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포도원의 종말1(사 5.8-17)

20200715(묵상)

  

 

 

들포도원의 종말(1)

Isa. 5.8-17

  

   본문 관찰

   유다 왕 웃시야 시대에(1.1a)

   화 있을진저(8-12): 영적 무지

     -물질주의(8-10)

     -향락주의(11-12)

   그러므로(13-17): 포로기 예고

     -유다: 파멸 & 파국(13-15)

     -하나님: 높임 & 영광(16)

     -유다: 역전(17)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6.1a)

   

 

화 있을진저 유다여!

 

심판에는 다 이유가 있다(1-7 8-12).

물질(8-10)과 쾌락(11-12)은 언제나 인생을 추락하게 하는 두 날개와 같다. 이 죄의 열매들은 결과적으로 유다로 하여금 들포도라는 판정을 받게 만든 요인이었다. 하나님의 포도원이 인간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이라는 욕망의 경연장이 되어 버린 현실이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의 나락으로 치닫게 만든다. 이게 내가 사랑하는 자’(1)내 백성’(13)의 실상이라니 가슴이 아프다. 왕은 교만으로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서 죽어가고 있고, 사회적 강자들은 더 쥐고, 늘리고, 파이를 키우겠다며 아우성이다. 나라가 송두리째 부도가 날 지경인데 이렇듯 영적 무지(13a)에 빠져 휘청거리고 있다. 선지자의 외침은 뭘 의미할까.

   

 

화 있을진저(8-12): 영적 무지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땅 한 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8)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독한 술을 찾는 사람과, 주께서 하신 일에는 관심이 없고,

    주께서 손수 이루시는 일도 거들떠보지를 않는다.”(11-12, 표준새번역)

 

하나님이 맺기를 원하시는 공평과 의로움은 사라지고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겠다는 탐욕이 지배하는 유다가 되어 버렸다(8). 원래 토지 거래는 금지되었으며 혹 가난 때문에 팔았을 경우에는 가까운 근족(친척, 친족)이 이를 값을 지불하고서 물러야 그 기업이 회복되도록 하는 율법(25.23-28)은 심각하게 도전 받고 있었다. 전답(田畓)을 자기 소유로 늘려나가고,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호화롭게 지내는 졸부들의 행진이 하나님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율법이 시행되어야 할 땅이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을 거부했으니 거기서 맺는 결실이 들포도일 수 밖에 없다. 황폐함과 적막함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고(9), 소출(소득)은 거의 1/10 수준으로 줄어듦으로써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10). 무릇 과욕스럽고 추악한 탐욕은 어느 날 아침 안개처럼 소리 없이 그의 손을 떠나는 법이다.

재앙 예고는 하나 더 있다. 조석으로 술에 찌든 삶을 살면서 풍악을 울리는 연회(향락)에 여념이 없는 생활을 사는 자,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이 울려 퍼지고 있다(11-12). 영성을 동반하지 않은 물질은 반드시 쾌락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쉽게 얻은 것은 또한 쉽게 떠난다. 복의 근원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까 그 출구 역시 세상의 일회용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생활을 하며 사는 자들이 있다는 그분의 준엄한 지적이 나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13-17): 포로기 예고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주릴 것이요 목마를 것이며,

    음부가 그 입을 벌린즉 거기 빠질 것이라.”(13-14)

 

마침내 사로잡힐 것에 대한 임박한 심판이 조각구름처럼 예고되기 시작한다(13 39:6). 더 이상 포도원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있지 않다(5-6,13- ). 죄에 따른 자업자득(自業自得, 6.7)이다. 죄 때문에 당하는 고통마저도 없게 해 달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말이 필요 없는 주제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많은 고난과 시련은 그 원인이 죄악의 씨에서 비롯된 부끄러운 열매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 유다의 미래가 이처럼 희망 없는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참포도원을 들포도원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를 하나님은 영적 무지라 하신다(13a). 그 결과 마침내 포로기가 올 것이며, 주리고 목마르고(13), 음부에까지 낮아지는 (14-15) 참담한 몰락이 예고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유다의 이런 꼴스런 역사의 흐름 가운데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분은 여전히 공평과 공의로우신 분으로 높임을 받으신다(16). 하나님은 인생에 도움을 받으시거나 의지하지 않으시고 홀로 거룩하신 분으로 기림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황무한 유다의 폐허 속에서 어린 양’(17)이 다시 자라는 푸른 초장에서 풀을 뜯을 것을 말씀하심으로써 다시금 아득하게나마 희망의 불씨를 살리실 것임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마치 20세 미만의 광야세대(2-1.5)들로 더불어 약속의 땅의 희망을 기약하셨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의 세대와는 더 이상 영광스러움을 같이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 같다. 한 세대가 가고, 그리고 새 세대가 오게 될 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9.17) 담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의 포도원에 심겼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참포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참으로 파괴력이 큰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성도가 되는 것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듯, 신앙의 년 수가 쌓여가는 것으로 영적 성장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듯, 직분을 맡는 것이 상급과 복의 넓이와 깊이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듯, 성경공부를 단계별로 이수한다고 해서 영성이 깊어지거나 성숙이라는 열매가 맺게 되는 것이 아니듯, 하나님의 포도원에 뿌리를 내렸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복()된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신화와 같은 것이다.

부도난 포도원을 보면서 그걸 수습할 아무런 능력 또한 없는 유다의 가난함을 동시에 보고 있다. ‘포도원의 망대’(1.8)같이 겨우 흔적만 남아 있는 유다, 이것이 무엇 때문에 얻은 결과인지를 잊지 않아야겠다. 나의 내일이 이 모습이 되지 않을 것이란 아무 보장이 없질 않은가. 나 역시 하나님의 법을 떠나 내 마음대로 포도원을 이용하며 산다면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이때에야 비로소 울고불고 난리법석을 떠는 추한 모습으로 징징거리지 말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돌림노래처럼 부르는 인생이라면 떡잎부터 알아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빼앗긴 뜰에도 봄은 오는가? 저 멀리 어린 양(17)이 뛰노는 희미한 그림자에게서 아직 숨 쉬는 그 무엇을 보고 싶어 그쪽으로 눈을 돌리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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