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시대일지라도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합 3.1-19).

20200726(묵상)

   

 

 

요동치는 시대일지라도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Hab. 3.1-19

   

   구조 관찰

 

   [영적 침체] 빠지다. 방황 회의 분노 비판 눈물 - 흔들리다

   H.Q1 - 어찌하여 악인이 득세합니까?(1.2-4)

      2 왜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까?

      3 어찌하여 시대의 패역을 눈으로 봐야만 합니까?

      4 악인이 정의를 굽게 하는 것 아닙니까?

   H.Q2 - 왜 악한 자를 사용하십니까?(1.12-2.1)

    13 어찌하여 악인이 의인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십니까?

    14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까?

    15 악한 나라들이 무자비한 패권을 행사하는 것이 옳다고 보십니까?

       → 하나님이 내 질문에 어떻게 답하실지 보겠다(2.1)

 

          [말씀] 응답 설교 교육 - 품다

             → G.A1(1.5-11) -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5b)

                 G.A2(2.2-20) -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응하리라.”(3)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b)

                                         “온 땅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니라.”(20)

 

                  [회복] 믿음 소망 비전 신뢰 - 일어서다

                    → H.P(3.1-19) - 하박국의 기도

                        A 하박국: 기도(1-2)

                           X 하나님: 심판(3-15)

                        A' 하박국: 반응(16-19)

   

 

하박국의 기도라!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85.6)

 

선지자 하박국은 마침내 2절처럼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A).

1장에서 그는 왜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까?”(2)를 시작으로 크게 두 질문(H.Q1, H.Q2)에 연속적으로 의문에 찬 질문을 토해내면서 하나님의 경고(1)에 돌직구를 던지는 선지자다. 이것이 1장이다. 그런데 그런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답을 하신다. 이게 2장이다. 요약하면 이제 하나님 내가 하는 메시지는 비록 더딜 수는 있어도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2.3). 그러니 하박국 네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이것이다(H.Q2):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b)

   “온 땅은 나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니라.”(2.20).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너 말이야, 잔소리 그만하고, 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라와 봐!’ 너는 믿음으로 살아! 나는 내 방식으로 변함없이 일할 것이니까. 이것이 2장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설교, 곧 하늘의 메시지다.

마침내 하박국은 하나님의 대답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공의를 알고 듣고 보고 믿고, 마침내 하나님의 답에 항복하기 시작한다. 그게 무엇인가. 3장이다. 바로 기도다. 하나님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토해 낸다(X). 하나님과 정면승부를 하던 그는 이처럼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앉는다. 그럼에도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여전히 317절이어도 꿈쩍하지 않는다(A’).

   

 

하박국의 기도(1-2): 항복하다, 회개하다.

 

   ▪두 질문 사이에서 고통하던 선지자(H.Q1, H.Q2)

      → ▪하나님 - 설교(Message)

              G.A1(1.5-11)

              G.A2(2.2-20)

             → ▪선지자 - 기도(H.P, 3.1-19)

 

무엇이, 누가 방항하던 1장의 선지자 하박국을 기도하는 3장의 선지자로 서게 한 것인가. 하나님의 두 번에 걸친 대답(G.A1, G.A2)에 힌트가 있다. 하지만 정말 단순하고, 간단하게 그 이유를 찾는다면 이것이다. 부조리하고, 그래서 공의가 집행되지 않는 것 같아 도무지 살 맛 나지 않은 세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인간 선지자의 시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를 이처럼 변화시켰는가? 하나님의 말씀, 곧 그분의 설교인 2장이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며,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자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선지자가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 면전에서까지 불평하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하나님이 계시면 나오시라. 뭐라고 답을 좀 하시라라며 핏대를 올린 것 아닌가.

그런데 2장의 설교를 통해 선지자가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더라도, 그럼에도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런 세상도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정의와 공의가 살아나는 세상을 만드실 것이라는, 그래서 지금 자신이 고민하고 아파하는 이 세상을 살 맛 나는 세상으로 하나님이 만드실 것이라는 것을 선지자는 드디어 믿었다. 여러분! 이런 동의과 아멘이 아니었다면 그는 우리가 읽는 3장이 아니라 1장에 이어서 세 번째 항의와 분노와 하나님을 향한 비판을 거침없이 토해냈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하나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생각과 눈높이에 드디어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부조리하고 불공평하고 불의하게 보이는 세상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이런 죄악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요 공의의 집행이요 악한 세상에 대한 거룩한 하나님의 분노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하는가? 기도한다.

선지자는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문(명성)을 들었다. 비록 지금은 하나님이 침묵하는 분처럼 보였지만 지난 날 이스라엘에 행하신 하나님은 놀라운 구속을 이루신 하나님이심을 깨닫는다. 그래서 과거에 이루셨던 그 일을 가까운 시일 안에 오늘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이루어주시기를 기도한다. 결국 불의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그 상태와 상황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공의의 집행이자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처럼 보이는 오늘,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는 오늘, 이렇게 일하고 땀 흘려도 결과물이 없는 것 같은 불의와 어려움도 곧 그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믿어서다. 고난과 좌절과 슬픔 너머에 있는 소망과 회복과 하나님의 승리를 믿고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비밀을 아는 자는, 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자는, 오늘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듣고 알고 믿는 자는 이처럼 기도하며 무릎을 꿇는다. 흔들리는 신앙생활의 이정표인 항의와 분노와 비판과 방황과 영적 침체를 기도의 무릎 앞에 겸손하게 내려놓는다.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옵소서.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2, 새번역)

   

 

하나님의 심판(3-15): 하나님께 눈을 뜨다.

 

무법과 탈법과 동물의 세계처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것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 거기에는 희망이란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 부조리한 세상 한복판으로 하나님이 오신다(3). 이로써 이 만신창이가 된 세상이 곧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되는 곳이자 그분의 일하심의 현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땅과 나라들이 환난을 만나 떠는 것이 보인다(6-7). 그렇다. 이렇듯 하나님은 개입하고 계시며, 공의를 행하시는 심판이 하나님의 오심과 함께 집행되고 있음을 보았다. 주님은 전사처럼 일하신다(9).

그리하여 화살을 당기고 창을 던지심으로 악한 나라들에 진노하시며 심판을 집행하신다(11-13):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오십니다. 친히 기름 부으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오십니다. 악한 족속의 우두머리를 치십니다. 그를 따르는 자들을 뿌리째 뽑아 버리십니다.”(13, 새번역) 놀랍지 않은가. 이 부조리한 세상을 하나님은 그대로 방관하시느냐며 절규하던 선지자에게 , 보아라. 내가 왔다. 이제 구원과 심판의 동시상영을 보게 될 것이다.’라 하신다.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14a)며 불법과 권력과 탐욕이 무법천지를 이루고 있을 때에 주님은 이를 승전가로 역전시키신다. “그들이 우리를 잡아 먹으려고 그들이 입을 벌릴 때에, 주님의 화살이 그 군대의 지휘관을 꿰뚫습니다.”(14) 무엇인가. 승리다. 이것이 악하고 죄로 가득한 불의하고 폭력을 자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이 보다 더 어메이징하고, 이 보다 더 놀라운 영광과 승리의 고백이 또 있을까:

 

   “그 소리를 들을 때 내 배가 떨렸고, 입술이 떨려 말을 더듬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다 자빠졌습니다.

    저는 물러나 앉아 기다립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에게 닥칠 운명의 날을 기다립니다.”(16, The Message)

   

 

하박국의 노래(16-19): 자신에게 말을 걸다.

 

1장의 하박국을 2장으로 만나주신 하나님! 마침내 하박국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영적 침체로부터 비로소 깨어난다. 선지자는 1-2장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항의하고 하나님을 비난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하나님께 항복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놀라운 노래를 기도의 향에 담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게 되어서다. 마침내 환난 중에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겠다고 선언한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은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17-19a, 새번역)

 

비록 [유다농장]에 거둘 소출이 없어도, 오늘로 이야기하면 농산물사업부(농산물 공장)에 제품을 생산할 원료가 충분하지 않아도 그렇다. 또한 비록 [유다목장]에 소와 양이 없어도, 역시 오늘로 이야기하면 축산물사업부(육가공 회사)의 생산 라인에 올릴 고기가 부족하여 공급되지 않아도 그렇다. 그러니까 사업이 어렵고, 살기가 힘들어도 그말이다. 그럼에도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겠다 선포한다. 더 이상 1장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마치 이 부조리한 세상이 하나님 때문인 것처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럼에도 왜 오랫동안 1장처럼 말하며 살았는가? 악이 이기는 것 같고,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되지 않는 것 같았서다.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반항하며 질문처럼 포장하여 하나님께 오만불손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설교(말씀)를 듣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이끄실 것을 믿고 이 모든 불신앙과 부정적이던 삶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부스러기

 

마침내 하박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하나님의 계시를 세상에 유통하는 <하늘택배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부정적이고, 불평하고, 불만을 토해냈었다. 하나님, 당신은 지금 뭐 하십니까?”라며 감히 하나님께 핏대를 세운 위인이었다. 용감하면 쥐도 고양이 앞에서 한번 싸워보겠다고 호기를 부리듯 그는 이처럼 못나고 어리석고 볼품없는 3류 선지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하박국이 토해내는 거침없는 소리에도 일일이 댓글을 다시며 그의 심정을 위로하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처럼 우리의 불평과 신음소리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오늘 우리도 성루(광장)에 서서, 때로 청와대 청원 사이트 앞에 서서, 때로 예배당에 무릎 꿇고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그러나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께마저도 맞짱을 뜨겠다며 덤벼대는 패역한 시대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지금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거의 다 1960년대 이후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정치적 목적을 따라 교회와 기독교를 이용해 먹었던 직업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지금 자리에 올라서더니 이제는 자신들이 꿈꾸는 소위 서구 유럽식 사회주의 세상(정치)을 만들고 싶은데 그것을 가장 방해하는 세력이 교회(기독교)라고 생각한 나머지 이제는 그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죄악된 동성애를 차별금지법에 포장한 고도의 정치공학을 동원한다.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이 틀렸다는 것이다.

마치 칼 막스(Karl Marx, 1818-83)가 공산주의 세상을 만드는데 기독교가 가장 큰 적이다 생각해서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사상적 프레임에 넣어 학살했던 것처럼... 지금 정치적 야망과 힘을 가진 자들은 어떻게든 기독교를 무력화시키고 무너뜨리려고 기독교(교회)를 공격하고 있다: ‘하나님으로는 안 된다. 기독교로는 어렵다. 그럴듯한 인권과 UN의 이름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자. 그런데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동성애, 하나님이 죄악이라 하시는 동성애, 로마제국을 몰락하게 한 동성애 세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역사는 교회를 박해하고 공격하는 자들이 언제나 패망하며 흔적 없이 사라졌음을 교훈한다. 하나님이 공의를 집행하실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세상이 인간이 원하는 쪽으로 만들어져간다고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실 때가 있다(로마서 1장의 '유기').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심판적 집행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시대는 더욱 더 빠른 속도로 하나님을 떠날 것이다. 기독교를 버릴 것이다. 성경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말할 것이다. 성경이 틀렸다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때 우리에게도 선지자와 같은 고민이 있다: 과연 이 광기의 시대에 희망이 있는 것인가? 하나님, 당신은 지금 뭐 하십니까?’ 이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하는 일을 듣고 보았지! 그럼 너는 이렇게 살아라: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b)

 

요동치는 시대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자: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은 나라는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https://youtu.be/Jx0-w8QcPoI
    "오직 믿음으로(세상 흔들리고, Only Faith, 예수전도단)" 기도와 묵상을 위한 은혜로운 피아노 CCM/피아노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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