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2-20)

20200529-30(묵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Hab. 2.2-20

 

 

본문 관찰

   

하박국의 질문 vs 하나님의 대답(1.2-2.20)

   B' 대답: 심판 받을 갈대아(2.2-20)

     답변(2-4)

     ① 화 있을진저: 다른 민족들을 약탈하는 자들에게(5-8)

     ② 화 있을진저: 이웃을 멸하며 자신의 안전만을 추구하는 자들에게(9-11)

     ③ 화 있을진저: 피와 불의로 성읍을 건축하는 자들에게(12-14)

     ④ 화 있을진저: 군사력에 의존하여 이웃을 탄압하는 자들에게(15-17)

     ⑤ 화 있을진저: 우상숭배하는 자들에게(18-20)

 

 

이신칭의(以信稱義)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2a)

     하나님 -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반드시 응하리라.”(3)

     유다(하박국)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b)

 

선지자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이어진다(1.12-17 2.2- ).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를 들어 택하신 유다를 심판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하실 일인가?’라며 거침없이 치고 들어오는 하박국을 향해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반드시 응하리라.”(3)는 말씀과 함께 찾아오신다. 핵심은 이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선언이다(2-4).

하박국은 여전히 이것이 하나님의 의()로움에서 볼 때 어찌 가능한가? 라며 하나님의 답을 재차 요구하고 있다(1). 하지만 하나님은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남왕국 유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4절이다: ‘그때까지 기다리라!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을 신뢰하고 끝까지 견디고 기다리라. 다만 유다가 할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처럼 의인은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의인은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다. 마침내 응답이 올 것을 믿어야 한다.

 

 

화 있을진저(5-20):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2a)

 

놀라는 것은 바벨론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점이다(2.2-20).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바벨론을 향해서는 심판은,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구약에 심긴 복음 중의 복음인 24절을 말씀하신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다면 이어지는 다섯 가지 화 있을진저와 다르게 사는 것,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길은 세상이 바벨론처럼 화 있을진저로 요동칠지라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b)는 말씀대로 사는 것에 있다. 하나님의 심판인가, 하나님의 은혜인가는 보이는 현상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믿음이다. 이 기준은 유다만이 아니라 바벨론에게도 엄격하게 제시된다. , 그럼 반드시 응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화 있을진저: 다른 민족들을 약탈하는 자들에게(5-8)

마침내 바벨론 역시 심은대로 거둘 것이다. 악인은 자기 죄에 의해 반드시 무너진다. 이것이 악인의 결말이다. 한 때 세상을 지배하며 호화롭고 영광스러운 풍요를 누렸지만(1.15-17) 이것은 길지 못한다. 징조가 나타나더니(5) 마침내 바벨론을 억누르고 괴롭히고 노략할 나라들이 일어나 바벨론의 상황이 역전될 것이라 하신다.

 

화 있을진저: 이웃을 멸하며 자신의 안전만을 추구하는 자들에게(9-11)

악인은 피할 곳이 없다. 견고한 성을 쌓고서 안전하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이처럼 자기만 살겠다고, 그러면서 이웃사랑을 외면하며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신다. 그럼 무엇인가. 심판이다. 인간이 쌓은 게 바벨론을 지켜줄리 만무하다.

 

화 있을진저: 피와 불의로 성읍을 건축하는 자들에게(12-14)

너희들이 하는 일은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헛된 것이라 하신다(13). 피로 세워진 제국은 결국 피로 망한다. 건축된 성읍과 화려한 궁전은 이처럼 전쟁과 약탈을 통해 빼앗은 것들로 세워진 것이다.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겠는가. 그러니 이처럼 건설한 성읍이 바벨론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겉만 화려하고 죄악과 탐욕에 물든 인간이 쌓은 성이 얼마나 허망한가.

놀라운 것은 심판 이후에야 열방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14). 참 소름끼치듯 절묘하지 않은가. 심판 이전에 그리했다면 좋았을 것을... 노아의 방주의 문이 닫히고, 혼인잔치의 문이 닫히고 난 이후의 사람들의 꼴과 어찌 그리 같은가.

 

화 있을찐저: 군사력에 의존하여 이웃을 탄압하는 자들에게(15-17)

바벨론이 다른 나라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듯이 저들 역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먹고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15-16). 불의와 약탈로 이루어진 것은 추시로 드러날 뿐이다.

 

화 있을진저: 우상숭배하는 자들에게(18-20)

나무와 돌과 쇠덩어리에 조각하고 붓고 입혀 만든 신상과 우상에게 깨라 일어나라”(19) 한들 생기 없는 인조신(人造神)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심판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乘勝長驅)하고 호사를 누릴 때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화덕 위에 올려진 고기와 같다는 것을 어찌 몰랐을까.

 

20절은 전체에 대한 결론이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는데 질문과 대답 속에서 마침내 그는 20절의 하나님을 발견(고백)한다. 이제 하박국에 있어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 분이다. 정의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공의가 깨어진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사회 속에 하나님은 당신의 성전에서 함께 계신다.

 

 

부스러기

 

악인 형통, 의인 고통! 이게 말이 되는가. 정말 그런가.

그러나 걱정할 게 없다. 진짜 염려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이 부조리하고 불의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b)는 말씀에 충실한가. 진정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다른 무엇보다 믿음으로 충분한가. 그렇다면 걱정할 것 없다. 그러면 됐다. 그러면 충분하다.

한편 예레미야도 하나님께 이와 비슷한 질문을 한다(12.1-6):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번역한 자가 더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1b) 이처럼 어느 때나 악인의 행복과 형통은 하나님의 공의와 이질적이다. 그리고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면 자는 자신처럼 사는 자가 고난을 받는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된다고 소리친다. 이는 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뜻하심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싶어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말씀이다. 이미 말씀이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이 공의와 심판과 징계인지 답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침묵하고 있거나, 창조만 하셨고 지금은 세상이 자기 힘과 법칙에 따라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답을 거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그렇다. ‘화 있을진저로 흔들려도, ‘주님 만을 섬기리이기에 이게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b)는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악인이 의인을 괴롭히고 무너지게 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낼 수 있다. 이는 핑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 탓, 나쁜 사람 탓, 상황 탓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다 알 수 없고, 명백히 깨달을 수 없고, 벌어지는 상황과 사건을 읽어낼 능력이 없을 때 우리는 선지자 하박국에서 배운다.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죄를 먹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묻고 답을 찾을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답을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 한다. 비록 다 알 수 없지만 정한 때 반드시 응하리라.”(3)는 말씀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럼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한다. 무엇보다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문제 많고, 질문 많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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