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의 노래: 애가(愛歌)에서 비가(悲歌)까지(사 5.1-7)

20200715(묵상)

   

 

 

포도원의 노래: 애가(愛歌)에서 비가(悲歌)까지

Isa. 5.1-7

  

   본문 관찰

 

   포도원(1-2)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파서 제하고 심었도다

     세웠고 팠도다

   하나님의 노래(3-6)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먹힘을 당하게 짓밟히게 할 것이요

     황폐하게 하리니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해 석(7)

     정의(mishipath)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mispach)이요

     공의(chedakah)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cheakah)이었도다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아무래도 하나님이 생각하시기에 안 되겠다 싶으셨나 보다.

4장의 멜로디가 5장으로 넘어오면서 돌연 무거운 비가(悲歌)로 다시 바뀌기 때문에 든 생각이다. 이스라엘이라는 포도원(3.14, 27.2-5; 80.8-18, 12.10, 10.1, 20.1)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이 좌절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사야의 노래는 다시 유다의 죄악을 공포하던 분위기(1.1-4.1)로 다시 돌림노래 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이렇듯 허탈해하시는 이유는 뭘까. 이스라엘이라는 포도원, 유다라는 포도나무, 그리고 농부이신 하나님, 그런데 결과는 참담할 정도로 실망스럽다(7). 그렇다면 지금 유다는 4장의 희망만으로 안심하고서 긴장을 풀 그런 때가 아니다. 아직 하나님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포도원 노래가 여러모로 심상치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

   

 

참포도원

 

유다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열심이 눈에 보인다. 하나님은 유다를 가리켜 내 포도원이라, 그것도 사랑하는 자, 그리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시면서 포도원을 가꾸신다(1). 하나님은 친히 손으로 포도원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시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다(2a).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망대’(1.8)를 세우고 그곳에 포도주를 짜는 곳도 준비를 해 놓으시고 극상품 포도맺기를 기다리셨다(2b). 이것이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하심이었다(7a).

유다 언덕에 아침의 햇살이 찬란하게 비추이는 만큼 희망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 부르는 하나님의 애가(愛歌)가 온 유다의 뜨락을 적시게 만드는 것이 되기도 했다. 하나님은 유다를 당신의 기뻐하시는 나무’(7b)라는 애칭까지 붙여주시면서 모든 애정을 다 부으셨다. 하나님의 열심과 그분의 마음을 만난다(9.7b).

   

 

들포도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일까. 하나님의 꿈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들포도가 되어 돌아왔다. 가슴이 무너지는 비통에 잠기신 하나님의 모습을 만난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 판단하여 볼 것을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떨리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3). 이것은 배신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옛말처럼 이것은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최선을 다 했는데 ’(4a) 하시며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고개를 저으시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만난다. 이것을 보면서 내가 지금 이처럼 살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실망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싶어 바짝 긴장한다.

들포도원을 향한 서릿발 같은 하나님의 질책이 뒤따른다.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담을 허물어서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시겠다 하신다(5). 참포도원은 황무지가 되고 찔레와 가시나무만 자라게 하실 것이며, 비도 그치게 만들겠다고 선언하신다(6). 그 이유는 정의(선한 일, mishipath)을 기대했건만 포학(살육, mispach), 공의(옳은 일, chedakah) 대신에 불의한 유다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cheakah)뿐이다(7). 이것이 들포도에 비유된 유다의 모습이다. 이렇게 해서 유다는 포도원의 망대같이 겨우 남았도다.”(1.8)의 꼴로 참담하게 추락한 것이고, 그래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메시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찌 됨인고.”(4b)

 

들포도를 바라보시며 한숨 쉬시는 하나님이 자꾸 어른거린다.

하나님께 받을 것만을 생각하고 구하던 것이 좀 지나치다 싶어 반대로 내가 드린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혹시 내가 삶으로, 생각으로, 말로, 또한 사역을 통해서 맺었거나 주께 드린 것들이 유다처럼 죄악의 열매에 가까운 최하위 등급의 것들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나는 하나님의 포도나무라고 떵떵거리고 있는 것은 또한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달란트의 비유(25.11-30)에서처럼 주님은 맡긴 것은 반드시 다시 찾으신다. 당신의 포도원을 가꾸기 위해 빠뜨린 것 하나 없이, 그냥 적당히 넘어간 일 하나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하셨다(2,4a). 이러자고 하나님이 유다라는 포도원을 경영하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유다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하게도 가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하고, 많이 누리는 것도 다 좋다. 이왕이면 둘보다는 다섯을 맡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25.21,23)한 것을 크게 보시는 분이시다. 유다가 최고(最高)의 포도원이 된 것은 기쁜 일이고 복 받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만큼 책임과 사명이 있음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유다는 이렇듯 과거가 현재보다 더 좋았다. 하지만 어제의 부요함이 오늘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아무리 지난 세월이 아름답고 화려할지라도 지금이 가난하고 추하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유다가 지금 그렇다. 하나님의 기대와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았으나 결국은 파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며 무서운 심판의 도구가 되어 있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최상의 조건에서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 유다, 나는 하나님의 기대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 나 또한 유다처럼 과거가 현재와 미래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추락하고 있는 중은 아닌지, 나를 불러 쓰시고 계신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나도 마치 건전지처럼 점점 그 기운이 약해지면서 이미 받은 바 그 무수한 은혜와 복을 유지하기는커녕 포도원의 망대’(1.8)만 남은바 된 유다처럼 빈털터리가 되어 하나님의 법정에 고발된 들포도원은 아닌지 내 영혼의 창()을 검사해 본다. 이사야만큼이나 머리가 지근지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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