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으로 살면서 예배한다고?(사 1.10-17)

20200710(묵상)

  

 

 

옛사람으로 살면서 예배한다고?

Isa. 1.10-17

  

   본문 관찰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

   헛된 제물을 가증히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는 것을

   싫어하나니 무거운 짐이라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듣지 아니하리니

   씻으며 깨끗케 하여 버리며 그치고

   배우며 구하며 도와 주며 신원하며 변호하라

 

 

소돔&고모라 바이러스

 

유다가 소돔과 고모라로 비유되고 있음이 좀 긴장스럽다(10).

하나님은 이처럼 직격탄을 날린다. 이것은 만일 유다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는 일을 거부한다면 소돔방정식을 대입하실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말씀의 법에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심으로써 비록 답지 못한 자식’(2,4)이지만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부성(父性)을 놓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유다의 이중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신다(11-14). 그리고 그것이 몰고 온 결과(15)가 무엇이며, 또한 그렇다면 그것으로부터의 분리를 위한 해법(16-17)을 제시하시는 것으로 유다 바이러스(virus)를 퇴치하기 시작하신다.

 

 

두 얼굴의 유다(10-14)

 

하나님이 가장 가슴 아파 하신 것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온 몸이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옛 생활(성품, 모습)로 돌아가 버린 그대로의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에만 열심을 내고 있는 유다를 보시면서다. , 유다 백성들은 심령은 죄로 가득하게 병들었는데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꾸미고서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만을 고집했다. 하나님이 제사(예배)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이를 받으시는 것과는 상관이 없이 말이다. 하나님은 이를 두고 무익하다(11a), 기뻐하지 않는다(11b), 헛되다(13a), 가증스럽다(13b), 견딜 수가 없다(13b), 싫어한다(14a), 짐스럽다(14b) 하시며 이러한 종교적인 언행은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12b) 선언하신다.

어찌 유다만 일까 싶다. 하나님의 예배에 세상의 예배자들로 가득한 모습, 이는 지금 우리시대의 교회와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고 무엇인가. 생활과 예전의 분리는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악인가 조차도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파괴력이 있어 보인다. 끊임없는 일상의 제사(예배, 11), 안식일과 월삭(13), 그리고 절기마다 대회(14)로 모이는 성회가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악은 이에 비례하여 쌓여만 간다. 이게 유다의 현주소다. 주일과 평일의 분리, 예배와 삶의 이중성, 종교적인 모양 만들기와 생활하기의 구분,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역시 그럴 것이라는 생각, 해 본다. 혹 나 역시도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으로 예배와 예배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의 허물과 죄가 늘어날수록 그것을 종교적인 행위로서 감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못난 죄의 근성들이 내 영혼 깊은 곳에도 어김없이 침전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유다의 종교 행위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보고 계시듯이 지금 나의 예배 행위와 삶의 전부를 살피고 계신다. 두렵다. 나의 이중성을 하나님 앞에서도 감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파렴치함, 그것을 종교적인 수다스러움으로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죄에 깊숙하게 오염되어 버린 내 가난한 영혼이 시리도록 아파옴을 어찌할까. 내가 나를 보아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하나님이 살피셨으니 이를 어찌할까.

   

 

하나님의 처방전(15-17)

 

놀라는 것은 세 가지다. 먼저 나의 죄에 놀라고, 하나님의 집요하심에 놀라고, 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으로 정리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심으로 나의 나됨을 밝히시고 계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건 아닌데싶은 모습으로 자꾸만 고집을 피우는 자녀를 바라다보는 부모의 심정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나의 자행자지(自行自止) 하는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고 다시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에게서 그분의 쓰라린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어냄만큼 부끄러움과 황송함이 교차되면서 나 역시 서럽도록 아프고 눈물겹다. 하나님은 소돔으로 유다를 직행시키지 않으시고 눈을 가리우고 듣지 아니”(15)하는 것으로 반응하셨다.

그 결과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 하늘로 가는 길이 막혔고, 하늘의 음성을 듣는 길이 차단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비극 아닌가. 죄는 이렇듯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이렇게 해서 차단되었다. 죄가 죄를 낳는 끝없는 죄악의 악순환은 이렇게 무한 반복되고 있다. 인간은 죄를 죄로 자각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셈이다. 무대는 택하신 족속인 이스라엘이다. 하나님 없는 이방이 아니다. 모든 종교적인 제도와 이를 위한 형식들이 다 존재하고 있지만 유다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처참한 몰골을 하고서 침몰해가고 있다. 과연 희망은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의 등장은 극적이다.

 

   “씻으며 깨끗하게 하여 버리며 그치고”(16)

   “배우며 구하며 도와 주며 신원하며 변호하라.”(17)

 

이사야는 불순종이라는 뱀에 물려 죽어 가는 그 옛날 광야의 백성들처럼 살아가는 유대를 향해 외친다. 죄로 물든 죽음의 현실만을 보지 않고, 유다 백성들의 눈을 저 높이 장대에 달린 생명의 놋뱀을 바라보도록 설교하기 시작한다(16- ). 겨우 조금 남은 포도원의 망대’(8)에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42.3)하시는 십자가의 숨결을 들려준다. 희망은 있다. 유대를 향한 진단과 그에 따른 저들의 결과는 비록 비극적이지만 그러나 그것 자체가 파국을 향한 수순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처방전을 써 내려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죽을 병은 아니구나 싶다. 하나님의 진노가 최종적인 선고가 아니기에 말이다.

   

 

부스러기 묵상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5.24)

 

유다는 해법(16-17)을 받았으나 문제는 그것을 성취할 능력은 없다.

여전히 하나님과 인간의 넘을 수 없는 간격(분리, 단절)은 크기만 하다. 그래서 18절 이하에서 보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개입이 언약으로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죄행(罪行, 16)은 그치고 선행(善行, 17)은 회복하라 신다.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담을 헐어내고 그것이 진짜임을 사람과의 삶에서 증명해 보이기를 촉구하신다. 죄의 짐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해결해 보겠다는 것은 편견임을 알리신다.

죄로부터의 단절은 이웃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주님의 처방이야말로 복음이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이 이웃을 부당하게 대우한다는 것을 묵과하지 않는다(10-14 15-17). 오히려 이웃과의 막힘이 하나님과의 단절을 더 깊고 크게 했음을 이사야는 결코 놓치지 않는다(15-17 10-14). 이사야는 이미 신약의 복음에로의 삶을 자신의 시대 앞으로 끌어 당겨서 유대 백성들에게 제시한다. 그래서 이사야서에는 예수님의 그림자가 유독 풍부하게 그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딘지 모르게 하나님의 진노의 모습에서 그분 가슴 깊게 자리한 사랑의 모습을 훔쳐보게 된다. 화를 내실만큼 안타까운 심정으로 유다를 품으시는 주님, 진노하시는 모습을 들키시기 싫으셨는지 선지자를 대신 보내셔서 당신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시는 주님, ‘겨우’(8)조금’(9)에서 이미 눈치를 챘지만 이렇게 빨리 처방(16- )을 공개하실 지에 대해서는 미처 몰랐다. 진노 속에서마저 하나님의 성품을 찾아낸다. 아무 대책 없이 무대포식의 화냄으로 일관하는 나의 못남을 하나님의 모습에서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채찍과 당근의 절묘한 조화가 문제 곁에 있는 해답을 좀 더 바르고 아름답게 보게 만드는 것임을 본문을 품고 생각해 보는 묵상이다.

한편 16-17절의 약자들을 돌아보는 일에 실패(무관심)하면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예배 역시 받지 않으실 수도 있다. 이는 누가 대신해 줄 일이 아닌 내 스스로넘어야 할 아직 남은 숙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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