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因果應報) 방정식(사 3.1-15)

20200713(묵상)

  

 

 

인과응보(因果應報) 방정식

Isa. 3.1-15

  

   본문 관찰

 

   유다의 오늘(1-7)

   유다의 어제(8-12)

   하나님의 개입(13-15)

   

 

나의 백성이여!

 

예루살렘과 유다를 향해 그렇게도 하실 말씀이 많으셨을까?

유다가 비록 사죄의 은총(1.18) 안에 있다 할지라도 죄에 따른 형벌은 피할 수 없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하나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먼저 유다의 현실(1-7)과 이처럼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과거(8-12)를 진단하신다. 그런 다음 그 백성을 심판하시려고 법정에 들어와 앉으시고, 피고석에 유다를 세워 놓고 재판을 시작하신다(13-14).

과연 다시 추궁하시는 유다의 죄목(罪目)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이토록 이런 문제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시는가? 얼른 생각하기에 우리들이 크게 생각하는 종교적인 죄상들이 아니라는데 의아스러움을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그만큼 종교적인 죄가 가장 무섭다고 여기고 싶은 우리의 생각은 과녁을 벗어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라 하시는 것을 우리는 아니라 생각하며 언행하며 사는 것 아닐까. 나 역시 나의 삶을 어제-오늘-내일에 평면화 시켜서 드려다 보아야 할 시간이다.

   

 

유다의 오늘(1-7)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며”(1-3)

   “아이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4)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5)

   “너희는 나를 백성의 통치자로 삼지 말라.”(6-7)

 

하나님은 먼저 죄의 보급로를 차단하시겠다 하신다. 죄가 들어오고 만들어지는 길목과 바이러스를 퇴치하시겠다는 하나님, 여기 1-3절에 목록화 되어 있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결국은 죄가 들어오는 통로(입구)였다는 얘기인데, 순간 머리가 서는 느낌이다. 유다로 하여금 유다 되게 하시기 위해서 세운 여러 직책(직분, 사명)들이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에 쓰이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어서다. 결국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하나님도 유다를 아수라장으로 방치하시겠다(4-7) 하신다. 로마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유기, 1.24-32). 사람이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것만큼 추한 것이 없는데, 그것도 함량미달인 모습으로 서로들 치고 싸우는 것은 더욱 그렇지 않은가.

   

 

유다의 어제(8-12)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8)

   “그들의 죄를 말해 주고 숨기지 못함이 소돔과 같으니 .”(9)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12)

   “네 인도자들이 너를 유혹하여 .”(12)

 

이처럼 혼돈의 늪에 빠진 유다로 추락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백성들 끼리의 아귀다툼은 곧바로 하나님께 불손한 언행(言行)이 된다. ‘인통(人通)하면 신통’(神通, 16.19)인데 그 반대이니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판정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죄는 숨길 수가 없다. 죄와 더불어 안색부터 변했던 가인처럼(4.5-7) 죄는 하나님의 색깔과 반대로 나타난다(9a). 이 정도 되면 죄를 숨기지 못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9)는 주님의 지적처럼 죄를 농담으로 취급할 정도다. 그러니 아이들이나 부녀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들이 학대와 심판과 죄로 가는 길을 안내하며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어제의 유다가 심은 것이고 그것이 오늘의 유다에 가시와 엉겅퀴로 자라 유다는 지금 쑥대밭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개입(13-15)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13)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14)

     -포도원을 삼킨 자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이곳이 하나님의 다스림과 영광이 있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포도원의 망대’(1.8) 뿐이다. 얼마나 부끄럽고 초라한 몰골인가. 그러니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재판하시기 위해서 법정에 들어 오사 앉으시는 것 아닌가(13). 심판의 대상이 된 하나님의 포도원을 삼킨 자’(적대적 M&A, 14b) 유다, 참으로 눈물겹다. 특별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유다 온 백성들이 죄 아래로 추락했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 유다를 이렇게 만든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법정에 세워 놓고 재판을 시작하신다는 점이다(14a).

한편 이들의 죄목은 다름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치 맷돌질하듯 짓뭉개면서 저들의 것을 약탈하고 짓밟아 자신들의 소유를 채웠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14b-15). 어느 시대나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지배구조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한답시고 제물(예물)이라 구별하여 드렸으니(1.11-14) 얼마나 가증하고 추악한 범죄 행위인지 생각만 해도 씁쓸하다.

   

 

부스러기 묵상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12a)

   “내 백성이여!”(12b)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15a)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 내 백성이다.

놀랍다. 유다는 이미 하나님의 가족됨을 파기하고 말았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와 벗삼아 초라한 싱글로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은 변함없이 내 백성이라 하신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이사야까지 보내사 짝사랑에 가까운 구애(求愛)를 시도하신다.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어야 할까 싶다.

내 생각 같아서는 이렇게 하면 버릇만 나빠질 것 같은데, 물에서 건져주면 보따리까지 내 놓으라고 할 판인데, 언제나 당근과 채찍을 동일하게 사용하시니까 이제는 [늑대소년]처럼 면역이 되어 버린 것 같은데, 이래봐야 메뚜기 한 철처럼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 버릴 텐데도 -하나님이 이를 더 잘 아시는 분 아닌가?- 손해 보면 그러시겠다는 식으로, 그래서 당신의 마음은 먹물처럼 검게 되어도 상관하지 않으시겠단다. 내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분이시다.

누군가 그랬지, ‘머리가 검은 짐승 가운데 은혜를 모르는 동물은 아마 사람 뿐일 것이다라고. 아마도 맞는 것 같다.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셔도 언행(言行, 8)은 물론 죄를 자랑스럽게 드러내 놓고 말하며, 숨기려 하지도 않는 것으로 주신 것을 사용할 줄 모르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다르게 살아야 하는데, 어제가 그 모양이니 오늘도 어제의 연장전일 수 밖에. 심은 대로 거두고 있는 유다의 모습이 어쩌면 나의 몰골인 것 같아 연민의 정을 느낀다.

60년에 가깝게 살아도 별 달라지지 않은 나에게서, 더 자존심 상하는 것은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나의 못된 심령을 바라보면서 긴 한숨을 내쉰다. 바울의 탄식(7.7-25)이 메들리처럼 반복되는 것으로 자위하고 있기에는 너무 중증(重症)이다. 나 또한 하나님의 법정에 소환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경고의 나팔이 내 마음의 창을 때릴 이 위기의 때가 곧 기회다. 이사야까지 소명자로 부르셨는데 토끼처럼 낮잠이나 자고 있다가는 자칫 게임이 이 상태로 끝날지도 모른다. 이사야가 토해 내는 말씀의 명주실을 받아 주께서 기대하시는 작품을 만들 때다. 지금은 뽕잎따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주는 나에게 명주실을 요구하고 계신다. 유다를 보며 나는 보는 이사야 묵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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