고, 그것만큼 비록 심판의 메시지를 외칠지라도 다시 회복의 그림을 유다의 하늘에 펼쳐 보임으로써 심판마저도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숨은 의도하심이 있는 메시지임을 분명히 한다.

 

스알야숩(Shear-jashub, 7.3)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는 이름의 뜻을 가진 이사야(‘그가 구원하신다’)의 큰아들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을 두려워하는 아하스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이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7.4-7)는 하나님의 사인(sign) 역할을 하게 된다. 패역한 왕 아하스가 자신의 죄악과 과오를 뉘우치고 하나님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값없이 주어졌다. 하지만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하여 자신과 유다의 위기를 넘겨보려고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는 하나님의 사인을 볼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한 영적 소경이었다(6.9-10).

 

마헬살랄하스바스(Mahershalalhasbaz)

아하스가 우군(友軍)으로 여겼던 앗수르를 하나님은 적군(敵軍)으로 만드셔서 아하스에게 보내실 것을 말씀하신다(7.17- ): “여호와께서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17) 아하스가 스알야숩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자 앗수르라는 넓은 문을 통해 심판의 파리와 벌(18), 그리고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를 온 유다 위를 덮게 만드실 것을 선언하신다(23-24a). 그리고 이를 통용 문자’(1)노략이 속히 올 것이고 희생이 임박했다.”는 이름의 뜻을 가진 마헬살라하스바스라 쓰게 하시고 두 증인 제사장을 세워 증거하게 하신다(2). 그리고 이사야의 둘째아들이 태어나자 하나님은 이 아들에게 그 이름을 쓰게 하신다(3). 이 예언대로 불과 얼마 후에 성취된다.

   

 

앗수르 채찍(5-8a)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7.14b)

 

이 정도의 설교를 들었으면 좀 변화되어야 하는 게 맞다. 그것도 설교자가 이사야 아닌가. 자신의 할아버지 웃시야왕 때부터 아버지 요담왕을 거쳐 20년 이상을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서 유다에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그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전혀 달리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답답하다 못해 아쉽다. 그는 아직도 여호와를 버리고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르신과 르말리야) 사이에서 기뻐하느니라로 머뭇거리고 있다(6; 7.4). 그러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아람을 좋아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반대로 대답할 정도다(7.12). 그러니 그러므로’(7a)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심판의 화살이 아하스의 귀를 때린다.

천천히 흐르는물과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를 대조시킴으로써 심판의 파도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짐작케 한다(6 7). 이것은 앗수르왕의 침략을 통한 심판을 뜻하는데 물이 차고 넘쳐 밀려들고, 소용돌이치면서 흘러 휩쓸 듯이 그렇게 유다를 징계하실 것이라는 것을 비유하신다.

마침내 앗수르 채찍소리가 유다의 하늘에 진동할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물이 유다의 목에까지만 찰 것이라는 점이다(8a). 그렇다면 노아홍수처럼 온 땅을 덮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하나님은 죄를 벌하시지만 그것이 곧바로 유다의 종말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심으로써 심판과 진노의 집행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모습은 아니심을 분명히 하신다. 비록 진노의 채찍을 손에 드셨지만 하나님의 가슴은 여전히 사랑으로 따뜻하다.

   

 

부스러기 묵상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날개를 펴셔서 이 땅을 보호하신다.”(8b, 표준새번역)

 

앗수르 채찍이 온 유다를 덮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임마누엘이시다.

마치 자녀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 회초리를 들 때에도 여전히 그는 부모이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심판이 집행될 때에는 유다를 나 몰라라 하시고, 그럴 때에는 유다의 하나님이 아니셨다가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다시 하나님이 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 시작부터 끝까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의 죄를 벌하시지만 그럴 때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간과하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신다. 비록 심판이 집행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가슴에는 이미 사랑이 시작되고, 다시 치료하시며 싸매시는 은혜의 빛을 비추신다.

심판이 집행되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유다와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일을 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두 모습(속성)이 기막히게 교차하는 지점에 서 계신다.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회복의 은혜(1.8-9,18,25-27, 2.2-4, 4.2-6, 8.8b)를 박아 놓으셨다. 따라서 과정적 심판은 최종적 파국과는 무관하다. 그러기에 이방 나라들이 유다 흔들기를 시도하여 전쟁 준비를 하고, 전략과 계획을 세울지라도 결국은 패망과 실패를 이루는 것 밖에는 한 일이 없을 것이다(9-10).

하지만 하나님이 아무리 그러실지라도 인생들은 언제까지 이러한 죄의 악순환을 계속할 것인지 걱정스럽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소 잃기 전에 미리미리 외양간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현명한 생활이라 싶기 때문이다. 임마누엘의 찬란한 빛 앞에서도 이처럼 죄꽈배기’(죄바라기)로 살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임을 발견하는 것, 참 새삼스럽다.

주님은 오늘도 경고의 피켓을 드신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달리다가는 필름이 끊어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주신다.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빨간불은 나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나를 골탕 먹이시기 위한 하나님의 심술이 아니라는 매우 기초적인 영적 공식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또한 파란불 역시 내 마음대로 달리는 것을 보장하는 비장의 카드가 아님을 생각해 본다. 좌회전 화살표가 있고, 우회전 화살표가 있고, 무엇보다 전혀 다른 기능과 성질의 브레이크와 가속기(accelerator)가 동시에 주어졌음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것은 경고판만이 아니라 임마누엘이라는 소망의 깃발이 하나님과 함께 펄럭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이 둘의 의미와 목적을 놓치지 않을 텐데, 좀 더 하늘을 높이 날면 저 멀리 나부끼는 임마누엘을 볼 수 있을 텐데, 해서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과 죄 때문에 이런 복()된 빛이 어둠에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고판 앞에 서 있는 묵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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